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밴드 스매싱 펌프킨스의 기타리스트 제프 슈로더는 지난해 8월부터 여섯달 동안 어머니의 나라 한국에 머물렀다. 미국으로 돌아가기 이틀 전인 지난 13일 서울 홍대 앞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우리 동네처럼 친숙해진 이곳이 많이 그리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문화‘랑’] 제프 슈로더 한국생활 6개월
세계적 밴드 스매싱 펌프킨스의 기타리스트 제프 슈로더는 지난 반년간 홍대앞 ‘자취생’으로 지냈다. 어머니의 나라에서, 한국의 음악인들 그리고 문인, 미술가들과 교류하며 느낀 이야기를 <한겨레>가 출국 전 만나 들었다.
세계적 밴드 스매싱 펌프킨스의 기타리스트 제프 슈로더는 지난 반년간 홍대앞 ‘자취생’으로 지냈다. 어머니의 나라에서, 한국의 음악인들 그리고 문인, 미술가들과 교류하며 느낀 이야기를 <한겨레>가 출국 전 만나 들었다.
“이젠 우리 동네처럼 친숙해진 이곳이 많이 그리울 거예요.”
13일 오후 서울 홍대 앞의 한 카페 2층 테라스에서 제프 슈로더(40)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어머니의 나라 한국에 온 지 어느덧 여섯달. 이틀 뒤인 15일 미국행 비행기에 오를 그였다. ‘1979’, ‘투데이’ 등으로 유명한 세계적인 밴드 스매싱 펌프킨스가 곧 시카고에서 새 앨범 작업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스매싱 펌프킨스는 1990년대 중반 너바나, 펄 잼 등과 함께 세계 음악 시장에 얼터너티브 록 열풍을 일으킨 거물 밴드다. 그는 이 밴드의 기타리스트다.
스매싱 펌프킨스 기타리스트
2년 전 타계한 어머니 성 넣어
홍대 앞 자취하며 공연 즐겨
아시안체어샷 앨범 PD도 맡아
내년엔 리더인 빌리와 함께 와
한국밴드와 협업 앨범 낼 계획
전북 익산이 고향인 어머니는 2년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는 주한미군으로 한국에 온 미국인과 결혼해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그를 낳았다. 어머니는 한국 음식을 만들어주고 한국 문화를 알려주었다. 그는 언젠가 어머니 나라에 꼭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어머니를 떠나보낸 뒤 이름 중간에 어머니 성을 넣어 전체 이름이 제프리 ‘김’ 슈로더가 됐다. 어린 시절부터 기타를 치긴 했지만, 처음부터 전업 음악인이 될 생각은 아니었다.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재학 시절 밴드 활동을 하긴 했지만, 그의 꿈은 문학 교수였다. 비교문학 박사과정을 밟던 2006년 지인의 소개로 로스앤젤레스에 새 앨범을 녹음하러 온 스매싱 펌프킨스의 리더 빌리 코갠을 만났고, 이듬해 새 앨범 공연 투어 때부터 기타리스트로 합류하게 됐다. 그는 대학생이던 2002년 처음 한국을 방문했다. 스매싱 펌프킨스 멤버로 2010년과 2012년 두 차례 공연을 위해 한국을 찾기도 했다. 그에게 한국은 어머니처럼 포근했다. 지난해 8월 스매싱 펌프킨스 말레이시아 공연을 마치고 긴 휴가를 얻은 그는 곧장 한국으로 날아왔다. 서울 홍대 앞에 방 두 개짜리 연립주택을 얻어 자취생활을 시작했다.
대중음악평론가 박은석씨를 알게 되면서 함께 홍대 앞 밴드들의 공연을 보러 다녔다. 그는 로큰롤라디오, 이디오테잎, 잠비나이, 갤럭시 익스프레스, 아시안 체어샷, 코어매거진 등의 공연을 특히 인상깊게 봤다고 했다. “아시안 체어샷은 일렉트릭 기타 리프 중심의 묵직한 사운드에 한국적 감성을 담아 독특한 ‘하이브리드 사운드’를 만들어내요. 일렉트로닉 음악에 라이브 드럼을 결합한 이디오테잎도 인상적이고요, 로큰롤라디오는 기타만으로 만들어내는 다양한 사운드가 마음에 들어요.”
그는 한국 밴드들로부터 많은 음악적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실력을 갖춘 한국 밴드들은 세계 시장에서 충분히 통할 잠재력을 갖고 있어요. 다만 음악을 어떻게 알리느냐가 중요한데, 외국 페스티벌에 한번 참가하고 마는 것보다는 지속적인 공연 투어를 통해 팬층을 쌓아나가는 것이 더 효과적인 것 같아요.”
한국에서 머무는 동안 직접 음악 활동에 나서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서울국제뮤직페어(뮤콘) 콘퍼런스에 대담자로 나서는가 하면, 홍대 앞 인디 밴드들의 자발적인 음악축제 ‘잔다리 페스타’에서 코어매거진과 함께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추모 무대에 올라 기타를 연주하기도 했다. 노브레인, 브라이언 등이 참여한 캐럴 앨범 <이츠 크리스마스 타임 인 서울>에도 동참했고, 연말에는 노브레인 공연 무대에 올라 협연도 했다. “노브레인과 함께한 무대가 특히 즐거웠어요. 공연 경험도 많고 엄청나게 에너지 넘치는 밴드예요.”
그는 아시안 체어샷의 새 앨범 프로듀서를 맡기까지 했다.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땐 예산도 부족하고 일도 너무 많을 것 같아 거절했어요. 하지만 좋아하는 밴드의 간절한 부탁을 끝까지 모른 척할 수가 없더라고요. 결국 스매싱 펌프킨스와 함께 일하는 엔지니어를 시카고에서 불러들여 작업했어요. 결과물에 충분히 만족합니다.” 아시안 체어샷의 새 앨범은 현재 미국에서 마무리 믹싱 작업중이다.
한국에서 음악인들하고만 교류한 게 아니다. 그는 미국에서 황석영 작가의 소설 <오래된 정원> 영문판 표지에 소개글을 쓴 적이 있다. 홍대 앞을 걷다가 우연히 황 작가와 마주쳐 인사하고 이 얘기를 했더니 반갑게 맞아주었다. 이후 몇 차례 더 만나 술잔을 부딪혔다. 홍대 앞에서 활동하는 문인, 미술가 등과도 종종 어울렸다. “이곳 홍대 앞에선 여러 장르 예술가들이 함께 어울려서 더욱 마음에 든다”고 그는 말했다.
“사람들끼리 자주 만나 밤늦게까지 맛있는 거 먹고 술 마시며 즐기는 문화가 특히 좋았어요. 미국에는 그런 문화가 없거든요. 밴드 문화도 그래요. 미국 밴드들은 멤버들이 서로 경쟁도 하고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거든요. 그런데 한국 밴드들은 멤버들끼리는 물론 다른 밴드와도 친구나 가족처럼 지내는 것 같아 좋아 보여요. 그런 관계가 오랫동안 음악 활동을 하는 데 자양분이 되거든요.”
한국 음식 중 뭘 좋아하냐고 물으니 그는 “한국 음식을 너무 좋아해서 탈”이라며 “맛있는 걸 많이 먹어 살쪄서 걱정”이라고 했다. 삼겹살, 민물장어, 간장게장, 심지어 외국인들이 꺼리는 산낙지까지 웬만한 한국 음식은 다 먹어봤단다. “미국으로 돌아가서 햄버거만 먹을 생각 하니 끔찍해요. 아시안 체어샷 작업을 위해 한국 왔다가 돌아간 엔지니어는 스튜디오 근처 한인마트에서 소주를 사다 먹는대요. 저도 그러려고요.”
그는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주말을 제주도에서 보냈다. “한국에 있으면서 베트남 할롱베이에 다녀왔는데 그곳보다 제주도가 훨씬 더 좋았어요. 내 인생에서 가본 가장 아름다운 곳 중 하나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어요. 성산일출봉 절벽에서 사진을 찍어 그 자리에서 빌리(스매싱 펌프킨스 리더)에게 메일로 보냈어요. ‘다음에 한국 공연 오면 이 섬에 꼭 같이 오자’고요.”
이제 돌아가면 언제 또 한국에서 볼 수 있을까? “당장은 스매싱 펌프킨스 새 앨범 작업에 전념할 거예요. 올해 안에 완성하는 게 목표죠. 새 앨범 월드투어 들어가면 한국에 꼭 오고 싶어요. 빌리도 가장 좋아하는 공연 장소로 꼽거든요. 빠르면 내년쯤 오지 않을까 해요.”
“돌아가서도 이 동네가 계속 생각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이렇게 여러 분야 예술가들이 넘쳐나고 역동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곳이 또 있을까요? 다음에 밴드 공연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또 오게 되면 개인 음악 작업도 하고 한국 밴드와 컬래버레이션(협업) 앨범도 만들 구상을 하고 있어요. 이곳은 나에게 많은 영감과 에너지를 주거든요.”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스매싱 펌프킨스 기타리스트
2년 전 타계한 어머니 성 넣어
홍대 앞 자취하며 공연 즐겨
아시안체어샷 앨범 PD도 맡아
내년엔 리더인 빌리와 함께 와
한국밴드와 협업 앨범 낼 계획
전북 익산이 고향인 어머니는 2년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는 주한미군으로 한국에 온 미국인과 결혼해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그를 낳았다. 어머니는 한국 음식을 만들어주고 한국 문화를 알려주었다. 그는 언젠가 어머니 나라에 꼭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어머니를 떠나보낸 뒤 이름 중간에 어머니 성을 넣어 전체 이름이 제프리 ‘김’ 슈로더가 됐다. 어린 시절부터 기타를 치긴 했지만, 처음부터 전업 음악인이 될 생각은 아니었다.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재학 시절 밴드 활동을 하긴 했지만, 그의 꿈은 문학 교수였다. 비교문학 박사과정을 밟던 2006년 지인의 소개로 로스앤젤레스에 새 앨범을 녹음하러 온 스매싱 펌프킨스의 리더 빌리 코갠을 만났고, 이듬해 새 앨범 공연 투어 때부터 기타리스트로 합류하게 됐다. 그는 대학생이던 2002년 처음 한국을 방문했다. 스매싱 펌프킨스 멤버로 2010년과 2012년 두 차례 공연을 위해 한국을 찾기도 했다. 그에게 한국은 어머니처럼 포근했다. 지난해 8월 스매싱 펌프킨스 말레이시아 공연을 마치고 긴 휴가를 얻은 그는 곧장 한국으로 날아왔다. 서울 홍대 앞에 방 두 개짜리 연립주택을 얻어 자취생활을 시작했다.
제프 슈로더는 지난해 말 국내 펑크록 밴드 노브레인과 협연하기도 했다. 임훈 작가 제공
제프 슈로더가 속한 밴드 스매싱 펌프킨스는 곧 새 앨범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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