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택시>의 작가이자 연출가인 김상수(53·사진 맨 앞)씨
용산참사·여배우 성상납 의혹
한국 사회의 뒤틀린 현실 고발
“대학로 연극, 비판정신 실종
당대 삶을 반영할 수 있어야”
한국 사회의 뒤틀린 현실 고발
“대학로 연극, 비판정신 실종
당대 삶을 반영할 수 있어야”
연극 ‘택시 택시’ 연출가 김상수
최근 서울 대학로 연극동네에 위험하고 불편한 연극 한편이 등장했다. 공연을 본 홍세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편집인은 “충격적이다. 2시간 동안 꼼짝하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진보 경제학자인 오세철 연세대 명예교수는 “12일부터 카메오로 출연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입소문 자자한 이 연극은 지난달 4일부터 대학로 소극장 ‘공간, 아울’에서 공연중인 <택시 택시>(TAXI TAXI)다.
50살의 아줌마 택시 기사 유미란이 승객으로 나오는 다양한 인간 군상과 만나면서 오늘날 한국 사회의 온갖 모순을 고발한다. 삼성반도체 공장의 백혈병 논란, 장자연 사건을 연상시키는 여배우의 성 상납 의혹, 용산참사 등이 가감 없이 무대에 올라온다.
“우리 삶이 저에게는 무지하게 낯설고 부패했고 더러운데, 지금 연극은 입을 다물고 있어요. 긴장도, 성스러움도 없고 말장난만 하고 있어요.”
지난 주말 만난 <택시 택시>의 작가이자 연출가인 김상수(53·사진 맨 앞)씨는 몹시 화난 표정이었다. 그는 “연극이 가진 힘은 자기가 살고 있는 삶을 들여다보는 것인데 한국 연극에는 그 당연한 것이 빠져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택시 택시>는 도쿄, 파리, 베를린 등에서 전방위 예술가로 활동해온 김상수 연출가가 지난해 귀국한 뒤 두번째로 선보이는 문제작. 22년 만에 무대로 돌아온 이 작품은 원작과 비교해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고발하는 파격적 메시지는 그대로 가져오되 시대 상황에 맞게 등장인물과 줄거리를 일부 각색했다. 1988~89년 국내 초연 당시엔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가 정신적인 상흔을 안고 돌아온 택시 기사가 주인공이었으나 이번에는 여성 운전사로 주인공이 바뀌었다. 주인공 유미란은 딸 미루가 일류기업 ‘샹숑’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리자 재벌기업의 부당함과 맞서 싸운다. 이 과정에서 거대한 벽처럼 다가서는 정부의 무기력함, 언론의 무관심을 날카롭게 꼬집는다. 병든 사회를 향해 던지는 극의 거친 질문들은 우리 삶의 정체성을 묻고, 한국 연극의 뒤틀린 현실에 칼을 들이댄다.
“우리가 어디에 끼어서 살고 있는가, 어떤 것들이 우리를 괴롭히는지, 우리가 어디에서 괴로워하는지 묻고 싶었습니다. 한국 사회가 지닌 가벼움과 이루 말할 수 없는 천박함을 대면시켜 관객들의 눈길을 두시간 동안 꼼짝 못하게 붙드는 것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대학로 연극은 비판정신도 예술성도 실종됐다”고 주장한다. 오랫동안 외국의 엉터리 번역극에 의존하다 보니 그런 타성이 무비판적으로 익숙해져 저급한 수준의 오락만 판친다는 것이다. “관객에게 삶을 대면시키는 건 연극의 가장 기본적인 비판기능을 회복시키는 최소한의 작업”이라고도 했다.
“20~30대 관객이 연극을 경험하고 떠나버리는 것은 1차적으로 연극인들에게 책임이 있어요. 당대 삶을 반영하지 않고 남 이야기만 하고 있으니 와 닿지 않는 거죠. 최근 구제역으로 돼지 315만마리와 소 15만마리를 땅속에 생매장했습니다. 독일 국립극장 같으면 바로 공연에 들어갑니다. 그만큼 피드백이 즉각적이고 예민하단 말이죠.”
김상수 연출가는 사진, 전시, 설치미술, 글쓰기 등 여러 방면에서 활약해온 국제적인 전방위 예술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2001년, 2003년, 일본에서 그가 극본을 쓰고 연출한 <섬.isle.島>는 ‘일본에 마음을 심으러 온 한국 예술가’(<요미우리신문>), ‘문화와 국경을 넘은 독창적인 예술세계’(<아사히신문>)라는 호평을 받기도 했다. 오는 5월1일까지 이어질 공연에는 유미란 역의 이윤숙, 천미루 역의 한송이씨를 비롯해 위지영, 김누리, 신동원, 임영식씨 등이 출연한다. (010)9984-8869.
글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사진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택시 택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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