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지(53) 단장
2012 이들을 주목하라
50주년 맞은 국립발레단 최태지 단장
50주년 맞은 국립발레단 최태지 단장
작년 지방서만 100회 공연
자주 가까이 관객 교감해야
올해 첫 공연 첫날은 ‘반값’
국립발레학교 설립 ‘큰 목표’ 국립발레단은 지난해 내내 전례없는 ‘발레 열풍’의 진원지였다. 2월 올렸던 <지젤>은 국내 무용계 사상 처음 닷새간 전회 공연이 매진됐다. ‘흥행 바람’은 지방 소도시까지 이어졌다. 경북 김천, 전남 해남, 울릉도 등에서 난생처음 발레를 본 관객들은 감탄사를 연발했다. 지난 10월에는 창작 발레 <왕자 호동>을 이탈리아 나폴리 산카를로극장에 올려 역시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같은 달 정명훈 지휘자가 이끄는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협연한 <로미오와 줄리엣>도 뛰어난 완성도로 팬들의 찬사를 받았다. 2008년 다시 사령탑에 복귀한 최태지(53·사진) 단장이 내건 ‘발레의 대중화, 세계화, 명품화’라는 목표가 화려하게 빛을 발한 것이다. 1962년 국립무용단 소속으로 창단한 국립발레단의 역사가 올해로 50년을 맞는다. 50살 국립발레단의 새 도약을 이끄는 최태지 단장을 지난 5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 전당에서 만났다. 그는 1996~2001년 단장을 맡았다가, 2008년부터 지금까지 다시 발레단을 이끌고 있다. 임기 3년인 단장직을 4번째로 맡았으니, 햇수로는 11년째다. 1983년 객원무용수로 인연을 맺고 1987년 정식 입단했으니, 발레단 50년 역사의 절반 이상을 함께해온 산증인이기도 하다. 최 단장은 인터뷰 서두에 며칠 전 김천의 한 관객이 보냈다는, ‘좋은 공연 보여줘 고맙다’는 편지를 보여줬다. “지난해 서울에서 40회, 지방에서 100회 공연을 했어요. 정말 바빴죠. 140회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 횟수라고 봐요. 올해도 비슷한 일정으로 진행될 거예요.” 최 단장은 “공연을 많이 하고, 관객을 직접 찾아가야 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그만큼 ‘자주, 가까이’ 교감하는 걸 중시하는 데는 80년대부터 발레단에 몸담으면서 느꼈던 아쉬움이 컸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활동하다가 ‘국립’이라는 프로페셔널 단체가 있다고 해서 왔는데, 넉 달에 한번 공연하고, 횟수도 1년에 20회 정도밖에 안 돼 충격을 받았어요. 관객들이 발레가 고급 예술이라고, 멀게 느끼지 않으려면 어디서나 자주 공연해야죠.” 오랫동안 발레단을 이끌어온 데 대해 이런저런 말들이 없는 건 아니다. “어떨 때는 ‘독재’라는 말을 들으면 눈물이 날 때도 있다”고 했다. 처음 단장직을 맡았던 6년간이 “무용수 수준을 끌어올리고, 좋은 작품을 만드는” 데 중점을 두는 시기였다면, 발레단 수준이 어느 정도 향상된 지금은 “국민들을 위해 찾아가는 발레를 확장하고 단원들의 복지와 전문 안무가 등을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긴 안목에서 발레단을 이끌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가장 큰 목표는 평소에도 자주 필요성을 언급해온 ‘국립발레학교’를 임기 안에 세우는 것. “10살에 국립학교에서 발레를 시작하면 18살에는 프로가 돼요. 그때 길이 아니라고 판단하면 대학을 가서 다른 공부를 할 수도 있고요. 뛰어난 무용수들이 은퇴 뒤 국립발레학교에서 노하우를 전하는 시스템도 중요하죠.” 무용수들이 지도자, 안무가, 무대감독 등으로 무용계에서 직업을 이어갈 수 있어야 한다고 그는 역설했다. 장기적으로는 국립발레단이 전용 극장에서 대관비 부담 없이 상시 공연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내비쳤다. 최 단장은 지난해 새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로 ‘깜짝’ 거론되는 해프닝도 겪었다. “사전에 아는 바가 전혀 없었고, 지면을 통해서 알았는데, 여자 가운데서 찾으려다 보니 그렇게 된 건지 몰라도, 깜짝 놀랐다”고 했다. “물망에 오른 건 영광스럽지만, 가장 잘 알고, 잘할 수 있는 건 발레 일”이라고 그는 잘라말했다. 1996년 문화체육부 시절 처음 단장을 맡은 최 단장은 문화관광부를 거쳐 문화체육관광부로 상부 기관이 이름을 세 번 바꾸는 동안 산하 기관 대표 자리를 지키면서 두 자릿수의 장관들과 만났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이는 1996년 당시 30대 중반의 그를 과감히 수장으로 발탁한 김영수 전 장관과, 문화예산을 전체 예산의 1%로 끌어올린 박지원 전 장관. 특히 박 장관은 “‘내 이름이 ‘지원’이니, 지원하되 간섭은 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시는 등 (문화에 대한) 이해가 높았다”고 추억했다. 발레단 50주년의 첫 문은 3월1~4일 공연하는 <지젤>이 연다. “가능하면 문턱을 낮춰야 한다”는 그의 바람대로 첫날 첫 공연 표값은 ‘반값’이다. 4월에는 2001년 국립발레단이 처음 공연한 유리 그리고로비치의 <스파르타쿠스> 공연이 이어진다. “6월 창작 발레 <포이즈>를 공연하고, 9월 국악인 황병기 선생과 협연하는 <국립발레단과 황병기 프로젝트>(가제)가 있어요. 우리만의 레퍼토리를 만드는 게 목표죠. 10월에는 발레단 역사를 보여주는 50주년 기념 공연도 할 거예요.” 글 박보미 기자 bomi@hani.co.kr 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자주 가까이 관객 교감해야
올해 첫 공연 첫날은 ‘반값’
국립발레학교 설립 ‘큰 목표’ 국립발레단은 지난해 내내 전례없는 ‘발레 열풍’의 진원지였다. 2월 올렸던 <지젤>은 국내 무용계 사상 처음 닷새간 전회 공연이 매진됐다. ‘흥행 바람’은 지방 소도시까지 이어졌다. 경북 김천, 전남 해남, 울릉도 등에서 난생처음 발레를 본 관객들은 감탄사를 연발했다. 지난 10월에는 창작 발레 <왕자 호동>을 이탈리아 나폴리 산카를로극장에 올려 역시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같은 달 정명훈 지휘자가 이끄는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협연한 <로미오와 줄리엣>도 뛰어난 완성도로 팬들의 찬사를 받았다. 2008년 다시 사령탑에 복귀한 최태지(53·사진) 단장이 내건 ‘발레의 대중화, 세계화, 명품화’라는 목표가 화려하게 빛을 발한 것이다. 1962년 국립무용단 소속으로 창단한 국립발레단의 역사가 올해로 50년을 맞는다. 50살 국립발레단의 새 도약을 이끄는 최태지 단장을 지난 5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 전당에서 만났다. 그는 1996~2001년 단장을 맡았다가, 2008년부터 지금까지 다시 발레단을 이끌고 있다. 임기 3년인 단장직을 4번째로 맡았으니, 햇수로는 11년째다. 1983년 객원무용수로 인연을 맺고 1987년 정식 입단했으니, 발레단 50년 역사의 절반 이상을 함께해온 산증인이기도 하다. 최 단장은 인터뷰 서두에 며칠 전 김천의 한 관객이 보냈다는, ‘좋은 공연 보여줘 고맙다’는 편지를 보여줬다. “지난해 서울에서 40회, 지방에서 100회 공연을 했어요. 정말 바빴죠. 140회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 횟수라고 봐요. 올해도 비슷한 일정으로 진행될 거예요.” 최 단장은 “공연을 많이 하고, 관객을 직접 찾아가야 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그만큼 ‘자주, 가까이’ 교감하는 걸 중시하는 데는 80년대부터 발레단에 몸담으면서 느꼈던 아쉬움이 컸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활동하다가 ‘국립’이라는 프로페셔널 단체가 있다고 해서 왔는데, 넉 달에 한번 공연하고, 횟수도 1년에 20회 정도밖에 안 돼 충격을 받았어요. 관객들이 발레가 고급 예술이라고, 멀게 느끼지 않으려면 어디서나 자주 공연해야죠.” 오랫동안 발레단을 이끌어온 데 대해 이런저런 말들이 없는 건 아니다. “어떨 때는 ‘독재’라는 말을 들으면 눈물이 날 때도 있다”고 했다. 처음 단장직을 맡았던 6년간이 “무용수 수준을 끌어올리고, 좋은 작품을 만드는” 데 중점을 두는 시기였다면, 발레단 수준이 어느 정도 향상된 지금은 “국민들을 위해 찾아가는 발레를 확장하고 단원들의 복지와 전문 안무가 등을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긴 안목에서 발레단을 이끌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가장 큰 목표는 평소에도 자주 필요성을 언급해온 ‘국립발레학교’를 임기 안에 세우는 것. “10살에 국립학교에서 발레를 시작하면 18살에는 프로가 돼요. 그때 길이 아니라고 판단하면 대학을 가서 다른 공부를 할 수도 있고요. 뛰어난 무용수들이 은퇴 뒤 국립발레학교에서 노하우를 전하는 시스템도 중요하죠.” 무용수들이 지도자, 안무가, 무대감독 등으로 무용계에서 직업을 이어갈 수 있어야 한다고 그는 역설했다. 장기적으로는 국립발레단이 전용 극장에서 대관비 부담 없이 상시 공연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내비쳤다. 최 단장은 지난해 새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로 ‘깜짝’ 거론되는 해프닝도 겪었다. “사전에 아는 바가 전혀 없었고, 지면을 통해서 알았는데, 여자 가운데서 찾으려다 보니 그렇게 된 건지 몰라도, 깜짝 놀랐다”고 했다. “물망에 오른 건 영광스럽지만, 가장 잘 알고, 잘할 수 있는 건 발레 일”이라고 그는 잘라말했다. 1996년 문화체육부 시절 처음 단장을 맡은 최 단장은 문화관광부를 거쳐 문화체육관광부로 상부 기관이 이름을 세 번 바꾸는 동안 산하 기관 대표 자리를 지키면서 두 자릿수의 장관들과 만났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이는 1996년 당시 30대 중반의 그를 과감히 수장으로 발탁한 김영수 전 장관과, 문화예산을 전체 예산의 1%로 끌어올린 박지원 전 장관. 특히 박 장관은 “‘내 이름이 ‘지원’이니, 지원하되 간섭은 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시는 등 (문화에 대한) 이해가 높았다”고 추억했다. 발레단 50주년의 첫 문은 3월1~4일 공연하는 <지젤>이 연다. “가능하면 문턱을 낮춰야 한다”는 그의 바람대로 첫날 첫 공연 표값은 ‘반값’이다. 4월에는 2001년 국립발레단이 처음 공연한 유리 그리고로비치의 <스파르타쿠스> 공연이 이어진다. “6월 창작 발레 <포이즈>를 공연하고, 9월 국악인 황병기 선생과 협연하는 <국립발레단과 황병기 프로젝트>(가제)가 있어요. 우리만의 레퍼토리를 만드는 게 목표죠. 10월에는 발레단 역사를 보여주는 50주년 기념 공연도 할 거예요.” 글 박보미 기자 bomi@hani.co.kr 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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