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음악·공연·전시

가슴 저린 이별 이야기 민중가수가 부른다면…

등록 2011-04-12 19:28

첫 단독공연 하는 백자
첫 단독공연 하는 백자
팬들 “정규음반 내달라” 돈 모으고
안치환 녹음실 지원해 포크1집 발표
“제 자신 위로하는 노래로 엮었죠”

첫 단독공연 하는 백자

1980년 5월 광주에서 피의 학살이 벌어졌을 때, 초등학교 3학년생 백재길은 아무것도 몰랐다. 공부하러 도시로 간 5명의 형·누나를 찾아오겠다며, 전남 장흥에서 광주까지 걸어가는 아버지를 보고, ‘뭔 일이 생겼나 보다’고 어림짐작만 했다. 나중에 들으니 대학생이던 셋째 형은 죽을 뻔한 위기도 넘겼다고 했다. 막내는 형·누나로부터 군사정권을 향한 분노를 자연스레 물려받았다.

서울로 올라와 다닌 고등학교에선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설립 운동이 한창이었다. 평소 존경하던 몇몇 선생님들이 이 과정에서 해직됐다. 피가 끓어올라 삭발하고 운동장으로 나갔다. 뜻 맞는 친구들을 모아 집회를 했다. 거대한 부조리함에 맞서 일어선 첫 경험이었다.

대학에 가서는 풍물패에 들어갔다. 거기서 ‘백자’라는 이름을 얻었다. 셋째 형이 입학 선물로 사준 기타를 뚱땅거리며 습작으로 만든 노래가 교내 민중가요 공모전에서 덜컥 대상을 받아버렸다. 이후 선배들이 노래패를 만들어보라고 ‘꼬셨다’. 결국 한국외대 상경대 노래패 ‘맥박’의 창단 멤버가 됐다.

군 제대 뒤 돌아온 교정의 학생운동은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자신의 음악적 방향도 갈팡질팡했다. 한 선배의 소개로 포크 노래모임 ‘혜화동 푸른섬’에 들어갔다. ‘이등병의 편지’를 작곡한 김현성을 주축으로 손현숙, 손병휘 등이 활동하고 있었다. 그곳에서의 2년여 동안 음악적 깊이를 쌓을 수 있었다. 하지만 가슴 한켠에는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었다. 혼자 기타 들고 집회현장에 가기도 했다. 결국 1999년 노래패 ‘우리나라’ 창단 멤버로 들어갔다. 직업적 민중가수로서의 첫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노래패 우리나라 활동과는 별도로 2009년에는 첫 솔로 소품집 <걸음의 이유>를 발표했다. 그동안 작업한 영화음악 등을 모아 소박하게 600장을 찍었는데, 금세 다 팔렸다. 이를 계기로 팬카페도 생겼다. 팬들은 정규 음반을 내달라며 후원금을 모으기 시작했다. 100여명이 1천만원 넘게 모았다. 선배 가수 안치환은 녹음실을 싸게 빌려줬다. 그렇게 해서 지난해 말 1집 <가로등을 보다>를 발표했다.

1집에는 사람 냄새 나는 포크 음악들로 가득하다. 십여년 전 경험한 이별을 노래한 타이틀곡 ‘가로등을 보다’는 쓸쓸한 보사노바 곡이다.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려 뮤직비디오도 찍었다. 가장 최근에 만들었다는 ‘울고 싶던 어느 날’은 스스로를 위로했다가 자학하고, 다시 위로하는 독백 형식의 노래다. 비슷한 악절이 각기 다른 분위기로 세 차례 반복되는데, 세번째에 이르러서는 듣는 이를 끝내 울컥하게 만든다.

“제 노래는 두 가지가 있어요. 내 생각에 공감하도록 하는 노래는 우리나라 활동으로 발산하고, 나 자신을 위로하는 노래는 솔로 음반으로 발산하죠. 지금은 메시지와 스타일이 뚜렷하게 갈리는데, 그 간극을 어떻게 해야 할지가 앞으로의 과제입니다. 무엇보다 음악의 완성도 자체가 최우선이겠죠. 요즘 민중가요의 활로에 대한 고민도 같은 차원인 것 같아요.”


그는 몇년 전까지도 음악과 경제적·실존적 고민 사이에서 힘들어했다고 했다. 하지만 마흔이 된 지금은 달관한 것 같다고 했다. 1집이 나온 지 다섯달. 이젠 반응이 좀 왔으면도 싶지만, 조급해하진 않는다고 했다. 백자는 15~17일 서울 대학로 학전 소극장에서 1집 발표 이후 첫 단독공연을 한다. 21년 전 노래패 활동을 권했던 선배가 도와줬기에 가능한 무대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음반 홍보가 참 어렵더군요. 그래도 앨범 첫 곡 ‘조금씩’ 노랫말처럼, 더딜지라도 조금씩 걸어가려고 합니다.” (02)333-5905. 글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