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을 이겨내고 늦깎이 데뷔 앨범을 낸 재즈 트럼펫 연주자 임재필씨가 플루겔혼을 연주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첫 앨범 ‘리멤버…’ 낸 임재필
생활고로 포기도 여러번
클럽운영뒤 간간이 무대
대장암 걸렸지만 이겨내
재즈계 도움으로 첫앨범
“편안하게 감싸안는 소리”
생활고로 포기도 여러번
클럽운영뒤 간간이 무대
대장암 걸렸지만 이겨내
재즈계 도움으로 첫앨범
“편안하게 감싸안는 소리”
서울 청담동 재즈 클럽 ‘원스 인 어 블루 문’의 임재필(62) 전무는 “요즘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라고 했다. 그는 최근 ‘제이피 림(JP Lim) 앤드 프렌즈’라는 이름으로 <리멤버 제이피 림>이라는 앨범을 발표했다. 늦깎이 재즈 트럼펫 연주자의 데뷔작에는 음악만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이 고스란히 투영돼 있다.
충남 논산에서 중학교 다니던 시절, 밴드부에 들어가 트럼펫을 처음 잡았다. 실력을 인정받아 대전의 한 고등학교에 특기 장학생으로 들어갔다. 충남도 콩쿠르에서 특상도 받으며 연주자의 꿈을 키워갔다. 하지만 그의 집안 형편은 기울어만 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상경해 밤 업소에서 트럼펫을 불었다. 주위 선배 연주자들을 보니 자신의 미래도 그리 밝아보이진 않았다. 음악을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에 악기를 팔고 군에 입대했다.
제대 뒤 먹고살려고 과일가게, 만두가게, 치킨집 등을 닥치는 대로 차렸다가 문 닫기도 여러 차례. 결혼하고 아이들을 낳은 뒤로 다시 밤 업소에 나가 트럼펫을 불었다. 어쩌다 문을 연 레스토랑이 장사가 잘돼 빚을 싹 갚았지만, 스탠드 바를 인수한 게 화를 불렀다. 1989년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정부의 심야영업 제한으로 두달 만에 보증금도 제대로 못 받고 나왔다. 다시 나간 밤 업소 무대에선 트럼펫 대신 건반을 치며 노래를 불렀다. 그게 벌이가 나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오래전 지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재즈 클럽을 인수하려는데, 같이 일해보자는 것이었다. 1998년 문을 연 ‘원스 인 어 블루 문’은 금세 명소로 자리잡았다. 클럽 운영에만 몰두하던 그가 언젠가 한번 카운터에 앉아 장식으로 진열해둔 트럼펫을 꺼내 무대에서 흘러나오던 ‘모 베터 블루스’를 따라 불었다. 이를 본 외국인 연주자가 그를 무대 위로 불러 올렸다. 잊었던 열정이 되살아난 임 전무는 그 뒤 트럼펫을 사서 연습하고 매주 한번씩 클럽 무대에도 섰다.
2008년 클럽 개관 10돌 기념 행사를 준비하던 중, 몸에 이상을 느끼고 병원을 찾았다. 대장암 3기. 1차 수술을 받고 보름 뒤 개관 행사를 치렀다. 그의 건강 상태를 아는 이는 극소수였다. 항암 치료를 받는 중에도 클럽에 출근했다. 혼자 운전하는 차 안에서 울기도 많이 울었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아직 못다 한 것도 많은데….’ 눈물이 앞을 가리면 강변북로 갓길에 차를 세우고 펑펑 울기도 했다.
성당에 나가 트럼펫을 불고, 서툰 솜씨로 성당에 내걸 나무 간판을 조각했다. “연주라기보다는 기도였고, 적어도 간판 완성할 때까진 살려주지 않을까 하는 심정에서 조각칼을 잡았다”고 그는 말했다. 어느덧 원망하는 마음이 사라지고 ‘정리의 시간’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싹텄다. 기적처럼 암세포가 자취를 감췄다.
기적은 또 찾아왔다. 한국 재즈계의 대부 이판근 선생이 갑자기 그를 부르더니 제자로 받아들여주었다. 재즈평론가이자 음반 프로듀서인 남무성씨는 올봄 농담 같은 진담으로 “앨범 하나 만드셔야죠” 하고 제안했다. 꿈에 그리던 앨범 작업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유영수(드럼), 신동진(색소폰), 양준호(피아노), 오정택(베이스) 등 베테랑 연주자들이 기꺼이 뒤를 받쳤고, 이판근 선생은 ‘리멤버 제이피 림’이라는 곡을 만들어 선사했다.
‘블랙 오르페우스’, ‘가브리엘스 오보에’, ‘오버 더 레인보’ 등 익숙한 명곡을 연주한 앨범은 “대단한 기교보다는 듣는 이를 편안하게 감싸안는 힘이 있다”는 평을 받는다. 임 전무는 “연장된 삶을 뜻깊은 데 썼으면 한다”며 “허락하는 대로 재능 기부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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