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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이사람] ‘마지막 재즈 연주’ 하고싶지 않아요

등록 2011-01-11 09:19

신관웅(65)씨
신관웅(65)씨
공연할 곳 없어 클럽 차리고 1세대 정기 합주 무대 마련
“근근이 꾸려오다 폐점 결심” 단골손님들 ‘되살리기’ 논의
‘문글로우’ 지켜온 신관웅 사장

지난 6일 오후 찾아간 서울 홍대 앞 재즈클럽 문글로우. 이곳은 매주 목요일마다 재즈 1세대들의 공연이 열리는 곳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이날은 합주가 예정돼 있지 않았다. 일주일 전인 지난달 30일 여느 때처럼 합주를 마친 뒤 재즈 피아니스트이자 문글로우 사장인 신관웅(65·사진)씨는 ‘폭탄선언’을 했다. “오늘이 마지막 합주였습니다. 경영난으로 클럽 문을 닫게 됐습니다.” 관객은 물론 함께 무대에 올랐던 연주자들조차 깜짝 놀랐다.

“재즈 1세대들이 모여 공연하는 아름다운 풍경 뒤에는 말 못할 어려움이 많았어요. 치솟는 월세로 수지를 못 맞춰 제가 따로 공연해서 번 돈을 쏟아부으며 근근이 꾸려왔죠. 하지만 지난해에는 천안함·연평도 사태, 지자체 선거, 구제역 등으로 준비해왔던 공연들이 줄줄이 취소돼 최악의 상황이 닥쳤어요. 혼자 끙끙 앓다가 결단을 내린 겁니다.”

신씨가 클럽 문을 연 것은 지난 2000년 2월. 재즈를 연주할 곳이 너무 없어 모은 돈을 털어 클럽을 차려버린 것이다. 어려운 형편으로 클래식 피아노를 포기하고 실의에 빠졌다가 미군 클럽에서 우연히 접한 재즈에 반해 재즈 피아니스트가 된 그다. 후배들은 물론 재즈 1세대 선배들도 불러모아 정기적으로 합주하는 무대를 마련했다. 강대관(78·트럼펫)·이동기(74·클라리넷)·김수열(72·색소폰)·김준(71·보컬)·최선배(68·트럼펫) 등이 꾸준히 모였다. 고 홍덕표(2007년 작고·트롬본)·최세진(2008년 작고·드럼)씨는 이곳이 마지막 무대였다. 지금도 무대 한편에는 홍씨가 생전에 불던 트롬본이 걸려 있다.

“돈이 없어 술 한잔 시켜놓고 밤새 연주를 듣는 이들의 초롱초롱한 눈이 자꾸만 밟혀요. 재즈 마니아들은 주머니가 얇고, 주머니 두둑한 이들은 룸살롱 같은 데로 가죠. 그래도 관객이 한 명만 들어도 연주를 참 열심히 했어요. 가족 단위 손님이 오면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우리 또래가 오면 늙어도 뭔가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젊은 연주자들에겐 기교보다도 철학이 담긴 연주를 가르쳐줬는데 말이죠.”

임대 계약이 끝나는 다음달 말까지 신씨는 혼자 피아노를 연주하며 클럽을 정리할 계획이라고 했다. 하지만 전날 이정식 등 후배 연주자들이 찾아와 출연료를 받지 않고 무대에 섰고, 이날은 최선배씨가 찾아와 신씨와 피아노·트럼펫 협연을 펼쳤다.

안타까운 사연을 접한 단골손님들이 뜻을 모아 문글로우를 되살리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우선 11일 저녁 7시 대여섯 명이 이곳 문글로우에 모여 후원회 결성 등을 논의할 계획이다. 구체적 방안이 결정되면 문글로우 누리집(www.moonglow.co.kr)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릴 예정이란다.


이 소식을 들은 신씨는 “나의 문글로우가 아니라 팬들의 문글로우라는 생각이 든다”며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뿐”이라고 말했다.

글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사진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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