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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민중가요-대중가요의 벽 ‘아름다운 붕괴’

등록 2011-06-21 20:27

민중가요와 대중가요의 벽을 허무는 음악인들. 오른쪽 위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박혜경, 안치환, 이정열, 루시드폴, 강산에, 백자, 이지상.
민중가요와 대중가요의 벽을 허무는 음악인들. 오른쪽 위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박혜경, 안치환, 이정열, 루시드폴, 강산에, 백자, 이지상.
한동준 등 ‘대한민국…’ 앨범 내
안치환·백자, 두 영역 넘나들어
표현 자유 커지며 접점 늘어나
지난 17~18일 서울대 법인화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점거농성중인 서울대 행정관 앞에서는 이색적인 ‘운동가요’들이 울려 퍼졌다. 이런 자리라면 으레 등장했던 민중가요 대신 브로콜리 너마저, 3호선 버터플라이 등 인디 밴드들의 록 음악이 등장했다. 학생들은 밴드들의 노래와 연주를 즐기며 한바탕 난장을 벌였다. 미국 우드스톡 페스티벌을 본떠 ‘본부스탁’이라 이름 붙인 록 페스티벌 형태의 이날 시위엔 인디 밴드 20여팀이 참여했다. 민중가요와 대중가요의 벽이 허물어지고 있다. 시위 현장처럼 민중가요가 울려 퍼질 법한 자리에 대중가요가 등장하는 일이 잦아졌다. 또 기존 민중가수들은 대중가요와의 접점을 늘려가는 추세다.

10년 넘게 활동하며 7집까지 발표한 가수 박혜경은 지난 7일 서울 광화문 청계광장에서 열린 대학생 반값 등록금 촉구 촛불집회에 모습을 드러냈다. 맨발로 의자 위에 올라가 ‘고백’ 등 자신의 히트곡들을 열창했다. 올해 들어 그는 쌍용차 해고자 자녀들을 위로하는 공연을 펼치는 등 사회적 활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

대중가수가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노래를 부르는 사례도 종종 보인다. 21일 발매된 옴니버스 앨범 <대한민국을 노래한다>에는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10곡이 담겼다. 4대강, 용산참사, 비정규직, 사교육, 언론 등 다양한 사회문제를 노래한 이들은 한동준, 이정열, 블랙신드롬, 더 버드 등의 대중가수들. ‘시민 제작자’들의 후원으로 완성된 이 음반의 제작자 겸 프로듀서 엄현우씨는 “외국에선 밥 딜런, 브루스 스프링스틴, 유투 등 대중가수들이 사회적 메시지를 노래하는 게 자연스럽지만, 국내에선 그렇지 못했다”며 “이 앨범이 다른 가수들도 용기를 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했다. 앞서 루시드폴은 2009년 낸 4집 <레미제라블>에서 용산참사(‘평범한 사람’)와 광주민주화운동(‘레미제라블 파트 1·2’)을 은유적으로 노래하기도 했다.

서울 홍대 앞 ‘작은 용산’이라 불리는 칼국수집 두리반을 지키기 위한 공연에도 수많은 인디 밴드들이 동참했다. 이른바 민중가수들과 대중가수들이 함께 노래하는 무대도 낯설지 않다. 동일본 대지진 피해 조선학교 돕기 모임 ‘몽당연필’의 공동대표인 민중가수 출신의 안치환·이지상과 배우 권해효가 지난 4월부터 매달 한차례씩 열어온 자선 공연에는 강산에, 김민종, 윈터플레이, 강허달림, 한동준, 이한철, 허클베리핀 등 대중가수들이 참여했다.

민중가요와 대중가요의 경계를 뛰어넘는 최근 움직임들은 시대 변화와 맞물려 있다. 군사정권이 대중가요를 엄격히 통제하던 1970~80년대에는 사회적 발언을 담은 민중가요라는 별도의 음성적 영역이 생겨났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인 2000년대 이래 표현의 자유가 정착되자 대중가수들도 사회적 발언을 주저하지 않게 되면서 경계의 의미가 퇴색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음악평론가 서정민갑씨는 “현 정권 들어 세상이 과거로 돌아간 듯한 상황이 반복되면서 대중가수들의 행동이 더 활발해진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시위 현장에서 참가자들이 고답적 느낌이 강한 민중가요보다 자유분방한 대중가요를 선호하는 분위기로 바뀐 것도 한 요인이다.

민중가수들은 거꾸로 대중가요 쪽으로 행보를 넓히는 추세다.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민중가요와 개인적 감성을 담은 대중가요를 병행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노래패 ‘노래를 찾는 사람들’ 출신인 안치환은 지난해 두 장의 시디로 발표한 10집 <오늘이 좋다>에서 시디 1에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노래를, 시디 2에 사랑과 삶을 노래한 대중가요를 담았다. 노래패 ‘우리나라’의 백자도 지난해 말 감성적 노래들을 담은 솔로 앨범 <가로등을 보다>를 발표했다. 안치환은 “나에게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를 요구하는 분들도 있고, ‘내가 만일’을 요구하는 분들도 있는데, 나는 이 모두를 포용하고 표현하는 음악인”이라고 했다. 그는 “민주화 이후에도 분단, 자본과 노동 사이에서 무너지는 인간의 존엄, 환경문제 등 해결되지 못한 주제들이 많다”며 “이젠 대중가요냐 민중가요냐 하는 케케묵은 이분법을 버리고, 더 많은 음악인들이 다양한 주제를 노래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민중가수들의 고민이 더 깊어지는 부분도 있다. 그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사회 참여에 대중가수들도 뛰어들면서 입지가 좁아지는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백자는 “요즘 들어 민중가수를 찾는 곳이 많이 줄었다”고 털어놨다. 1998년부터 비정규직, 외국인 노동자 문제 등을 꾸준히 노래해온 가수 연영석은 “다양한 대중가수들이 사회적 목소리를 내는 건 환영할 일”이라며 “그럴수록 내가 해야 할 몫을 더 고민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해고자, 외국인 노동자 등의 자녀를 돕는 거리 모금 공연을 하고 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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