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 밴드 에이치투오(H2O)
80년대 헤비메탈 이끈 록밴드
아이돌 나온뒤 서서히 잊혀져
직장 다니면서도 음악 못잊어
“젊을 때 하고 싶은 음악 하자”
9년만에 재결합, 앨범 ‘유혹’ 내
아이돌 나온뒤 서서히 잊혀져
직장 다니면서도 음악 못잊어
“젊을 때 하고 싶은 음악 하자”
9년만에 재결합, 앨범 ‘유혹’ 내
록 밴드 에이치투오(H2O·사진)가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결코 가볍지 않다. 1986년 데뷔해 시나위·백두산·부활 등과 어깨를 견주며 80년대 헤비메탈 바람을 이끌었다. 90년대 들어서는 2집 <걱정하지 마>(1992)와 3집 <오늘 나는>(1993)을 통해 당시만 해도 국내에 생소했던 모던록 사운드로 시대를 앞서가는 음악을 제시했다. 이후 오랜 침묵 끝에 2004년 4집 <보일링 포인트>를 내놓았지만, 예전만큼 반향을 일으키진 못했다.
“최고급 스튜디오에서 공들여 작업하며 음반을 직접 제작했어요. 그런데 아이돌이 대세여서 그런지 방송이나 언론 매체에서 11년 만의 복귀작에 별 관심을 안 보이더라고요. 마침 따로 하던 요식업 사업도 어려워지고 해서 공연 딱 한번 하고 4집 활동을 접었어요.”
최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난 에이치투오의 리더 김준원(보컬)은 당시를 떠올리며 아쉬워했다. 그는 “이런 식으로 에이치투오를 계속해야 하는 건지 갈등했다”고 말했다.
에이치투오는 2009년 다시 한번 날갯짓을 시도했다. 황인뢰 감독의 드라마 <돌아온 일지매>의 음악을 맡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음원유출 사고가 벌어진데다, 드라마 시청률도 예상보다 부진해 음악 또한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다.
“드라마 음악을 발판 삼아 활동을 재개하려 했는데, 여간 실망스러운 게 아니었어요. 이젠 음악을 그만두고 아이들 아빠로서 평범하게 살겠다고 결심까지 했죠.”
김준원은 긴 머리를 자르고 음악과 전혀 상관없는 직장을 구했다. 그렇게 회사원으로 2년을 지냈다. 그러던 어느날 알고 지내던 라이브클럽 사장이 바람을 넣었다. “넌 음악을 해야 해. 밴드가 힘들면 솔로 활동은 어때?” 마음이 흔들렸다. 결국 지난해 3월 직장을 그만두고 솔로 가수 준비에 들어갔다.
주변에선 솔로 가수로 행사를 많이 뛰려면 성인 취향 가요를 해야 한다고 권했다. 실제로 그런 앨범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기도 했다. 처음엔 괜찮았지만 갈수록 이질감이 커져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음악이, 내 얘기가 아닌 거예요.”
그때 김준원을 막아선 이가 에이치투오의 김영진(베이스)이었다. 그는 “한살이라도 젊을 때 하고 싶은 음악을 해야지. 과거에 인정받았고 지금도 잘할 수 있는 음악으로 승부를 보자”고 했다. “그래. 에이치투오를 다시 해보자.” 김준원은 지난해 말 밴드를 재정비하고 소셜 펀딩 사이트 ‘텀블벅’으로 앨범 제작 비용을 모으기 시작했다.
마침내 에이치투오의 새 미니앨범(EP) <유혹>이 지난달 19일 나왔다. 80년대 말 90년대 초 영국에서 유행한 뉴웨이브 사운드를 바탕으로 멜로디를 강조한 5곡이 담겼다. 듣고 있으면 어깨를 가만두지 못할 정도로 경쾌하고 신난다. 마지막 곡 ‘미 앤드 마이 브라더’가 특히 돋보인다.
지난달 10일 서울 홍대앞 디딤홀에서 연 쇼케이스에서는 듀스 출신의 이현도와 함께 ‘고 고 고’를 20년 만에 선보이기도 했다. 듀스 2집(1993)에 수록된 이 노래는 힙합 그룹 듀스와 록 밴드 에이치투오의 공동작업으로 화제를 모았다. 김준원은 “록 음악인이 너무 자기들끼리만 뭉치면 한계가 있다. 대중을 위해 다양한 음악을 하는 이들과도 교류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진은 “에이치투오는 록이라는 경계를 벗어나 디스코·펑키까지 아우르는 신나는 파티 음악을 하려고 한다. 관객들이 신나게 춤출 수 있는 무대를 선사하겠다”고 말했다. 에이치투오는 오는 31일 디딤홀에서 단독공연을 한다. 게스트로 김종서와 김도균(백두산)이 나올 예정이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사진 찬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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