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음악·공연·전시

어둠 속에 한줄기 빛으로 다가온 재즈

등록 2013-11-21 20:13

2004년 얻은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희귀병으로 시력을 잃은 개그맨 이동우(왼쪽)가 재즈 보컬리스트 웅산(오른쪽)의 가르침을 받고 재즈 가수로 새로 태어났다. 그는 “재즈를 하니 이제 미래가 보인다”고 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2004년 얻은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희귀병으로 시력을 잃은 개그맨 이동우(왼쪽)가 재즈 보컬리스트 웅산(오른쪽)의 가르침을 받고 재즈 가수로 새로 태어났다. 그는 “재즈를 하니 이제 미래가 보인다”고 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문화‘랑’] 이동우와 웅산의 만남
시력을 잃었지만 그에겐 목소리가 있었다. 어느날 그녀가 말을 걸었다. “오빠는 재즈를 해야 해요.” 앨범 <스마일>을 내놓은 개그맨 이동우와 그의 스승인 가수 웅산, 행복을 부르는 그들의 재즈 이야기를 들어봤다

둘의 운명적인 첫 만남은 지난해 1월 이뤄졌다. 개그맨 이동우(43)가 진행하는 <평화방송> 라디오 프로그램에 여성 재즈 보컬리스트 웅산(40)이 출연했다. 비구니가 되려고 절에 들어갔다가 “진정 하고 싶은 건 염불이 아니라 노래”라는 깨달음을 얻고 록 밴드를 거쳐 재즈를 만난 여인. 그의 삶을 들은 이동우의 가슴이 알 수 없는 설렘으로 고동쳤다.

1993년 <에스비에스>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한 이동우는 잘나가는 스타였다. 노래 실력도 상당해 표인봉·홍록기·김경식·이웅호 등 동료 개그맨들과 결성한 보컬 그룹 ‘틴틴파이브’로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 청천벽력 같은 시련이 닥쳤다. 2004년 얻은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희귀병으로 시력을 잃은 것이다. 2009년 지팡이를 짚고 바깥세상으로 다시 걸어나오기까지 그는 어둠 속에 숨어들었다.

1 재즈 앨범 <스마일>을 발표한 이동우가 19일 서울 삼성동 섬유센터에서 앨범 발매 기념공연을 하고 있다. 2 자폐아들의 그림을 담은 이동우 1집 <스마일> 표지. 에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1 재즈 앨범 <스마일>을 발표한 이동우가 19일 서울 삼성동 섬유센터에서 앨범 발매 기념공연을 하고 있다. 2 자폐아들의 그림을 담은 이동우 1집 <스마일> 표지. 에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라디오 방송을 마치고 웅산이 갑작스런 제안을 했다. “오빠는 재즈를 해야 해요. 분명 행복해질 거예요.” 지난 15일 만난 웅산은 당시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틴틴파이브 시절부터 좋은 목소리를 눈여겨보기도 했지만, 이동우씨 얼굴을 보는 순간 ‘나도 웅산이라는 사람처럼 자유롭게 노래하고 싶다’고 말을 건네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내가 가진 재즈를 나눠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동우의 고민이 깊어졌다. “재즈라는 낯선 음악이 높은 산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웅산이라는 사람도 잘 몰랐어요.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떠나지 않았죠.” 하지만 재즈를 권하는 웅산의 흔들림 없는 확신을 보면서 서서히 마음이 기울기 시작했다. 그해 봄 웅산이 이동우에게 노래 몇 곡을 알려주면서 “가사를 외워서 오라”고 했다. 재즈 보컬 가르침의 시작이었다.

우선 재즈 앨범들을 많이 들었다. 공연도 많이 보러 다녔다. 재즈를 부를 때 가장 힘들었던 건 힘을 빼는 일이었다. “재즈는 가장 자연스러운 음악이어서 ‘~ 척’이 들어가면 안 된다. 온몸에 힘을 빼고 불러야 한다”는 웅산의 가르침대로 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았다.

그래도 재즈 수업은 무척 즐거웠다. 매력적인 목소리만으로 상상한 웅산의 모습은 ‘여신’이었다. “아름답고 섹시하면서도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지닌 진정한 고수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져요.” 이동우는 두 눈과 손발이 되어주는 매니저 김동호씨와 늘 함께 수업을 들었다. 역시 음악을 좋아하는 김씨와 수업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얘기를 나누며 복습했다. 그럴 때마다 “오늘 웅산 선생님 표정이 어땠어? 무슨 옷 입고 왔어?” 같은 얘기가 빠진 적이 없었다.

이동우는 밴드와 처음 합주한 순간을 잊지 못한다. 웅산은 이동우에게 연주자의 몸과 악기의 떨림을 하나하나 손으로 느껴보도록 했다. “재즈에서 보컬은 혼자가 아니라 악기와 함께 가야 한다”는 얘기도 했다. “난생처음 만나게 된 저만의 밴드가 코앞에서 연주를 시작하는데, 마치 구름 위에 올라탄 기분인 거 있죠.” 이동우는 연주 위로 자연스럽게 노래를 불렀다. 이를 본 웅산은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가르침을 시작한 지 1년6개월이 지난 어느날 웅산이 말했다. “이제 음반 내도 되겠어요.” 소속사에 디지털 싱글을 내보자고 제안했더니 김영민 에스엠엔터테인먼트 대표가 “기왕이면 정규 음반으로 가보자”며 판을 키웠다. 그렇게 해서 이동우 1집 <스마일>이 지난 14일 발매됐다. 웅산이 이동우를 떠올리며 만든 곡 ‘마이 러브’와 ‘플라이 위드 유’를 비롯해 ‘고엽’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오텀 리브스’, 콜 포터의 ‘아이 러브 패리스’, 조덕배의 ‘꿈에’ 등 11곡을 불렀다. 웅산이 직접 프로듀싱을 맡았다.

“틴틴파이브 시절부터 언젠가는 솔로 앨범을 내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어요. 나이 지긋이 들어 인생이 묻어나는 그런 노래를 하고 싶었기에 적어도 쉰은 넘어야 하지 않을까 막연히 상상했죠. 그런데 생각보다 일찍 실현돼 굉장히 신기하고 실감이 잘 안 나기도 해요.”

이동우 1집 <스마일>
이동우 1집 <스마일>

웅산은 “자연스럽고 진실된 스윙(재즈 특유의 흥겨운 리듬감)과 따뜻한 감성이 잘 살아난 음반이 나왔다. 재즈에 입문한 지 2년도 채 안돼 이런 결과물을 낸 걸 보니, 앞으로 하루하루 재즈가 세포에 속속들이 스며들게 되면 더욱 근사한 재즈 보컬리스트가 될 거라 확신한다”고 평가했다.

요즘 이동우의 얼굴에선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앨범 수록곡인 냇 킹 콜의 노래 ‘스마일’을 앨범 제목으로 정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는 “재즈를 하니 이제 미래가 보인다”고 했다.

“재즈를 하면서 늘 놀랐던 것 같아요. ‘웅산님이 얘기한 행복이 이런 거였구나’ 하고요. 진정한 행복은 한순간 스쳐 지나는 게 아니라 내일도 모레도 계속 행복하겠구나 하고 확신할 때 온다고 생각해요. 불행도 마찬가지죠. 예전에 ‘머지않아 시력을 잃게 될 겁니다’라는 얘기를 듣고는 예고된 불행에 얼마나 괴로워했는지 몰라요. 그런데 이제 정반대 상황이 된 거죠. 이렇게 반가운 반전이 또 있을까요?”

이동우는 ‘슈퍼맨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지난달 철인3종경기에 도전해 완주를 해낸 데 이어, 이번에 재즈 음반을 발표했다. 내년 3월에는 시각장애인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를 다룬 창작극 <내 마음의 슈퍼맨>으로 연극 무대에도 오른다. 이 모든 과정을 카메라에 담아 내년에 다큐멘터리 영화로 개봉할 계획도 갖고 있다. 이날 <한겨레>와의 인터뷰 과정도 모두 카메라에 담았다.

“나의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난 어디로 돌아갈까?” 이번 앨범 수록곡 ‘시간’의 첫 대목이다. 윤종신이 작사·작곡하고 김도향이 부른 원곡이 이동우의 목소리를 입고 또다른 노래로 재탄생했다. 그에게 “노랫말처럼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시력을 잃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진 않냐”고 물었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지금이 좋아요. 20대 때는 어서 30대가 되고 싶었고, 30대 때는 어서 40대가 되고 싶었죠. 다가올 50·60대도 정말 기다려져요. 재즈를 알게 돼 더욱 기대되고 흥분돼요. 나이 들어서 돈 세고 있는 모습보다는 노래하는 모습이 훨씬 더 멋지지 않을까요?”

우문에 돌아온 현답이었다.

“철인3종경기 결승선에 들어왔을 때가 떠올라요. ‘내가 드디어 해냈어’ 하는 성취감이 저를 기쁘게 할 줄 알았는데, 의외의 감정이 들었어요. 그건 ‘감사함’이었어요. 훈련과 경기 내내 옆에서 도와준 이들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닫고는 뜨거워졌어요. 세상에는 힘들어하는 이들이 많거든요. 그들과 나누고 베풀며 앞으로 더 뜨겁게 살고 싶어요.”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