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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울림과 스밈] ‘디셈버’의 흥행, 걱정스럽다

등록 2013-12-31 19:49

유선희 기자
유선희 기자
제작비 50억원, 영화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배급사 뉴(NEW) 제작, 스타 감독 장진 연출, 흥행 보증 수표 김준수·박건형 주연, 그리고 영원한 가객 고 김광석의 노래.

이렇게 화려한 요소들로 만드는 뮤지컬 <디셈버: 끝나지 않은 노래>는 연말 뮤지컬계에서 단연 관심작이었다. 그러나 막상 공연이 시작되며 언론과 평단의 평가는 일제히 혹평으로 바뀌었다. ‘이름값 못하는 뮤지컬’이란 비판 일색이다.

뚜껑을 연 <디셈버>는 어느 한 부분만 문제 삼을 수 없을 정도로 여러 측면에서 부실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먼저 줄거리부터 뻔하고 엉성하다. 대학생들의 학생운동과 첫사랑, 그리고 죽음을 다룬 1막의 이야기는 1980~90년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에 단골로 등장하는 너무나 익숙한 것이다. 또한 죽은 첫사랑을 닮은 사람이 나타나 주인공을 사로잡는다는 내용의 2막은 <번지점프를 하다> 등 여러 작품의 신파적 설정을 그대로 베낀 느낌이다.

주옥같은 김광석의 노래들은 억지로 끼워맞추다 보니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하숙집 아줌마가 뜬금없이 죽음을 맞이하면서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부분이나 ‘29살임’을 강조하는 하숙집 복학생이 ‘서른 즈음에’를 부르는 부분에 이어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다 ‘일어나’를 부르는 장면에서는 어이없는 웃음마저 나온다.

처음으로 대사가 있는 ‘정극 연기’에 도전한 김준수의 연기력은 어색함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장진 감독이 영화와 연극에서 보여준 장기인 ‘장진식 유머’ 또한 너무 뜬금없이, 너무 자주 끼어들다보니 극의 흐름을 끊는다는 평을 듣고 있다. 결국, 초보 연출가(장진)와 초보 제작사(뉴)와 초보 연기자(김준수)의 과욕이 빚어낸 결과물이라는 것이 혹평의 요지다.

그럼에도 <디셈버>는 관객이 몰리고 있다. 지난 23일 마지막 티켓 오픈에서는 1월분 2만석이 단 10분 만에 매진됐고, 김준수의 마지막 공연 3000석은 30초 만에 매진됐다. 스타 마케팅의 위력이 발휘되고 있는 셈이다.

이런 흥행은 역설적이게도 한국 창작 뮤지컬의 미래를 어둡게 할 것이란 우려를 하게 만든다. 한국 뮤지컬 시장은 해마다 10% 이상 성장하고 있지만, 유럽·미국 등 라이선스 뮤지컬에 점령당한 지 오래다. 올 한해 무대에 오른 대형 창작 뮤지컬은 5편도 채 되지 않는다. 대형 창작 뮤지컬은 투자사를 구하기도, 공연장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은 실정이 됐다. 일본과 중국에서 ‘뮤지컬 한류’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한국 뮤지컬이 인기라지만, 모두 해외 라이선스 뮤지컬에 스타 캐스팅을 더한 작품들뿐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모처럼 50억원이라는 많은 제작비를 들인 창작 뮤지컬의 완성도가 이 수준이라면, 또 이런 작품이 스타 캐스팅만으로 흥행을 이어간다면 앞으로 해외 라이선스 뮤지컬에 대항할 작품성 있는 창작 뮤지컬의 제작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작품성 없이 스타 캐스팅만으로 창작 뮤지컬을 이어갈 수는 없다. <디셈버>의 ‘부족한 작품성’보다 ‘놀라운 흥행성’에 오히려 더 속이 답답해지는 이유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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