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디(CD)를 언제 발매하느냐보다 음원을 언제 공개하느냐가 중요한 시대가 됐다. 날짜는 물론 정확한 시간까지 예고하는 게 일반화됐다. 그런데 요즘 음원 공개 시간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음원 공개는 보통 오전 10시나 낮 12시에 하는 게 관행이었다. 그러다 지난해 몇몇 대형기획사의 아이돌 가수들이 경쟁적으로 자정에 음원을 공개하기 시작했다. 자정에 공개하는 이유를 명확히 밝히지는 않았지만, 흘러가는 모양새를 보면 충분히 짐작 간다.
음원이 자정에 공개되고 나면, 팬들이 음원사이트에서 열심히 다운로드와 스트리밍을 한다. ‘아침에 사람들이 음원사이트에 들어왔을 때 우리 오빠 노래가 실시간 음원차트 1위에 있어야 한다’는 게 이들의 목표다. 실제로 이러한새벽의 ‘작업’이 목표 달성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기획사는 보도자료를 낸다. “○○○, 음원 공개하자마자 음원차트 점령.” 인터넷 연예 매체들은 이를 받아 기사를 낸다. 포털사이트에서 기사를 접한 사람들은 ‘이 노래가 대세인가?’ 하며 음악을 들어본다. 음원차트 성적이 더욱 탄탄해진다. 기획사와 해당 가수로선 꿈의 순환구조다. 이를 지켜본 다른 가수들도 따라하면서 음원 자정 공개는 하나의 기준이 돼버렸다.
이렇게 되자 음원사이트에서 불만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자정에 음원을 공개하려면 그 시간에 여럿이 매달려 일을 해야 한다. 야근이 일상화된 것이다. 혹여 시스템 오류라도 생기면, 집에서 자고 있는 개발자를 깨워 새벽 내내 한바탕 씨름을 해야 한다. 더는 참지 못한 음원사이트들과 유통사들은 올 초 합의를 이뤘다. 음원을 자정이 아닌 정오에 공개하는 걸 원칙으로 세운 것이다.
이후 이 원칙은 잘 지켜져왔다. 하지만 최근 몇달 사이 버스커버스커, 아이유, 태양 등 몇몇 가수들이 이를 어기고 자정에 신곡을 공개하기 시작했다. 이런 사례들이 잦아지자 씨스타의 효린, 티아라 등도 음원 자정 공개 바람에 올라탔다. 기획사에서 강하게 요구하면 음원사이트는 이에 따를 수밖에 없다.
한 음원사이트의 관계자는 “애초 음원차트 영향력이 강한 가수들이긴 하지만, 그래도 아무런 경쟁자가 없는 시간대에 음원을 공개해 차트에 무혈입성하는 모양새가 보기 좋지는 않다”고 말했다. 음반사의 한 관계자는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는 기준이 뭐냐? 이제 낮에 음원을 공개하는 가수들은 힘이 없어 그렇게 하는 꼴로 비치게 됐다”고 한탄했다.
‘음원을 정오에 공개하는 게 선이고, 자정에 공개하는 건 악이다’라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이건 출발선의 문제다. 다들 정오에 공개하는데 홀로 자정에 공개하는 건, 조금 과장하자면 100m 달리기에서 혼자 50m 앞에서 출발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음원 자정 공개에 대한 뚜렷한 명분이 없다면, 공정한 경쟁의 차원에서라도 정오 공개 원칙에 따르는 게 좋겠다. 그래야 팬들도 밤에 맘 편히 잘 수 있을 테니.
서정민 문화부 기자 westmi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