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선희 기자
울림과 스밈
‘제2의 난타’로 불리며 지난 10년 동안 한국 공연관광 시장을 이끌어온 논버벌 퍼포먼스(비언어 공연) <점프>가 지난주 공연이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제작사 스태프와 직원들이 지난 5일 공연을 갑자기 보이콧하면서 오후 4시 공연이 갑자기 중단됐고, 표를 산 관객들은 공연시작 시각 15분이 지날 때까지 안내방송조차 받지 못했다. 잘나가던 <점프>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점프>는 택견 등 전통무술이 결합된 코믹극으로, 2003년 초연 이후 스페인·그리스·이스라엘·홍콩 등 세계 각지로 진출해 공연을 펼쳐왔다. 특히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상설공연이 큰 인기를 끌며 한때 연간 매출액이 100억원을 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몇년 수익이 악화되면서 제작사 ㈜예감은 미지급 임금 20억원을 포함해 90억원에 가까운 부채를 지는 등 어려움을 겪어왔고, 최근 대표를 교체한 뒤 법정관리 계획까지 발표했다. 이에 그동안 회생을 위해 임금 삭감 등 고통을 분담해온 직원들과 스태프가 법정관리에 반발하면서 공연을 중단하기에 이른 것이다.
<점프> 사태는 이처럼 표면적으로는 법정관리를 둘러싼 노사갈등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한국 공연관광 시장의 문제점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공연계에선 <점프>의 위기가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공연이 난립하면서 수익성이 악화된 탓이라고 입을 모은다. 현재 외국 관광객을 겨냥한 논버벌 작품은 16개 안팎이다. 한류바람을 타고 일본·중국·동남아 관광객들이 늘어나자 이를 겨냥해 너도나도 ‘언어 소통’의 불편이 없는 논버벌 퍼포먼스 작품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엔 약세 현상에 한-일 관계 경색으로 일본 관광객이 급감했고, 중국이 저가 상품 및 쇼핑 옵션 강요 금지 등을 뼈대로 하는 관광 관련 법을 시행하면서 중국 관광객도 생각만큼 늘지 않고 있다. 패키지 관광과 연계한 옵션 판매 관람객이 70~80%에 이르는 공연관광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관객은 줄어드는데 공연은 늘어나다 보니 가격 출혈경쟁이 심해졌다. <점프> 관계자는 “배우와 스태프가 자체적으로 임금을 삭감하고, 대관료를 낮추려고 상설 공연장 규모를 줄이는 등 자구책을 펼쳐왔지만 자유 관광객이 아닌 패키지 관광객 위주인 현실에서 비슷한 공연이 난립하니 수지타산을 맞추기가 힘들었다”고 하소연했다.
<점프>는 노사협의로 법정관리 대신 자구책 마련에 합의하면서 갈등은 일단락된 상태다. 하지만 한국 공연관광계의 문제점은 여전해 이런 문제가 언제든 다시 불거질 수 있다. <점프> 등 7개 논버벌 퍼포먼스 제작사들은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12일 ‘한국공연관광협회’를 공식 출범했다. 최광일 협회장은 “저가경쟁이 아닌 작품성으로 승부하는 공연관광 문화를 만들고, 패키지 관광객을 넘어 자유관광객들을 겨냥한 다양한 마케팅을 펼칠 계획”이라며 “또한 2015년까지 임진각에서 파주·일산까지 연결해 영국의 에든버러페스티벌과 같은 공연문화축제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최 회장의 말처럼 <점프>의 위기가 한국 공연관광 시장의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는 도약의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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