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동포 배우 마이클 리(39)
그랭구아르 역 맡은 마이클 리
“콰지모도와 동일인이라 상상
감정이입이 되다 보니
공연 끝날 즈음엔 늘 눈물범벅”
“콰지모도와 동일인이라 상상
감정이입이 되다 보니
공연 끝날 즈음엔 늘 눈물범벅”
“옛날옛적, 흉측한 몰골 때문에 노트르담 성당에 평생 숨어 산 콰지모도라는 꼽추가 있었다. 그는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이야기를 썼다. 이야기 속에는 음유시인 그랭구아르가 등장한다. 그랭구아르는 콰지모도가 꿈꾸는 자유로운 삶을 사는 사람이다. 그랭구아르는 해설자가 돼 콰지모도와 집시여인 에스메랄다, 군인 페뷔스, 신부 프롤로 사이의 비극적인 사랑과 욕망에 관한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준다. 결국 <노트르담 드 파리>는 콰지모도의 이야기이자, 그랭구아르의 이야기다.”
최근 개막한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 그랭구아르 역을 맡은 재미동포 배우 마이클 리(39·사진)는 8일 인터뷰에서 스스로 재해석한 ‘노트르담의 꼽추’ 이야기를 들려줬다. “콰지모도나 페뷔스는 강렬하지만 이해하기 쉬운 캐릭터예요. 하지만 그랭구아르는 달라요. 잘못하면 작품에 녹아들지 못하는 이방인이 되기 쉽죠. 그래서 콰지모도와 그랭구아르가 동일인이라고 상상해봤어요. 작품을 이해하는 저만의 비밀이죠.”
그는 항상 작품을 준비할 때 노래나 연기보다 작품을 이해하는 데 많은 시간을 쓴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막이 오르고 ‘대성당의 시대’를 부르며 등장하는 마이클 리는 그랭구아르이지만, 극이 종반으로 치달을수록 그는 콰지모도에 감정이입을 한다. “마지막 넘버인 콰지모도의 ‘춤을 춰요. 에스메랄다’를 제대로 들어본 기억이 없어요. 항상 눈물로 뒤범벅되거든요. 남자는 울면 안 된다지만, 전 평소에도 잘 울어요. 하하.”
마이클 리는 공연계 최고의 ‘엄친아’로 불린다. 아버지도 의사, 형도 의사, 그 역시 스탠퍼드대 의대를 졸업했다. “의대 2학년 때 머리를 식히기 위해 뮤지컬 수업을 듣다가 배우의 길을 원하는 ‘가슴의 소리’에 따라 운명처럼 이 길에 들어섰다”고 한다. 그리고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먼저 스타가 된 뒤 2006년 <미스 사이공>으로 국내 무대에 데뷔해 이름을 알렸다. 그는 올 상반기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에서 예수 역을 맡아 그 누구도 보여주지 못했던 섬세한 연기와 3옥타브 반을 넘나드는 ‘겟세마네’ 열창으로 관객과 언론의 극찬을 받는 등 최고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한국과 미국의 문화적 차이 때문에 겪는 고민은 없을까? “미국은 연습시간이 딱 정해져 있는데, 한국은 정해진 시간이 없어요. 처음엔 문화적 충격이자 (그 열정이) 감동이었죠. 이젠 저도 미친듯 연습해요. 하하. 특히 한국어 발음과 억양이 고민인데, 이번엔 (홍)광호가 딱 붙어서 도와줬어요.”
뮤지컬이 직업이어도 작품마다 늘 새로운 도전이다. <노트르담 드 파리>를 공연하면서도 다음 작품인 <벽을 뚫는 남자>의 ‘평범한 공무원’ 듀티율 역을 연습하고 있다.
“전 평범한 일상이 곧 기적이라 생각해요. 한 여자를 웃게 하는 것은 세상을 구하는 것만큼 위대하고 감동적인 일이거든요. 그런 면에서 듀티율은 평범하지만 멋진 역할이에요.” 앞으로는 <헤드윅> 같은 파격적인 작품에도 도전하고 싶은데 “여장이 안 어울릴까봐 너무 걱정”이라고 한다.
그의 남은 꿈은 뭘까? 그는 “처음 <미스 사이공>에 출연했던 21살 때부터 18년째 꿈속에서 살고 있다”며 “그 꿈의 종착점은 내가 하고픈 이야기를 멋진 음악에 담아내는 ‘창작자’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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