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
서정민의 음악다방
2014년 새해에도 어김없이 1월6일이 다가온다. 김광석(사진)이 세상을 떠났다는 날벼락 같은 소식이 전해진 게 1996년이니 어느덧 18주기다. 기일이 되면 김광석 노래비가 있는 서울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에서 팬들이 김광석의 노래를 부르며 고인을 기리는 ‘김광석 따라부르기’ 노래대회가 열릴 것이다. 박학기 등 음악동료들이 벌이는 추모공연 ‘김광석 다시 부르기’ 역시 올해도 이어질 것이다.
지난해에는 김광석 바람이 더 세게 불었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날들> <디셈버: 끝나지 않은 노래> 등 김광석 노래로 만든 뮤지컬만 3편이다. 인기몰이를 한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는 김광석 공연 장면이 들어갔다. 가수 모창 방송 프로그램 <히든싱어>에선 살아있는 모창자와 죽은 김광석이 대결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김광석의 오랜 벗 김창기는 “광석이는 노래를 엄청나게 잘하는 것도, 목소리가 대단히 좋은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의 노래가 오랜 세월 사랑받는 이유는 진심이 담겨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화려한 아이돌 음악이 가요계를 휩쓰는 가운데 소박하지만 깊은 울림을 주는 노래에 대한 사람들의 목마름이 김광석을 끊임없이 소환해내는 건지도 모르겠다. 당장 나부터도 아이돌 그룹들로 점철된 지상파 방송 연말 ‘가요대전’류 프로그램을 보고 나서 김광석의 흙냄새 나는 목소리가 그리워 시디(CD)장을 뒤적거렸으니까.
김광석은 방송보다 관객과 호흡하고 마음을 나누는 소극장 무대를 선호했다. 학전 소극장에서만 1000회 공연을 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김광석이 생전에 남긴 육필 원고를 모아 최근 출간된 책 <미처 다 하지 못한: 김광석 에세이>(예담 펴냄)를 읽다가 그의 별명이 ‘또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벽에 붙은 김광석 공연 포스터 날짜가 지나서 ‘이제 공연 끝났나’ 싶으면 금세 그 위에 새 공연 포스터가 붙어서 ‘공연 또 해?’ 한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란다.
김광석이 살아있었다면 연말 가요대전 프로그램에 나갔을까? 아닐 것 같다. 그는 차라리 교육방송(EBS) 음악 프로그램 <이비에스 스페이스 공감>(이하 공감) 무대에 서고 싶어했을 것 같다. <공감> 녹화장은 화려한 무대와 조명이 설치된 대형 스튜디오가 아니라 관객이 가수 숨소리까지 느낄 수 있는 소극장이다. 여기서 매주 월~금 공연을 열고 이를 찍어 방송한다. 뛰어난 음악성과 라이브 실력을 갖추고도 방송에 거의 소개되지 못하는 인디 음악, 재즈 등이 <공감>을 통해 널리 전파됐다.
공영방송이 시청자 서비스 차원에서 다양하고 수준 높은 무대를 보여주자는 취지로 2004년 시작한 <공감>이 올해로 10년을 맞는다. 그런데 이상한 얘기가 들린다. 신용섭 교육방송 사장이 <공감> 공연 횟수를 주 5일에서 2일로, 제작 피디를 3명에서 2명으로 줄이려 한다는 것이다. 이에 교육방송 노조는 물론, 음악인들과 음악팬들이 페이스북 서명운동까지 벌이며 반발하고 있다. 한국독립음악제작자협회·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뮤지션유니온·서교음악자치회·자립음악생산조합 등 음악인 단체들은 2일 성명서를 내어 “공익과 공영의 의무나 사명을 저버린 일방적이고 상업적인 결정”이라며 재고를 촉구했다.
김광석도 하늘에서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나만 우려먹지 말고 나 같은 후배들을 더 많이 찾아줬으면 좋겠어”라고. 새해엔 방송에서 더 많은 ‘김광석’을 보고 싶다.
서정민의 음악다방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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