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민의 음악 다방
누군가의 소개로 지난달 나온 락타 프로젝트 밴드의 첫 음반을 듣게 됐다. 알아봤더니 이 밴드는 밴드 부활의 드러머였던 김성태, 들국화의 세션 기타리스트 정현철, 신촌블루스의 세션 베이시스트 이정민이 주축이 돼 결성한 밴드였다. 조용필, 전인권, 강산에, 정경화, 한영애, 김창완 등 많은 가수들의 공연과 음반 작업에 각자 또는 함께 참여했던 김성태와 정현철이 “우리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해보자”고 의기투합한 것이다.
셋이 모여 호흡을 맞춰가던 무렵, 김성태에게 간암이 발병했다. 수술을 받은 뒤 다행히 경과가 좋아져 녹음을 시작할 수 있었다. 개인 사정으로 밴드를 떠난 이정민 대신 오랜 음악동료인 베이시스트 민재현과 키보디스트 황수권이 참여했다. 하지만 녹음 도중 김성태의 간암이 재발했고, 지난해 11월 끝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고인은 7곡의 드럼 녹음을 남겼다. 이 중 5곡을 살려내 강산에, 정경화, 신윤철, 장재원 등 고인을 추모하는 동료들의 참여로 마무리한 게 이번 락타 프로젝트 밴드의 음반이다.
이 음반을 듣고 개인적으로 음악적 완성도를 따지는 차원을 넘어 가슴을 묵직하게 파고드는 울림을 전해 받았다. 낮고 길게 울리며 멀리 퍼져나가는 보신각 종소리 같은, 온전히 자신만의 음악을 해보고 싶다는 연주자들의 간절한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울림. 그들이 이 음악을 연주할 때만은, 고인이 생전에 가장 좋아했다는 수록곡 ‘빛바랜 사진’의 가사처럼 “내 모든 걸 다 주어도 돌아가고 싶은 그 좋은 날”의 기분이 아니었을까.
얼마 전 시작한 <엠넷>의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케이5>를 보고 깜짝 놀랐다. 국내 정상급 세션 연주자들이 꾸린 밴드가 한 팀도 아니고 두 팀이나 출연한 것이다. 미스터 파파(차진영, 이명원, 김석원, 이상훈)는 누군가가 불러주지 않으면 기회조차 얻기 힘든 세션 연주자들의 고충을 토로했다. 마시따 밴드(신석철, 이경남, 홍진명)의 드러머는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의 셋째아들이다. 신석철은 “대한민국에 록 음악이 거의 없다. 밴드 음악이 더 활성화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출연 계기를 밝혔다. 그들이 멋지게 실력을 발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론 마음이 편치 않았다.
지난달 인터뷰를 했던 국내 정상급 세션 드러머 강수호는 이런 말을 했다. “요즘은 세션 드러머를 찾는 빈도가 내가 한창 일을 많이 할 때에 견줘 20분의 1로 줄어든 것 같아요. 음악시장 자체가 죽고 디지털 싱글 위주로 돌아가면서 제작비용을 최대한 아끼려고 하거든요. 굳이 돈을 들여 세션 연주자를 쓰기보단 싸고 편하게 기계로 대체하는 거죠. 큰일이에요. 요즘 대학 실용음악과가 우후죽순 생겨 졸업생들은 쏟아져 나오는데, 그들이 일할 곳은 점점 줄어드니 말이에요.”
세션 연주자들의 현재 모습은 우리 대중음악시장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듯하다. 가볍고 싸고 쉽게 즐기고 이내 잊어버리는 인스턴트 음악만이 팔려나가는 시대에 장인이 한땀 한땀 수공으로 만들어내는 명품 같은 음악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갈수록 각박하고 메말라가는 세상, 그 세상에 치인 마음을 다독여줄 음악마저 메마른다면 우린 어디서 위로받아야 할까.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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