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인 현대무용가 이광석씨는 춤을 시작한 26년 전과 지금의 바람이 똑같다고 했다. “춤꾼이 춤만춰서 먹고살 수 있는 세상이 되는 것.” 이씨는 다음달 14~15일 춤 인생을 담은 신작 <이광석 쿰바카>를선보인다. 신소영 기자
20살 늦깎이로 무용에 입문
보청기 낀 채 매일 12시간 연습
국외 콩쿠르 휩쓸며 두각 드러나
“제겐 소통할 수 있는 도구가 춤
제 춤인생 담은 작품 올립니다”
보청기 낀 채 매일 12시간 연습
국외 콩쿠르 휩쓸며 두각 드러나
“제겐 소통할 수 있는 도구가 춤
제 춤인생 담은 작품 올립니다”
현대무용가 이광석(46). 그는 이름 석자보다 ‘춤추는 베토벤’이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하다. 보청기를 껴도 작은 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 선천적 청각장애인(5급)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이미 40대 중반을 넘어섰다. 장르를 불문하고 춤판에서 무대에 서는 40대 무용수는 흔치 않다.
그런 이씨가 다음달 14일~15일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마포아트센터와 와이즈발레단이 기획한 <대한민국 넘버 원 댄서> 프로젝트의 첫 주자로 선정돼 신작 <이광석 쿰바카>로 무대에 서는 것.
쿰바카는 ‘숨을 참는다’는 뜻의 요가 용어로, 숨을 참으며 묵묵히 걸어온 그의 춤 인생을 녹여낸 작품이다. 그와 오랜 친분을 가진 후배 유선식씨가 안무를 맡았다. “제 춤 인생을 담은 작품을 무대에 올리되, 제3자의 객관적 눈으로 재해석된 ‘이광석’을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어렵지 않게, 대중들 눈높이에 맞게.”
그는 요즘 신작으로 관객들을 만날 기쁨에 하루 6~7시간씩 연습을 하는 강행군을 이어가고 있다. “나이가 있어서인지 연습 도중 자꾸 숨이 찬다”는 그는 하루 1~2시간씩 헬스를 하고, 일주일에 3~4번씩 고기를 먹으며 체력 보강에도 힘쓰고 있다고 했다.
청각장애자인 그는 어떻게 춤을 시작하게 됐을까? 이씨는 원래 스트리트 댄서로 춤에 입문했다. “학창시절 마이클 잭슨이 인기였는데, 브레이크 댄스에 미쳐 길에서 매일 춤을 췄죠. ‘끼가 있으니 무용을 해보라’고 사람들이 권유하더라고요. 그 때 제가 뭐랬는 줄 아세요? ‘무용이 뭐예요?’ 하하하.” 호기심에 동네 무용학원에 등록을 했다. 타고난 재능을 증명이라도 하듯 레슨을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아 서울예대 무용과에 덜컥 합격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무용을 하면서 그는 청각장애가 무용수에게 얼마나 극복하기 힘든 장벽인지 깨닫게 됐다. “당시엔 귀에 거는 보청기를 썼는데, 춤추다 보청기가 빠지기 일쑤였어요. 땀을 흘리면 염분 때문에 고장도 쉽게 났죠. 성능도 안좋아 작은 음악 소리는 거의 들을 수 없었어요.” 볼륨을 최대로 올리고 매일 12~14시간씩 춤을 췄다. 연습실에서 쓰러져 자는 날이 2년 내내 반복됐다. “실력보다 음악이 잘 안 들려도 감으로 박자를 맞추는 ‘눈치’가 더 많이 늘었던 듯 해요. 하하하.”
20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시작한 무용이지만, 그는 한국인 최초 요코하마 콩쿠르 최우수상, 나가노 콩쿠르, 홍콩 국제 콩쿠르 등에서 대상을 수상해 해외에서 먼저 실력을 인정 받았다. 이후 국내에서도 무용가와 안무가로 이름을 알리며 현대무용의 대중화를 위해 꾸준한 활동을 벌여왔다. 하지만 선천적 재능과 뼈를 깎는 노력으로 실력을 인정받아도 ‘직업 춤꾼’으로 살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실력보다 학벌과 인맥이 더 중요한 대한민국 춤판에서 아무리 많은 해외 콩쿨에서 입상한다해도 춤만 춰서는 도저히 먹고 살 수 없었다. 수십번 “생계 때문에” 춤을 그만둘 생각을 했다. 지난해에는 나이를 핑계 삼아 그 결심을 굳혔던 터였다. “그 즈음 텔레비전에서 <댄싱9>이라는 댄스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봤어요. 20대 젊은 후배들이 절박하게 춤을 추더군요. 순간, ‘아! 나도 40대 춤꾼으로서 뭔가 보여줄 의무가 있다’는 생각에 정신이 확 들더라고요.”
그는 춤을 떠나겠다는 생각 대신 관객들이 춤을 보러 몰려오게 만들겠다는 새 목표를 세웠다. “춤꾼으로서 제 삶이 50살까지일지 60살까지일지 모르지만, 제겐 소통할 수 있는 도구가 춤밖에 없어요.” 청각장애를 의지로 이겨내고 ‘대한민국 넘버 원 춤꾼’이 됐듯 그는 이 목표 역시 이루리라 믿는다. 그 믿음을 현실로 바꾸기 위한 시작이 바로 이번 <이광석의 쿰바카>다. 마포아트센터 아트홀 맥. 02-3274-8600.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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