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막 앞둔 ‘서울 아리랑 페스티벌’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흥얼거릴 줄 아는 아리랑. 대원군 시절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다는 아리랑은 YB, 나윤선이 새로이 부르기도 하고, 무명씨들이 자신만의 자락을 뽐낼 수도 있는 ‘무한변신’ 콘텐츠다. 다음주 서울 광화문광장에선 이 아리랑이 오늘날의 축제로 부활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
우리 민족이라면 누구나 부를 줄 아는 노래 ‘아리랑’. 지난해 말 유네스코가 아리랑을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하자 ‘아리랑의 본고장’임을 내세우는 강원도 정선을 비롯해 온나라 여기저기서 아리랑 축제를 벌이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이 노래 말고 아리랑의 속살을 속속들이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리랑의 시원에 대해선 여러 설이 있다. 청동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주장도 있다. 이들 가운데 대체적으로 모아지는 설이, 강원도와 경상도 산간지역을 중심으로 불리던 노래 ‘아라리’가 조선 후기 경복궁 중수 공사를 계기로 전국으로 퍼져나갔다는 것이다. 흥선대원군이 왕권 강화를 위해 경복궁을 중건하던 7년(1865~1872) 동안 강원도에서 벤 나무를 운반한 뗏목꾼 등이 노래를 전파했고, 이는 전국 곳곳에서 징발된 일꾼들 사이에서 널리 불렸다. 공사가 끝난 뒤 고향으로 돌아간 일꾼들의 의해 전파된 노래는 지역별로 조금씩 다르게 변주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가 가장 많이 부르는 아리랑은 ‘본조아리랑’이라 불리는 노래다. 일제강점기인 1926년 춘사 나운규가 만든 영화 <아리랑>의 주제가가 전국적으로 유행하게 된 것이다. 나운규가 어린 시절 들었던 가락을 떠올려 서양악기를 이용해 새롭게 편곡한 것인데, 경기자진아리랑을 토대 삼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한민족의 정서를 대변하는 노래로 자리매김했다.
본조아리랑은 현대화되어 더욱 다양한 양식으로 변주되고 있다. 와이비(YB·윤도현밴드)가 4분의 3박자인 원곡을 4분의 4박자 록 버전으로 바꾼 아리랑은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거리응원의 주제가처럼 쓰였다. 피겨 스케이트 선수 김연아는 아리랑을 접목한 음악에 맞춘 프로그램 ‘오마주 투 코리아’를 선보여 온국민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고, 한국이 배출한 세계적인 재즈 디바 나윤선은 아리랑을 재즈 버전으로 불러 세계인의 눈물을 자아내고 있다. 미국 야구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류현진이 등판하는 날은 아리랑에 힙합을 결합한 ‘코리안 몬스터’가 흐른다.
이처럼 다양한 아리랑을 발굴하는 작업도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크라운·해태제과는 지난 5월 ‘제1회 크라운해태 전국 아리랑 경연’을 열었다. 국악에 대한 관심이 유달리 강한 윤영달 회장은 전국에 근무하는 임직원들에게 방방곡곡 숨어있는 아리랑을 발굴할 것을 지시했다. 이들은 주민들과 팀을 꾸려 그 지역에서 전승돼온 아리랑을 발굴·연습했다. 예선에 참가한 50팀 중 11팀이 본선에 올랐다. ‘서울아리랑’, ‘이천아리랑’, ‘원주아리랑’, ‘인천아리랑’, ‘공주아리랑’, ‘구미전통아리랑’, ‘영천아리랑’, ‘동래아리랑’, ‘아르랑타령’, ‘거창아리랑’ 등 생소한 노래들이 소개됐다.
대상은 강원도 태백지역의 ‘태백산맥’팀이 부른 ‘광부아리랑’. 1930년대 태백에 광산이 개발되면서 광부들이 부르기 시작했다는 아리랑이다. 정선아리랑과 멜로디는 비슷하지만 박자가 좀더 빠르다는 ‘광부아리랑’의 가사는 이렇다.
“태백선 기차소리는 매봉산을 울리고, 깊은 막장 발파소리는 내마음 울리네. 가기 싫은 병반생활 어느 누가 알겠나. 샛별 같은 자식 생각에 또 한짐을 지네. 오늘 떠날지 내일 떠날지 뜨내기 인생길, 돈 떨어지면 술집문전도 학대를 받네. 아리랑 아리랑 아리라가 났네. 아리랑 고개고개로 날 넘겨주네.”
명창에서 외국인·어린이까지
민요에서 클래식·힙합까지
시대·장소·사람마다 다른
아리랑의 무한 진화 크라운·해태 영업소 직원, 광부, 광부의 가족 36명으로 이뤄진 ‘태백산맥’팀을 지도한 김금수 태백아라레이보존회 회장은 “산에 불을 지르고 땅을 일궈 먹고사는 이들이 부른 ‘화전민의 아리랑’이 ‘광부아리랑’으로 바뀌어 지금도 광부들 사이에서 불려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아리랑은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오는 11~13일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 나선다면 오늘날 살아 숨쉬는 아리랑을 제대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서울시와 서울아리랑페스티벌 조직위원회가 공동주최하는 ‘2013 서울아리랑페스티벌’(조직위원장 윤영달)이 펼쳐진다. 명창이 부르는 전통 아리랑부터 디제이가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으로 재창조하는 아리랑까지 다채로운 아리랑이 어우러지는 축제를 지향한다. 주재연 예술감독은 “끊임없이 새로운 형태로 변용되는 아리랑의 개방성에 주목했다. 아리랑이 단순한 민요에 그치는 게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콘텐츠라는 점을 강조하는 게 이번 축제의 방향”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마쓰리, 브라질 삼바축제 못지않은 서울을 대표하는 문화예술축제로 키워나가겠다는 게 주최 쪽 의지다.
이미 지난달부터 시민참여형 사전행사를 통해 축제 분위기는 달궈지고 있다. 매주 주말 서울 청계광장, 남산골 한옥마을 등에서 열리고 있는 ‘뽐내라 아리랑’ 행사에선 초등학생부터 외국인까지 다양한 이들이 자신만의 아리랑을 불렀다. 휠체어를 타고 무대에 오른 90살 이기영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김옥심 명창의 아리랑을 듣고 크게 감동한 이후로 아리랑에 대한 사랑이 남다르다. 죽기 전에 아리랑을 무대에서 불러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오늘 그 소원이 이뤄졌다”고 말한 뒤 ‘정선아리랑’을 불러 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붉혔다.
본격적인 축제가 시작되면 다양한 형태의 아리랑 난장이 펼쳐진다. 11일 이춘희 명창의 본조아리랑,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의 ‘아리랑 환상곡’ 등 전통적 무대뿐 아니라 피아니스트 임동창이 이번 축제를 위해 만든 ‘광화문아리랑’이 초연되고, 김창완밴드가 록으로 연주하는 아리랑 등 현대적 무대도 선보인다. 임동창은 “좌우 대립관계를 벗어던지고 맨몸으로 만나 아리랑으로 하나 되자는 메시지를 담았다”고 말했다. 12일에는 젊은이들이 아리랑에 맞춰 춤추고 놀 수 있는 ‘춤춰라 아리랑’이 펼쳐진다. 디제이 쿠(구준엽), 디제이 루바토 등이 아리랑을 일렉트로닉 댄스음악으로 변신시킨다. 아리랑이 좌우는 물론 세대 간 벽도 허무는 것이다. 13일 오후에는 세종대로 일대에서 대동놀이 한마당 ‘당신이 아리랑’이 펼쳐진다. 조선시대 전통놀이 가사집 <기완별록>에 실린 경복궁 중건 당시 대원군이 공사에 참여한 일꾼들을 위로하기 위해 벌였다는 가두행렬을, 역사적 고증을 거쳐 1만5000여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퍼레이드로 선보인다. www.seoularirangfestival.com
재외동포를 하나로 묶어주는 아리랑 축제도 열린다. 재외동포재단이 세계한인의 날을 기념해 5일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에서 ‘한민족 문화예술 축제 2013 코리안 페스티벌’을 연다. ‘아리랑으로 다시 만난 한민족’이라는 주제 아래 한국의 3대 아리랑으로 불리는 진도·밀양·정선 아리랑을 비롯해 일본, 중국, 카자흐스탄, 미국 등지에서 재외동포들이 불러온 특색 있는 아리랑을 공연한다.
아리랑만 수십년째 연구해온 김연갑 한겨레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는 “아리랑은 하나이면서 여럿이고, 여럿이면서 하나다. 또 옛것이면서 오늘의 것이고, 오늘의 것이면서 옛것이다. ‘우리 고장 아리랑이 정통’이라고 내세우기보다는 다양한 가치가 살아 숨쉬는 아리랑을 보존·발전시켜나가는 게 아리랑을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한 유네스코의 정신과도 통한다”고 말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민요에서 클래식·힙합까지
시대·장소·사람마다 다른
아리랑의 무한 진화 크라운·해태 영업소 직원, 광부, 광부의 가족 36명으로 이뤄진 ‘태백산맥’팀을 지도한 김금수 태백아라레이보존회 회장은 “산에 불을 지르고 땅을 일궈 먹고사는 이들이 부른 ‘화전민의 아리랑’이 ‘광부아리랑’으로 바뀌어 지금도 광부들 사이에서 불려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아리랑은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서울아리랑페스티벌 ‘뽐내라 아리랑’에 시민들이 참여하고 있다. 서울아리랑페스티벌 제공
‘2013 서울아리랑페스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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