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레미제라블>
서정민의 음악다방
1993년 뮤지컬 <레 미제라블> 국내 초연을 봤다. 나중에 듣자 하니 판권 문제를 해결한 정식 라이선스 공연은 아니었다지만, 그래도 초연은 초연이다. 프랑스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소설을 영국에서 처음 뮤지컬로 막을 올린 게 1985년이니, 국내 초연이 이르다면 이르달 수도, 늦었다면 늦었달 수도 있는 시차다. 생각해보면, 군사정권 아래 시민혁명을 다룬 얘기를 대놓고 무대에 올리기는 어려웠을 터. 문민정부 출범 이후 사회 분위기가 변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레 미제라블>은 무대 위로 올려졌고, 학생이었던 나는 넉넉지 않은 용돈을 모아 서울 잠실 롯데월드 예술극장으로 향했다.
내 기억 속 최고의 장면은 시민들이 봉기하며 “너는 듣고 있느냐”로 시작하는 ‘민중의 노래’를 부르는 대목이다. 커다란 깃발을 흔들고 발을 쾅쾅 구르며 부르는 노래에 온몸의 피가 솟구치는 것 같았다. 모세혈관까지 저릿해지는 느낌이었다. 2002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미국 브로드웨이팀의 공연을 보는 순간에도 93년의 그 장면을 또렷이 떠올렸다.
대통령 선거일이었던 지난 19일, 영화 <레 미제라블>을 봤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뮤지컬을 스크린으로 옮긴 영화는 증강된 배경과 영상미를 바탕으로 삼아 장엄한 대서사시를 쏟아냈다. 지금 이 시대 이 나이에 본 <레 미제라블>은 또다른 감동으로 다가왔다. 93년 초연의 감흥을 넘어서는 순간을 거의 20년 지나서야 맞이한 것 같았다.
벅찬 가슴으로 극장을 나오니 대선 출구조사 결과가 기다리고 있었다. 술잔을 기울이며 개표 방송을 지켜봤다. 개표가 진행될수록 술은 더 많이 들어갔고, 나도 모르게 노래 하나를 되뇌이기 시작했다. “너는 듣고 있느냐. 성난 민중의 노래. 다시는 노예가 되지 않겠다는 이들의 노래.” <레 미제라블> 삽입곡 ‘두 유 히어 더 피플 싱’이 그렇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진 적은 이전에 없었다. 나는 그렇게 희미해져갔다.
다음날 아침, 라디오에선 박명수와 정엽이 부른 ‘꿈이었을까’가 흘렀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별일 없이 산다’와 이한철의 ‘흘러간다’도 들려왔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꿈이라 여기고 별일 없다는 듯 흘러가듯 살자.’ 그래도 숙취에 전 몸과 마음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또 하루가 흘렀다. 어느 라디오 방송에서 금요일마다 하는 ‘힐링 뮤직 코너’를 우연히 들었다. 십센치의 ‘힐링’, 옥상달빛의 ‘수고했어, 오늘도’에 이어 오지 오스번의 ‘굿바이 투 로맨스’까지 들으니 묘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오스번은 노래했다. “날씨가 좋아 보여. 태양이 다시 떠오를 것 같아. 내 마음이 깨끗해지는 것 같아. … 과거여, 안녕. 우린 결국 다시 만날 거야.”
지난 토요일 아침 방송한 <황정민의 에프엠대행진> ‘뮤직업로드’는 크리스마스 캐럴 특집이었다. 2년째 이 꼭지에 출연하고 있는 나는 제이슨 므라즈, 브라이언 맥나이트, 테이크 식스, 마룬5 등이 부른 캐럴을 골라 틀었다. 방송을 들은 누군가가 트위터로 말을 걸어왔다. “오늘 선곡 너무 좋았어요. 힐링하는 아침.” 음악은 그렇게 나를 포함해 많은 이들을 어루만져주었다.
이제 더는 ‘두 유 히어 더 피플 싱’이 비현실적으로 들리지 않는다. 다시 희망과 용기를 주는 노래로 들린다. “내일이 오면 새 삶이 시작되리라~.”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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