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애주(66·서울대 명예교수)
80년대 ‘시국춤’ 추었던 이애주
춤꾼 60년 매듭짓는 ‘천명’ 공연
고은·신경림·이수성 등 무대 후원
완판 승무·살풀이·태평무 선보여
“내 춤의 길은 하늘이 내린 운명
춤에는 ‘사회의 역사’ 깃들어야”
춤꾼 60년 매듭짓는 ‘천명’ 공연
고은·신경림·이수성 등 무대 후원
완판 승무·살풀이·태평무 선보여
“내 춤의 길은 하늘이 내린 운명
춤에는 ‘사회의 역사’ 깃들어야”
1980년대 민주화 운동 현장마다 맨발로 나서 ‘시국춤’을 춰 국민들의 가슴에 뜨거운 불을 붙였던 이애주(66·서울대 명예교수·사진)씨.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의 한복판에서 이한열 열사의 죽음을 달래는 바람맞이 춤을 추던 이씨의 모습은 역사의 한 페이지에 오롯이 남아 그 날의 숨가빴던 현장을 기억하게 한다.
이후 이씨는 한성준-한영숙류의 승무로 1999년 인간문화재에 이름을 올린 뒤 2012년까지 울릉도~백두산 등 한반도를 상징하는 곳을 찾아 한국의 통일과 민족번영을 기원하고 민족사의 한을 치유하는 ‘우리땅 터벌림’(태평무 터벌림춤에서 나온 말로 사방팔방 터를 벌리며 뻗어나간다는 뜻) 프로젝트를 이어갔다. 그의 춤은 김영수 작가의 카메라에 담겨 사진으로 기록됐다.
‘우리시대의 춤꾼’으로 불리는 이애주씨가 2014년 새해 초 60여년 춤 인생의 중간 매듭을 짓는 큰 춤판을 벌인다. 50분 동안 쉼 없이 한 호흡으로 추는 완판 승무 <이애주춤 천명(天命)>을 1월6~7일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무대에 올리는 것. 이씨는 25일 인터뷰에서 “15년 만에 펼치는 큰 무대여서 몹시 설레고 떨린다”며 “60여년 춤 인생을 한 번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자 했는데, 이제야 춤꾼의 본분에 맞는 무대를 찾은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대 교수, 승무 인간문화재로 유명한 이씨지만, 전통춤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은 요즘인지라 완판 승무를 펼칠 큰 무대를 기획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이번 무대 역시 고은 시인, 신경림 시인, 이수성 전 총리,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등 이씨의 춤을 아끼는 지인들이 팔을 걷어 마련해 준 무대다. “사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춤판 한 번 벌이는 것은 다 돈 문제랑 연결돼요. 제가 누구에게 도움을 청하는 성격이 아니니 주변 분들이 ‘이러다 이애주의 진짜 춤을 볼 기회가 영영 없을지도 모르겠다’며 앞장 서서 후원모임을 꾸려주신 거예요. 하하하.”
승무는 본래 염불·잦은 염불로 시작해 허튼타령·잦은타령·굿거리·잦은 굿거리를 거쳐 법고·당악·굿거리 과장 등 10과장으로 진행되는 50분의 공연이다. 한성준·한영숙 명인을 거쳐 그가 전수받은 전통승무는 우주의 법칙을 담아낸 느리고 소박한 동작이 특징이다. 이씨는 “승무가 펼쳐지는 과정을 보면 인생의 희로애락, 자연의 춘하추동, 생명의 생장수장(生長收藏) 등이 모두 담겨 있다”며 “요즘처럼 빠른 속도와 화려한 볼거리만을 추구하는 시대에 진정한 ‘느림의 미학’을 선보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번 무대에선는 그의 완판 승무와 함께 숭고미와 절제미를 살린 살풀이, 평화로운 세상을 염원하는 태평무(터벌림)까지, 그의 춤 인생 60년의 정수를 모두 맛볼 수 있다.
이씨는 춤을 시작한 5살 이후 걸어온 모든 춤의 길은 ‘천명’, 즉 하늘이 내린 운명이라고 생각해 공연의 이름 역시 ‘천명’으로 정했다고 한다. 80년대 끓어오르는 민주화의 열망을 몸으로 담아낼 수밖에 없었던 춤꾼의 사명도, 이후 미국, 유럽, 아시아 등 전 세계 30여개 국을 누비며 한국 전통 춤을 알린 것도, 한민족의 평안을 기원하는 터벌림을 펼친 것도 모두 운명 같은 일이었다고 했다. “춤에는 ‘정통성’이라는 중심이 있어야 하지만 또 한가지, 춤을 추는 춤꾼이 살아내는 ‘사회의 역사’가 깃들어 있어야 해요. 제가 지금까지 춘 모든 춤은 그 시대의 역사를 담아내야 하는 춤꾼의 운명에서 비롯된 것이지, 제 의지만으로 춘 것이 아닙니다.” 시대가 흘러 더이상 80년대와 같은 형식의 시국춤을 추지는 않지만, 그는 “앞으로도 춤을 통해 사회를 반영하고 국민을 위로하는 춤꾼으로서의 역할은 큰 틀에서 계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제 춤 인생 한 갑(60년)을 넘긴 그는 올해 초 서울대 교수직을 정년 퇴직했다. 전통춤의 맥을 후대에 알리고 잇는데 남은 평생을 바칠 계획이라고 했다. “요즘 한류열풍이라 세계가 한국 젊은이들의 춤에 열광한다지요? 멋지고 화려한 춤도 물론 필요하겠지만, 그보다 먼저 나의 뿌리, 내 몸짓의 뿌리를 찾는 젊은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그런 젊을이들을 키워내려면 앞으로 춤을 추는 한 걸음, 한 걸음에 더욱 더 혼을 다해야할 듯 합니다.” (02)564-0269.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춤꾼 60년 매듭짓는 ‘천명’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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