발레리노 이원국
중력을 거부하는 ‘최고 무용수’ 이원국
대학로서 상설 공연 매진 행렬
안무가로도 활약 ‘실험’ 선봬
쉬지 않는 몸…발레교과서로
“은퇴요? 생각해본 적 없어요” 중년의 남자 무용수가 맨발로 땅을 박차고 힘차게 허공을 가른다. 중력을 거부하며 이카루스의 날갯짓을 하는 굳은살 박힌 두 발에는 땀에 전 붕대가 감겨 있다. 무용수는 고난도의 공중 2회전을 한 뒤 땅에 떨어지면서 손을 번쩍 들고 외친다. “나는 44살의 발레리노가 되도록 한순간도 쉬지 않았다. 가장 완벽한 무대를 보여주기 위해 뛰고 또 뛰어올랐다. 나는 믿는다. 나의 땀이 멈추지 않는 한 박수는 계속되리라는 걸!” 한 국내 펀드회사의 광고모델로 등장한 국내 최고령 발레리노 이원국씨의 모습이다. 그는 20년 동안 유니버설 발레단과 국립발레단의 수석 발레리노로 활약하며 ‘발레리노의 교과서’로 불렸다. 동양인 최초로 러시아 마린스키극장에서 <백조의 호수>를 공연했고, 당쉬르 노브르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등을 받으며 최고의 무용수로 꼽혀왔다. “국내 남자 발레는 이원국 이전과 이원국 이후로 나뉜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큰 족적을 남겼다. 남자 무용수로는 환갑이라는 불혹의 나이를 넘기고도 그는 현역 무대를 고집한다. 이 또한 이전에는 없었던 일이다. “발레만큼 저를 행복하게 해주는 예술이 없으니까요. 저는 발레의 노예라고 생각합니다. 발레는 항상 저를 새롭게 태어나게 해주고 저를 지탱해주는 힘이 됩니다.”
그에게는 요즘이 오히려 황금기인 듯하다. 나이라는 한계를 떨쳐내고 무용수의 자리를 지키며 그는 안무가로 확실한 자리를 만들어가고 있다. 2005년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국립발레단 수석 자리를 박차고 나와 젊은 후배들과 만든 ‘이원국 발레단’은 노원문화예술회관에 상주단체로 들어가 틀을 잡아가고 있다. 3년 전부터는 대학로 성균소극장에서 매주 월요일 저녁 ‘이원국의 월요 발레 이야기’를 해오고 있다. 이밖에 다른 강의들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화예술분야 홍보대사까지 그는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18일부터는 발레 <호두까기 인형>을 서울 서대문문화회관과 구로아트밸리 등에서 공연한다. 그런데도 그는 “절박하다”고 한다. “언젠가는 관객이 찾아올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지만 더 이상 갈 데가 없다는 절박함이 저를 무대로 내몰고 있습니다. ”
그가 요즘 가장 애착을 갖고 하는 일은 상설 발레공연 ‘이원국의 월요 발레 이야기’다. 70석 소극장이지만 발레가 어렵고 고급스러운 예술 장르가 아니라는 편견을 허무는 계기가 되고 있고, 그가 안무가로서 실험해오고 있는 퓨전발레와 현대발레, 클래식발레 작품들을 마음껏 소개할 수 있는 무대이기 때문이다. 한국 전통민요를 발레에 접목시킨 단막 발레 <옹헤야> 1, 2편, 말러 <교향곡 5번>으로 만든 50분짜리 <말러의 생애와 꿈>, 발레에 태권도를 접목시킨 <호두까기 인형> 등 새로운 시도들을 선보이며 지금까지 115회 공연을 한번도 쉬지 않았다.
“시민들이 쉽게 볼 수 있는, 조금은 색다른 입문 같은 발레 공연을 하고 싶었습니다. 처음에는 어려움이 많았으나 3년째 하다 보니 관객들과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면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어요.”
여전히 그는 발레리노로서 자기 관리에 철저하다. 발레를 시작한 고교 이후 늘 그는 몸무게 76㎏을 유지하고 있다. 하루에 2시간씩 개인 연습은 절대 빠뜨리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틈이 나면 몸을 움직이며 자신을 단련한다. “어려운 모임에서 꼼짝하지 못할 경우에는 구두 안에서 발가락이라도 꼼지락거려야 직성이 풀립니다. 잠자는 시간 이외에는 손가락 하나라도 움직여 보려고 노력하는 게 비결이라면 비결이죠.”
앞으로 꿈은 150석 규모의 발레 전용 소극장을 만들어서 발레 공연을 상설화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바가노바발레아카데미의 발레교육 시스템인 ‘바가노바 메소드’처럼 ‘이원국 메소드’를 만들어보는 것이 진정한 목표다. “은퇴를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아직도 저는 스스로 프로 무용수라고 생각해요. 저는 한국에서도 세계 최고 무대에 설 수 있는 세계 최고의 발레리노가 나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글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안무가로도 활약 ‘실험’ 선봬
쉬지 않는 몸…발레교과서로
“은퇴요? 생각해본 적 없어요” 중년의 남자 무용수가 맨발로 땅을 박차고 힘차게 허공을 가른다. 중력을 거부하며 이카루스의 날갯짓을 하는 굳은살 박힌 두 발에는 땀에 전 붕대가 감겨 있다. 무용수는 고난도의 공중 2회전을 한 뒤 땅에 떨어지면서 손을 번쩍 들고 외친다. “나는 44살의 발레리노가 되도록 한순간도 쉬지 않았다. 가장 완벽한 무대를 보여주기 위해 뛰고 또 뛰어올랐다. 나는 믿는다. 나의 땀이 멈추지 않는 한 박수는 계속되리라는 걸!” 한 국내 펀드회사의 광고모델로 등장한 국내 최고령 발레리노 이원국씨의 모습이다. 그는 20년 동안 유니버설 발레단과 국립발레단의 수석 발레리노로 활약하며 ‘발레리노의 교과서’로 불렸다. 동양인 최초로 러시아 마린스키극장에서 <백조의 호수>를 공연했고, 당쉬르 노브르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등을 받으며 최고의 무용수로 꼽혀왔다. “국내 남자 발레는 이원국 이전과 이원국 이후로 나뉜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큰 족적을 남겼다. 남자 무용수로는 환갑이라는 불혹의 나이를 넘기고도 그는 현역 무대를 고집한다. 이 또한 이전에는 없었던 일이다. “발레만큼 저를 행복하게 해주는 예술이 없으니까요. 저는 발레의 노예라고 생각합니다. 발레는 항상 저를 새롭게 태어나게 해주고 저를 지탱해주는 힘이 됩니다.”
발레리노 이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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