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민 기자
#1. 진(17·별명)은 혼자였다. 같은 반 아이들은 진을 따돌렸고, 진도 그들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고등학생이 된 지 얼마 안 돼서 학교를 그만뒀다. 지난해 일이다. 진은 방구석에 틀어박혀 만화책을 보거나 동네 피시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갈수록 사람들이 싫어졌다. 웃는 얼굴을 보면 괜히 화가 났다. 칼을 들고 다닌 적도 있다.
어느날 어머니 손에 이끌려 서울 영등포 하자센터로 왔다. 학교를 나와 숨어든 청소년들에게 음악으로 용기와 힘을 주고자 인디 음악인 등이 사회적 기업을 만들어 마련한 ‘집밖에서 유유자적 프로젝트’. 사람들을 만나긴 죽기보다 싫었지만, 어릴 적부터 좋아하던 음악을 가르쳐준다는 말에 혹했다. 거기 온 다른 이들도 진과 같은 처지였다. 악기 다루는 법을 배우고 밴드를 결성했다. 진은 드럼을 맡았다. 합주는 마법과도 같았다. 말 한마디 없이도 서로 연결돼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진은 어느새 친구들과 신나게 수다를 떨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놀랐다.
석달 과정을 마친 진과 친구들은 지난 4일 하자센터에서 가족을 초청한 가운데 연주회를 열었다. 산울림의 ‘너의 의미’, 크라잉넛의 ‘명동콜링’, 앙코르로 비틀스의 ‘헤이 주드’까지 연주한 진의 밴드는 큰 박수와 환호를 받았다. 진은 “밴드를 계속 해서 세상을 바꿀 음악을 만들겠다는 인생 목표를 세웠다”고 말했다. 다음주부터 햄버거집 아르바이트도 시작할 거라고 했다.
#2. 밴드가 비틀스의 ‘러브 미 두’를 연주하는 동안 누구는 기타 피크를 떨어뜨렸고, 누구는 몇 마디를 건너뛰었다. 당황할 법도 하지만, 얼굴에선 행복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헤비메탈 밴드 아이언 메이든 티셔츠를 입고 허리춤에 쇠사슬을 매단 기타리스트는 초등학교 선생님이라 했다. 베이스 기타를 잡은 조준기(29)씨는 “평범한 직장인인 내가 서른살을 눈앞에 두고 내 키만한 베이스를 메고 홍대 앞을 돌아다닐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냐”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케이티앤지 상상마당 아카데미 강좌 ‘개러지 밴드-내 생애 첫 밴드’ 수강생들은 지난 5일 저녁 서울 홍대 앞의 한 클럽에서 졸업 연주회를 열었다. 석달 전까지 악기 한번 제대로 잡아본 적 없던 이들도 이날만은 ‘록스타’였다.
#3. 대중음악 담당 기자로서 공연 볼 기회가 많은데, 지난 주말 본 두 공연에서 그 어느 공연 못지않은 즐거움과 감동을 얻었다. 음악이 주는 감동이 꼭 실력과 비례하는 건 아닌가 보다. 당신도 감동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면 문을 두드려 볼 일이다. ‘개러지 밴드’(02-330-6226)는 16일부터, ‘집밖에서 유유자적 프로젝트’(070-4268-5177~8)는 다음달 중순 새 강좌를 시작한다.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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