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시절 동네 음반가게에 갔다가 충동적으로 비틀스 카세트테이프를 샀다. 멤버들이 동물들과 어울려 앉아 있는 모습을 담은 그림을 표지로 한 <더 비틀스 발라드>(사진). 느린 노래 20곡을 모은 편집 음반이었다. ‘예스터데이’, ‘헤이 주드’, ‘렛 잇 비’ 같은 귀에 익은 곡도 좋았지만,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섬싱’, ‘블랙버드’ 같은 낯선 곡들에 더 깊이 빠져든 것 같다.
비틀스 엘피(LP)를 사고 싶어져 돈을 모았다. 음반가게에서 멋모르고 집어든 게 이른바 <화이트 앨범>이었다. 정식 제목은 <더 비틀스>이지만, 앞뒤로 온통 새하얀 앨범 재킷에 ‘더 비틀스’라는 작은 글씨만 새겨놓아 이런 별칭이 붙었다는 사실을 안 건 나중 일이다. 순전히 앨범 재킷에 반해 엘피 2장이 든 비싼 더블 앨범이었음에도 기꺼이 주머니를 털었다.
사실 <화이트 앨범>은 멤버들 간 갈등이 고스란히 투영된 앨범이었다.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한 넷은 앨범의 통일성 따위는 무시하고 각자 만든 곡들을 한데 모아 발표했다. 밝고 경쾌한 ‘오블라디 오블라다’부터 착 가라앉는 ‘와일 마이 기타 젠틀리 윕스’까지 수록된 30곡의 색깔은 제각각이었다. “잡동사니를 모아놓은 듯 산만하다”는 평론가들의 혹평에도 앨범은 엄청나게 팔려나갔고, 나중엔 비틀스 대표 명반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화이트 앨범> 발표 2년 뒤인 1970년 비틀스는 해체했다. 1962년 데뷔 싱글 ‘러브 미 두’를 내놓은 지 8년 만이다. 이들이 발표한 280여곡의 재생 시간을 모두 합쳐봐야 10시간도 채 안 되지만, 미국 빌보드 싱글 차트 최다 1위(20곡), 5억장 넘는 앨범 판매량 등 이들이 세운 기록은 수십년이 지나도 깨지지 않고 있다. 데뷔 앨범 <플리즈 플리즈 미>(1963)가 나온 지 꼭 50년이 되는 오는 22일에도 마찬가지일 테다.
얼마 전 어느 지인이 해준 얘기다. 클래식 연주자들이 비틀스 곡을 연주하는 걸 듣고 문득 원곡이 듣고 싶어졌단다. 스마트폰 음악 애플리케이션으로 찾아봤더니 비틀스 곡은 재생할 수 없도록 막혀 있어서 무척 아쉬워했다고 한다. 비틀스 곡은 디지털 음원으로 전혀 판매되지 않다가 2010년에야 애플사 음원 판매 사이트 아이튠스에서만 판매되기 시작했다. 그는 말했다.
“나야 어린 시절 비틀스를 카세트테이프로 접해봐서 알지만, 요즘처럼 시디(CD)조차 접하기 힘든 시대의 아이들은 비틀스를 제대로 알까? 그들에게 음원 사이트에 없는 음악은 세상에 없는 음악일 텐데, 이런 식이면 언젠가 비틀스도 잊혀지는 거 아닐까?”
비틀스가 잊혀질 리는 없겠지만, 음악을 담는 매체의 변화에 음악 자체가 영향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절감했다. 우리가 지금처럼 음원 1곡당 60원만 내고 내려받는다면, 음악인은 딱 그만큼의 가치를 담은 노래만 만들어내는 건 아닐까? 스마트폰 시대를 맞아 이제는 소장 개념의 다운로드(내려받기) 대신 언제 어디서나 쉽게 접속하는 스트리밍(실시간 듣기)이 대세가 될 텐데, 음악도 시냇물(스트리밍)처럼 흘러서 빠져나가는 존재가 돼버리는 건 아닐까? 만약 비틀스가 2013년 한국에서 나온다면, 지금의 비틀스처럼 될 수 있을까? 비틀스가 과연 이 상황을 보고도 “그냥 내버려둬”(렛 잇 비)라고 노래할 수 있을까?
머릿속이 복잡하다. 비틀스를 들어야겠다. 시디 플레이어가 어딨더라?
서정민 문화부 기자 westm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