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윤영선(1954~2007) 극작가의 유고작 <죽음의 집 2>를 완성해 처음으로 무대에 올리는 연출가 이성열(왼쪽)씨와 고 윤영선의 아들인 윤성호 조연출.
고 윤영선씨 미발표작 ‘죽음의 집 2’
성호씨가 조연출 맡아 연극 참여
성호씨가 조연출 맡아 연극 참여
인간 존재의 외로움을 진지하게 탐구한 극작가이자 연출가 고 윤영선(1954~2007)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의 미발표 작품 <죽음의 집 2>가 연극무대에 오른다.
극단 백수광부는 8~22일 서울 명륜동 선돌극장에서 <죽음의 집 2>를 공연한다. 윤 작가가 2004년에 쓴 작품으로, 초고 상태로 남아 있다 지난해 제5회 윤영선 페스티벌에서 낭독 공연으로 소개되어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얻었다. 이후 인기 극작가 최치언(43)씨가 초고를 재창작하고, 윤영선의 단짝이었던 후배 연출가 이성열(51) 극단 백수광부 대표가 연출을 맡아 빛을 보게 됐다. 특히 윤영선의 맏아들 윤성호(29)씨가 조연출로 참여해 눈길을 끈다.
선배의 아들과 작업을 하게 된 이씨는 “성호를 처음 본 게 초등학생이었을 땐데 이렇게 함께 일을 하게 되니 내가 나이를 먹었다는 생각도 들고, 아버지와 많이 닮아서 영선 형하고 일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했다”고 웃었다.
이씨의 제안으로 조연출을 맡은 아들 성호씨는 “아버지 생전에 많은 작품을 함께하셨던 분이어서 아버지의 난해한 작품을 어떻게 분석하고 또 무대에서 어떻게 풀어내는지 궁금했다”고 참여하게 된 동기를 밝혔다.
<죽음의 집 2>는 비 오는 어느 날 밤, 한 의사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벙어리 여인에게 이끌려 산골마을 낯선 집에 왕진을 가면서 겪는 이야기다. 의사는 거대한 바위가 짓누르는 집에서 쥐가 된 사내,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들만 늘어놓는 가족들과 만나 악몽 같은 하루를 보낸다. 옛 괴기담 같은 줄거리에 시공간을 초월하는 미스터리한 구조여서 카프카의 소설 <변신>이나 <시골의사>를 떠올리게 한다.
이 연출가는 “바위는 지금 우리 현실로 치면 골목상권에 치고 들어오는 대기업 프랜차이즈점 같은 것이고, 쥐는 피해를 입는 구멍가게 주인이나 동네 사람들 같은 존재”라고 설명했다. 윤성호씨도 “바위는 우리가 사람답게 사는 것을 방해하는 존재와 같이 느껴졌고, 쥐는 그런 것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인간에서 도태되어버린, 마치 카프카 소설 <변신>에서 벌레로 변한 주인공 게오르크 잠자를 연상시킨다”고 풀이했다.
떠나보낸 선배의 작품을 되살리는 것에 대해 이성열씨는 “영선 형은 한국말에 집착해서 끊임없이 언어적 실험을 하며 작품 10개를 남겼는데 모두 다르다. 그래서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윤영선이라는 가치있는 작가를 살아 있게 하는 것은 작품이 공연되어 사람들에 의해 확대 재생산되는 것일 겁니다.”
아버지에 이어 연극계와 인연을 맺은 윤씨는 또 22일부터 9월1일까지 서울 대학로 혜화동 1번지 무대에 오르는 연극 <외로운 사람, 힘든 사람, 슬픈 사람>(연출 전진모)의 극작가로 대학로에 데뷔한다. “윤영선의 아들이란 이유로 주목받는 것이 부담됩니다. 하지만 연극판에 뛰어들었으니 제 작업으로 제 언어를 구축해서 관객과 소통하고 싶어요.”
대를 잇는 선배의 아들을 지켜봐 온 이씨는 인터뷰를 마친 뒤 “부친과 비슷하게 언어에 대한 감각이 예민하다”며 “몇년 안에 제 이름 석 자를 들고 나타날 것 같다”고 몰래 귀띔했다. (02)889-3561~2.
글 정상영 선임기자 chung@hani.co.kr,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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