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음악·공연·전시

그대 떠난 길, 들국화 다시 피었네

등록 2013-12-03 15:12수정 2013-12-03 20:36

왼쪽부터 전인권·주찬권·최성원.
왼쪽부터 전인권·주찬권·최성원.
6일 ‘들국화’ 새 앨범 발표

10월 숨진 드러머 주찬권의 유작
드럼 연주 약간 손질 더해 마무리
‘걷고, 걷고’ ‘들국화로 필래’ 등
신곡 5곡 더해 총 21곡 CD 2장에
“행진, 행진, 행진, 하는 거야.”(‘행진’)

들국화가 1985년 발표한 데뷔 앨범은 한국 대중음악사에 자취를 남긴 큰 걸음이었다. 서양음악인 록에 자신들만의 인장을 또렷이 새긴 ‘한국형 록’은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들국화는 그러나 음악 전문가들이 꼽은 한국 100대 명반에서 1위를 차지한 1집에 이어 2집까지 내고 1987년 사실상 해체했다.

“걷고 걷고 또 걷는다/ 새벽 그대 떠난 길 지나/ 아침은 다시 밝아오겠지/ 푸르른 새벽 길.”(‘걷고, 걷고’)

사반세기를 돌아 들국화가 다시 걷는다. 지난해 5월 원년 멤버인 전인권·주찬권·최성원(사진 왼쪽부터)이 다시 뭉친 들국화는 3일 신곡 ‘걷고, 걷고’를 선공개했다. 28년 전 앞만 보고 거침없이 ‘행진’을 하듯 곧게 뻗어나가던 전인권의 목소리에선 이제 주변의 산도 보고 물도 보며 천천히 걸어가는 여유와 연륜이 묻어난다. 약물·도박·술에 빠져 방황하다 다시 일어나 가족과 만나고 노래를 부르게 된 것이 더없이 소중한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어 만든 노래라고 한다.

들국화가 6일 발표하는 새 앨범 <들국화>를 먼저 들어봤다. 21곡을 시디 2장에 담았다. 첫번째 시디에는 ‘걷고, 걷고’, ‘노래여 잠에서 깨라’ 등 신곡 5곡, 조동진의 ‘겨울비’, 김민기의 ‘친구’ 등 리메이크곡 2곡, 홀리스의 ‘히 에인트 헤비, 히스 마이 브라더’, 롤링 스톤스의 ‘애즈 티어스 고 바이’ 등 팝 라이브 버전 2곡이 담겼다. 두번째 시디에 수록된 12곡은 들국화의 기존 히트곡들을 다시 녹음한 것이다. 기존 팬뿐 아니라 들국화를 잘 모르던 젊은 세대들도 단번에 반할 만하다.

첫번째 시디에선 지금은 세상에 없는 주찬권(드럼)의 그림자가 유독 짙다. 그는 대부분의 작업을 마친 뒤인 10월20일 돌연 별세했다. 이번 앨범은 그가 남긴 드럼 연주와 코러스 위로 약간의 손질을 더해 마무리한 것이다. 다시 시작하는 첫걸음이 그의 유작이 된 셈이다. 이 때문에 들국화는 앨범만 내놓고 당분간 공식 활동을 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한다.

주찬권이 작곡하고 전인권이 노랫말을 붙인 ‘하나둘씩 떨어져’에 담긴 사연은 특히나 애절하다. 녹음할 때만 해도 전인권은 후렴구 가사를 완성하지 못해 “나나나~”로 불렀다. 기타 솔로는 주찬권이 직접 연주했다. 그러나 이후 주찬권이 숨졌고, 그제서야 전인권은 후렴구 가사를 완성할 수 있었다. “그대 어디로 갔나/ 숨은듯 어제 오늘/ 그대 어디에 있나/ 기다린 어제 오늘/ 어디에 있나/ 난 울고 있을 뿐.” 기존 녹음분에 덧대어 녹음한 후렴구를 들으면, 전인권의 목소리에서 물기가 묻어나는 듯하다.

‘친구’는 고등학생 시절의 김민기가 바다에 빠져 숨진 친구를 떠올리며 만든 노래다. 들국화는 1997년 캐나다에서 교통사고로 숨진 원년 멤버 허성욱(키보드)을 기리는 마음을 담아 녹음까지 다 마친 상태였다. 이후 주찬권마저 허성욱의 곁으로 가자 전인권은 자신의 삼청동 집에서 보컬 부분만 다시 녹음했다. 절제한 목소리 틈새로 깊은 슬픔이 비어져 나온다.

‘들국화로 필래(必來)’는 애초 음악 하는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아 최성원이 노래하고 주찬권이 코러스를 한 곡이다. 주찬권은 숨지기 바로 전날까지도 코러스를 녹음했다. 최성원은 그의 죽음 이후 주찬권의 목소리 음량을 높여달라고 요청했다. 결국 이 노래는 최성원과 주찬권의 듀엣 곡처럼 됐다. 두 사내는 이렇게 노래한다.

“절망한 적도 있지/ 그냥 포기하고 싶었었던/ 길이 안 보일 때도/ 기적은 우릴 기다렸어/ 친구여 눈 들어 나를 봐/ 이렇게 네 앞에 서 있는/ 또 다시 들국화로 필래/ 세상의 모든 어린 들국화를 위해/ 들국화로 필래.”

세 송이 들국화는 그렇게 만개했고, 세상을 보듬는 그 향기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만 같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사진 들국화컴퍼니 제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