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이문세
6월1일 올림픽 주경기장서 콘서트
관객 위해 소극장 공연 선호했지만
발라드 가수로 큰 무대 욕심 생겨
“노래만 듣게 놔두지 않을 거예요”
관객 위해 소극장 공연 선호했지만
발라드 가수로 큰 무대 욕심 생겨
“노래만 듣게 놔두지 않을 거예요”
서울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은 가수들 사이에서 ‘꿈의 무대’로 불린다. 관객이 5만명까지 들 수 있다. 외국 팝스타 말고 이곳에서 혼자 공연한 국내 가수로는 조용필·이승철·이승환 정도다.
올해 데뷔 30년을 맞은 가수 이문세(사진)가 6월1일 저녁 8시 이곳에서 ‘대.한.민.국. 이문세’라는 제목의 단독공연을 한다. 20일 서울 홍대앞 한 카페에서 만난 이문세는 그러나 “데뷔 30돌을 기념해 큰 무대에 서는 건 아니다. 그냥 언젠가 한번 도전해보고 싶은 무대였고, 지금 그때가 왔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애초 그는 큰 공연장을 선호하지 않았다고 한다. “10여년 전 주경기장에서 마이클 잭슨 공연을 보면서 ‘이렇게 큰 곳에서 공연하면 안 되겠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세계적인 아티스트이긴 하지만, 관객들과 충분히 섞이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물과 기름 같았죠. 그래서 저는 관객 한명 한명에 초점을 맞추자는 마음가짐으로 소극장·중극장 공연에 치중했어요.”
그랬던 그가 주경기장 공연 준비에 들어간 건 4년 전부터다.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의 제법 큰 야외무대에서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그에게 ‘정적인 발라드 가수로서 가장 큰 공연장에 서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국내 최초로 5만명 앞에 서는 발라드 가수가 돼보자’는 결심을 하고 단계별 계획을 세우고 밟아갔다.
소극장부터 1만명이 드는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까지 오가며 수많은 공연을 했다. 2011~2012 월드투어 ‘붉은 노을’ 때는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등 외국까지 포함해 20개월 동안 40개 도시에서 100회 공연을 하는 기록도 세웠다. 그는 체조경기장에서 3회 공연을 했을 당시를 잊지 못한다고 했다. 마지막 날 무대에서 기어이 눈물을 터뜨렸던 그는 “큰 공연장이라도 진정성 있게 준비한다면 관객들은 소극장처럼 몰입할 준비가 돼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마침내 주경기장 대관을 예약하고 계약금까지 냈다는 소식을 듣고는 며칠 동안 잠을 못 이뤘다고 한다. ‘관객이 안 오면 어쩌지? 폭우라도 오는 건 아닐까?’ 주변에선 “공연 잘되고 있는데, 왜 한방에 망하려고 하느냐”는 우려부터 “형이 건재해줘서 고마워요”라는 후배의 격려까지 다양한 반응이 나왔다.
“사명감 같은 게 생기더라고요. 저는 조용필·이미자 선배님처럼 한국을 대표하는 가수가 아니잖아요. 하지만 그런 제가 주경기장 공연도 하고 계속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지금 오디션을 보는 병아리 같은 후배 가수들도 희망을 갖게 되지 않겠어요?”
공연 제목에 ‘대한민국’을 넣은 건, 자신이 한국을 대표하는 가수라는 의미가 결코 아니라고 그는 설명했다. “그날 대한민국을 유쾌하고 행복하게 만들어주겠다”는 의미라고 한다.
“음악의 완급 조절, 길이 100m 높이 30m 대형 무대(작은 사진) 연출 등을 통해 관객들을 들었다 놨다 하며 ‘밀당’(밀고 당기기)을 할 겁니다. 관객들은 저보다 더 좋은 몸 상태를 만들어야 할 거예요. 그냥 가만히 앉아서 노래만 듣게 놔두진 않을 겁니다. 하하하~.”
이문세가 공연하는 날, 공교롭게도 ‘가왕’ 조용필이 체조경기장에서 공연한다. 이문세는 올 하반기 11년 만의 정규 앨범인 15집을 발표할 계획인데, 조용필은 다음달 10년 만의 정규 앨범인 19집을 발표한다. 의식하진 않느냐고 물었다.
“용필이 형과는 같이 골프도 치고 집에 놀러가서 소주도 마시며 친하게 지냈어요. 1990년대 제가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난 아직 모르잖아요’를 저와 듀엣으로 부른 적도 있는걸요. 중요한 건, 용필이 형이 한국 음악 역사의 중심이자 상징이라는 점이에요. 형님이 계속 우뚝 서 있어야 저처럼 따라가는 후배들도 비전을 갖게 되거든요.”
그는 생전에 단짝이었던 작곡가 이영훈(1960~2008)에 대한 얘기도 잊지 않았다.
“무대에서 그가 만든 노래를 부를 때마다 늘 함께인 것 같은 느낌을 받아요. 사실 그 친구는 세상을 떠난 뒤 더 유명해졌어요. 모차르트처럼 그의 노래는 사후에 더 많이 불려지고 있죠. 참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문득 1983년 이문세의 데뷔곡 ‘나는 행복한 사람’이 들려오는 듯했다. (02)747-1252.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사진 무붕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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