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저녁 서울 중구 흥인동 충무아트홀 안 이탈리아 레스토랑 ‘아리안나’에서 뮤지컬 배우 지망생인 이 식당의 아르바이트생들이 뮤지컬 <라이언킹> 장면을 연기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문화‘랑’] 충무아트홀 레스토랑 ‘특별한 공연’
서울 충무아트홀에 있는 레스토랑 아리안나에선 아주 특별한 공연이 매주 3차례 펼쳐진다. 불규칙한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젊은이들이 이곳에선 돈도 벌고 연습도 하며 내일의 화려한 뮤지컬 무대를 준비한다.
서울 충무아트홀에 있는 레스토랑 아리안나에선 아주 특별한 공연이 매주 3차례 펼쳐진다. 불규칙한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젊은이들이 이곳에선 돈도 벌고 연습도 하며 내일의 화려한 뮤지컬 무대를 준비한다.
“오오오! 오늘도 일어나 난 느껴요. 언제나처럼. 오오오! 채울 수 없는 배고픔. 하지만 날 부르는 도시의 비트와 리듬이 들려요. 천상의 메시지처럼….”
지난 20일, 뮤지컬 <헤어스프레이>의 ‘굿모닝 볼티모어’를 부르며 한 쌍의 남녀가 등장하자 레스토랑 이곳저곳에서는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제대로 된 무대, 소품, 분장은 없지만 손님들은 식사를 멈추고 마치 공연장에 온 듯 아마추어 배우들의 노래와 춤에 시선을 빼앗겼다. 배우들은 테이블과 테이블 사이를 오가며 약 1시간 동안 <라이언킹>, <모차르트>, <미스 사이공> 등 유명 뮤지컬의 장면들을 연기하며 때로는 손님들과 악수를 하기도, 때로는 손님들에게 막대사탕을 건네기도 했다. 친구들과 모임을 갖던 사혜정(44)씨는 “비싼 공연표를 사지 않아도 밥을 먹으며 공짜 뮤지컬을 즐길 수 있으니 일석이조 아니냐”며 “아마추어 배우들이지만 실력도 남다른 듯하다”고 말했다.
지난 6월6일부터 서울 중구 흥인동 충무아트홀 안에 위치한 이탈리안 레스토랑 ‘아리안나’에서는 매주 목·금·토요일 저녁 8시부터 이런 광경이 펼쳐진다. 공연을 하는 아마추어 배우들은 이 레스토랑의 아르바이트생들. 이들은 하루 3~4시간씩 레스토랑에서 시간제로 서빙 등의 일을 하고, 나머지 시간엔 모여서 뮤지컬을 연습한다. 프로 뮤지컬 배우를 꿈꾸는 20대의 젊은이들이 일을 하면서 꿈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돕는, 이른바 ‘온 드림’ 프로젝트다.
브로드웨이 레스토랑 벤치마킹
치열한 경쟁 거쳐 15명 선발
시간제로 일하면서 뮤지컬 연습
무대 오른 젊은이들 춤과 노래에
손님들 식사 멈춘채 뜨거운 반응 시작은 아주 우연한 기회를 통해서였다. 충무아트홀·성남아트홀 등 공연장을 끼고 ‘아리안나’라는 이름의 레스토랑 체인점을 운영중인 이성윤 대표는 어느날 이종덕 충무아트홀 사장 등 공연 관계자들과 대화를 하다 “강북에서 가장 좋은 공연장으로 꼽히는 충무아트홀을 끼고 레스토랑 사업을 하는데, 공연과 관련된 이벤트를 해보는 것 어떠냐”는 말을 들었다. ‘말 한마디’에서 출발한 이 아이디어는 신영호(38) 외식사업본부장에 의해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이 대표는 원래 성악을 전공한데다 외식사업에 뛰어들기 전 독일 유학을 마치고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던 신씨를 이 프로젝트를 담당할 적임자로 뽑았다. 신 본부장은 “미국 공연계의 중심인 브로드웨이에 가면 ‘엘런 스타더스트 다이너’라는 유명한 레스토랑이 있는데, 그 레스토랑의 운영 방식을 그대로 따왔다”며 “아리안나도 스타더스트처럼 뮤지컬 공연장 옆에 위치하고 있어 뮤지컬 배우들이 모일 수 있는 기반이 돼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엘런 스타더스트 다이너’에는 뮤지컬 단역배우나 배우 지망생들이 몰려들어 아르바이트생을 뽑는 것이 웬만한 작품의 오디션을 방불케 한다고 한다. 그만큼 배우들의 실력도 프로에 못지않고, 이곳에서 일하다 브로드웨이 프로배우로 데뷔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단다. 그래서 이곳은 브로드웨이를 방문하는 관광객들 사이에서는 꼭 한번 가봐야 할 ‘명소’로 꼽힌다.
프로젝트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지난 4월, 취지를 설명하고 ‘뮤지컬 배우 지망생으로 일자리를 원하는 아르바이트생을 뽑는다’는 광고를 누리집 등을 통해 내자마자 단 나흘 만에 무려 120명의 지원자가 몰려들었다. 이 가운데 치열한 경쟁을 통해 15명이 선발됐다. 충무아트홀 쪽이 프로젝트의 취지에 공감해 적은 비용으로 연습실을 빌려주기로 하면서 본격적인 연습이 시작됐다. 그리고 두 달 동안의 연습 기간을 거쳐 아마추어 배우들은 레스토랑 무대에 첫 공연을 올렸다.
여기 참여하는 배우 지망생들은 모두 “뮤지컬 오디션·연습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는데, 이 기회를 통해 돈도 벌고 꿈에 도전도 할 수 있어 좋다”고 입을 모은다. 이전까지 백화점 보안요원,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는 물론 한강둔치에 가로등을 설치하는 구청 공공근로까지 전전했다는 이하늘(22)씨. 이씨는 “지금까지 20번 넘는 오디션을 보러 다녔고 작은 작품에서 단역도 따냈었지만, 매번 불규칙한 연습시간 때문에 아르바이트에서 잘리기 일쑤였다”며 “학비가 없어 대학도 중퇴했는데, 이 프로젝트로 생활비를 벌며 다시 한번 꿈을 꿀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정보라(28)씨는 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전공한 뒤 석사학위까지 땄지만 뮤지컬 배우의 꿈을 버리지 못해 프로젝트에 도전한 경우다. 정씨는 “꿈을 접고 현실과 타협하려 노력하다 우울증에 걸려 정신과 치료까지 받아야 했다”며 “이 프로젝트는 나에게 꿈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그동안은 무용·연기·노래 레슨을 받는 비용에 허덕이기 일쑤였다”는 김민정(25)씨도 같은 길을 가는 친구들과 함께할 수 있어 이제 마음이 든든하다.
레스토랑 쪽은 이들 배우 지망생에게 일반 아르바이트 시급보다 1.5~2배 많은 급여를 주고, 소정의 연습 비용까지 제공한다. 또 아르바이트를 하는 3~4시간을 빼고 적게는 하루 3시간에서 많게는 6시간까지 충무아트홀 연습장에서 연습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연습시간에는 성악 전공자인 신 본부장이 이들을 지도한다. 뮤지컬 오디션을 보러 갈 땐 아르바이트 시간도 탄력적으로 바꿔준다. 아르바이트생 중 누군가가 프로 배우로 데뷔할 경우, 그 자리는 또다른 지원자로 채워지는 방식으로 ‘온 드림’ 프로젝트는 연속성 있게 진행될 예정이다.
“공연장 무대 위에서는 암전된 상태로 노래하고 연기하기 때문에 관객들을 잘 살필 수 없어요. 그런데 레스토랑에서는 관객들과 더 가까이서 친밀하게 호흡하며 공연할 수 있어 무대에 대한 공포감을 많이 극복할 수 있어요.” 김지혜(25)씨는 관객들이 눈앞에서 기립박수를 치며 호응해줄 땐 프로 배우 못지않은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공연을 시작한 지 한 달 반이 지나자 점차 손님들 중 팬도 생겨나고 있단다. 김보라(23)씨는 “어떤 손님께서 내 이름을 기억해뒀다가 공연 중에 ‘김보라, 잘한다!’고 외쳐주셨는데, 잊을 수 없는 감동을 받았다”고 자랑했다.
강북 최고의 공연장 중 한 곳인 충무아트홀을 찾는 수많은 공연계 인사들이 이 레스토랑에 들른다는 점도 이들에겐 또다른 ‘희망’이다. 레스토랑 무대에서 실력을 쌓으며 공연 관계자들의 눈에 들면 좋은 기회를 얻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충무아트홀 이종덕 사장은 “공연을 여러번 보니까 실력이 출중한 친구들도 몇명 있더라”며 “내년 초 충무가 직접 제작해 무대에 올릴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오디션에 적극 참여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사업적으로 보면 적자일 수밖에 없지만, ‘온 드림’ 프로젝트는 젊은이들을 위한 일종의 사회공헌이기도 해요. 과연 아리안나가 한국의 엘런 스타더스트 다이너가 될 수 있을지, 우리의 실험은 지금부터입니다. 지켜봐주세요.”(이성윤 대표)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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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아리안나’ 레스토랑의 아르바이트생 겸 뮤지컬 배우 지망생들이 공연을 앞두고 충무아트홀 연습실에서 안무 연습을 하고 있다. 아리안나 제공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51번가에 위치한 레스토랑 ‘엘런 스타더스트 다이너’의 모습. 아리안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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