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에 당선돼 무대에 오른 <라스트 로얄 패밀리>(위쪽)와 <디스 라이프>(아래쪽)는 기발한 상상력과 참신한 설정을 앞세운다. <여신님이 보고 계셔>, <날아라 박씨> 등 지난해 사랑을 받은 창작 뮤지컬의 뒤를 이어 올해 뮤지컬계에서 새바람을 일으킬지 주목된다. 알앤디웍스, 뮤지컬컴퍼니 두왑 제공
창작 뮤지컬 2편 나란히 무대에 순종의 가출 소재로 한 ‘라스트…’
현대사회 현실 투사해 해학·풍자
장수마을로 간 저승사자 ‘디스…’
참신한 발상·웃음으로 관객 유혹 새해 첫 달인 1월, 신인 창작자 육성을 위한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으로 탄생한 소극장 창작 뮤지컬 2편이 나란히 무대에 올랐다. 지난해 서울뮤지컬페스티벌 예그린 앙코르에서 각각 최우수상과 우수상을 수상한 <라스트 로얄 패밀리>와 <디스 라이프: 주그리 우스리>다. 작품 모두 라이선스 대작들과 견줄 만한 화려하고 웅장한 무대장치나 스타 캐스팅은 없지만, 기존 작품과 차별화된 상상력과 신선함으로 관객들을 유혹한다. ■ 잘 뽑아낸 퓨전 사극 <라스트 로얄 패밀리> <라스트 로얄 패밀리>는 조선의 마지막 왕족인 고종, 명성왕후, 순종의 이야기를 다룬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에 기반해 왕가의 위엄을 드러내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시종일관 “얼렁뚱땅 뒤죽박죽인 이야기, 픽션의 픽션”이라고 강조하며 관객들에게 이 작품이 ‘한바퀴 비틀어 꼰 퓨전 사극’임을 강조한다. <라스트…>는 해설자가 순종의 내시였던 할아버지로부터 전해 받은 책에 담긴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으로 펼쳐진다. 순종의 내시는 비틀스의 폴 매카트니로, ‘폴 내관(내시)’으로 불린다. ‘조선의 국모’ 명성황후는 아들 순종의 교육에 모든 것을 거는 ‘극성엄마’고, 고종은 아내의 바가지에 기를 펴지 못하는 ‘고개 숙인 아버지’다. 그리고 순종은 궁궐 생활의 답답함과 엄마의 등쌀에 “벗어나고파”를 외치며 음악에 푹 빠진 청소년이다. 어느날 유일한 친구였던 내시 폴이 명성황후로부터 출궁을 명받자 순종은 폴을 따라 영국으로 가겠다며 가출을 감행한다. 하지만 일이 꼬여 순종은 폴 대신 남사당패 꼭지와 꼭두를 만나게 되고, 가출한 순종을 찾기 위해 고종과 명성황후는 조선 예인 선발대회를 연다. <라스트…>는 촘촘하게 잘 짜인 구성이 강점이다. 현대 가족의 면면을 고종일가에 투사해 현실을 해학적으로 풍자하면서 동시에 갖가지 상상력을 동원해 시대를 넘나드는 소재를 흥미롭게 풀어낸다. 가출한 순종을 찾기 위해 내관들이 사용하는 에스엔에스(카카오톡·페이스북·트위터)를 한자 동음어로 푸는 언어유희를 구사하는가 하면, 오늘날의 오디션을 그대로 베낀 조선 예인 선발대회가 펼쳐진다. 순발력 있는 대사와 리듬감 넘치는 전개, 절묘한 타이밍에 터져나오는 배우들의 애드리브도 매력적이다. 6명의 배우 모두가 각각 4~5가지 이상의 배역을 소화하는 점도 감탄을 자아낸다. 전통국악과 현대음악을 넘나드는 음악 역시 귀에 감긴다. 과연 순종은 방황을 끝내고 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2월23일까지. 충무아트홀 소극장 블루. 1577-3363. ■ 두 저승 차사의 고생기 <디스 라이프> <디스 라이프: 주그리 우스리> 역시 발상의 참신함이 <라스트…>에 뒤지지 않는다. 의학기술이 발달해 죽는 사람이 줄어들면서 저승차사들도 실적 압박에 시달린다는 설정에서 극은 출발한다. 죽은 영혼을 데려오기 위해 베테랑 차사 태을과 초보 차사 호경이 콤비가 되어 이승(디스 라이프)인 ‘단명군 힘들면 주그리’로 떠난다. 하지만 이들이 당도한 곳은 마을 사람 5명의 나이를 합쳐 460살이 넘는 장수마을 ‘우스리’. 손발이 안 맞는 두 차사는 모습을 안 보이게 만들어주는 완장을 잃어버리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노인들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도 죽을 생각 따윈 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차사들은 삶에 활력이 넘치고, 외지인에게도 살가운 정을 주는 우스리 노인들의 모습 속에서 ‘유사가족’을 경험한다. 결국 이들은 임무를 망각할 만큼 마을 사람들에게 애정을 느끼게 된다. <디스…> 역시 웃음을 자아내는 소소한 장치들을 갖추고 있다. 차사들이 저승명부 대신 ‘아이대드’(아이패드 패러디)를 쓰고, 지도 대신 ‘지피에스(GPS)’를 이용하는 식이다. 치매에 걸린 최고령자 ‘거북할매’, 영어 좀 쓰는 배운 할머니‘소피’, “누난 내 여자니께~”를 외치는 ‘정구’ 등 캐릭터들이 주는 웃음도 쏠쏠하다. 한 시간 반 동안 실컷 웃긴 하지만, 다소 산만한 전개 탓에 주제의식이 불분명하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뮤지컬임에도 노래 비중도 적은 편. “단계적으로 발전하는 뮤지컬의 모범사례가 되도록 하겠다”는 협력 프로듀서인 뮤지컬평론가 조용신씨의 말처럼, 공연을 거듭하며 차츰 보완해 나가야 할 듯하다. 2월26일까지. 대학로 예그린씨어터. (02)714-0530.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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