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민의 음악다방
지난해 초 이 칼럼을 처음 시작할 당시 어떤 노래와 이야기로 음악다방 문을 열지 그다지 고민하지 않았다. 첫회는 무조건 김광석으로 풀어가기로 진작에 마음먹은 터였다. 김광석이 세상을 떠난 지 꼭 16년이 흐른 지난해 1월6일 저녁, 고인을 기리는 노래비가 있는 서울 동숭동 학전블루 소극장에선 ‘김광석 따라부르기 2012’ 무대가 펼쳐졌다. 예선을 통과한 일반인 12팀은 김광석의 노래를 형형색색으로 되살려냈다. ‘사랑했지만’은 싱그러운 아카펠라 화음으로, ‘일어나’는 흥겨운 노래와 랩의 어우러짐으로 새 옷을 입었다. 나는 이날 펼쳐진 장면과 단상으로 음악다방 개업식을 치렀다.
다시 김광석이다. 지난주에 본 뮤지컬 <그날들> 때문이다. 김광석의 노래들로 만든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몇달 전 김광석의 노래로 만든 소극장 뮤지컬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먼저 봤다. 주인공을 맡은 포크 가수 박창근은 원곡을 충실히 재현했다. 그 목소리, 그 창법, 그 감성…. 마치 김광석의 생전 무대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관객들의 눈가가 촉촉해진 이유는 극중 이야기보다 노래의 힘에 있는 듯했다.
<그날들>은 달랐다. 김광석의 노래들은 해체되고 재조립됐다. 화려한 편곡을 입은 노래들은 원곡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줬다. 소박했던 원곡이 때로는 강렬한 록 넘버로, 때로는 웅장한 합창곡으로 변신했다. 극에 쓰이는 방식도 새로웠다. ‘기다려줘’는 원래 애달픈 사랑 노래다. 그런데 극에서는 황당한 얘기를 하는 ‘4차원’ 소녀에게 불러주는 노래로 나온다. “난 아직 그대를 이해하지 못하기에”라는 첫 소절에 객석이 웃음바다로 변했다. 낯설면서도 묘한 쾌감이 밀려왔다.
어떤 이는 <그날들>에서 원곡의 감성이 너무 많이 거세됐다며 실망하기도 한다. 내 생각은 다르다. 시간을 견디는 명곡은 그 자체로도 오랜 감동을 주지만, 끊임없이 변주되고 재활용되면서 색다른 즐거움을 줄 수도 있어야 한다. <그날들>에서 불리는 노래들이 원곡이 주는 감동과 같을 순 없다. 하지만 자신의 노래가 새로운 느낌으로 재활용돼 사람들에게 또다른 웃음과 감동을 주는 장면을 김광석이 하늘에서 본다면, 얼굴에 주름을 만들어가며 환한 미소를 짓지 않을까?
동물원 출신 싱어송라이터 김창기는 김광석을 또다른 방식으로 재활용한다. 그가 최근 발표한 2집 <내 머리 속의 가시>의 타이틀곡 제목은 ‘광석이에게’다. 동물원을 함께했던 오랜 벗에게 바치는 곡에서 그는 “네가 날 떠났다는 걸 아직도 받아들일 수 없어”라고 노래한다. 김창기는 말했다. “친구 팔아먹는다는 얘기 듣고 싶지 않아 이 노래를 타이틀로 하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녹음해놓고 보니 이 노래가 가장 좋은 걸 어떡해요. 노래라는 게 결국 내 얘기를 하는 건데, 내 안에 광석이에 대해 맺힌 게 있는 거죠.”
김창기는 19~21일 학전블루 소극장에서 여는 2집 발매 기념 공연 둘째 날 무대에 동물원과 함께 오른다. 김창기가 동물원을 탈퇴한 이후 무려 16년 만이다. 회사의 어느 선배는 “동물원 동무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무대가 보고 싶지만, 김광석이 너무 생각날 것 같아서…”라고 했다. 김광석이 하늘에서 이 무대를 본다면, 내려와서 함께하고픈 마음이 얼마나 간절할까?
김광석이 재활용될수록 나는 그가 그립다. 그러고 보니 지금 나도 김광석을 재활용하고 있다.
서정민 문화부 기자 westmin@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 이런 유언 어때요?…“내가 죽으면 제사 지내지 말고 외식해라”
■ ‘대한민국 1%’ 고위공직자, 그들이 재산 불리는 방법
■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깔았던 호피는 어디로 갔을까?
■ [단독] 일 ‘방위백서’ 또 “다케시마는 일본 영토”
■ [화보] 이집트 군부, 무르시 축출
■ 이런 유언 어때요?…“내가 죽으면 제사 지내지 말고 외식해라”
■ ‘대한민국 1%’ 고위공직자, 그들이 재산 불리는 방법
■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깔았던 호피는 어디로 갔을까?
■ [단독] 일 ‘방위백서’ 또 “다케시마는 일본 영토”
■ [화보] 이집트 군부, 무르시 축출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