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음악·공연·전시

우리의 몸짓이 ‘제주의 상처’에 위로가 되길…

등록 2014-03-02 20:45

‘시네댄스’ 영화 <제주: 년의 춤> 마지막 장면을 촬영 중인 28일 오후 제주시 조천읍 돌문화공원 현장에서 4·3 사건 유족과 자원 출연자들이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평화를 염원하는 뜻을 담은 ‘평화의 서클 춤’을 추고 있다.  제주/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시네댄스’ 영화 <제주: 년의 춤> 마지막 장면을 촬영 중인 28일 오후 제주시 조천읍 돌문화공원 현장에서 4·3 사건 유족과 자원 출연자들이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평화를 염원하는 뜻을 담은 ‘평화의 서클 춤’을 추고 있다. 제주/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시네댄스 ‘제주: 년의 춤’
마치 거대한 비석 같은 현무암 사잇길을 따라 한 무리의 사람들이 줄을 서 들어선다. 이윽고 방사탑이 늘어선 넓은 광장으로 나온 이들은 노오란 유채꽃 화분을 중심축 삼아 동그란 원을 만든다. 원이 완성되자 조용하고 느린 음악에 맞춰 두 손으로 땅을 짚고, 가슴에 손을 얹고,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번쩍 드는 동작을 반복한다. 단순한 동작은 어느새 빨라진 음악과 함께 자유롭고 격렬해진다. 누군가는 덤블링을 하고, 누군가는 굿을 하듯 겅중겅중 뛰어오른다. 여기저기서 기쁨의 환호성이 터진다. 무아의 상태다. 춤은 대지와 인간, 하늘을 하나로 연결하며, 온 세상에 따뜻한 위로와 평화의 염원을 전한다.

지난 28일 제주시 조천읍 돌문화공원. 쉼 없이 40분 가까이 계속된 춤사위 속에서 “컷! 쉬었다 갈게요~”라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그제야 다시 현실의 경계로 넘어온 듯, 사람들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들은 영화 <제주: 년의 춤>의 마지막 장면을 촬영 중이었다. 제주 4·3 여성 희생자를 기리고 평화를 염원하는 뜻에서 사유진 감독(기록영화제작소 빈 山)과 최경실 무용가(스프링 댄스 시어터)가 공동 제작하는 이 영화는 대사보다 춤으로 모든 것을 표현하는 ‘시네댄스’ 영화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도 몸으로는 표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사 감독이 택한 표현방식이다.

사 감독은 2012년 광주 5·18을 다룬 <햇살댄스프로젝트 ver. 광주>를 시작으로 지난해에는 티베트의 독립을 요구하며 분신한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피스 인 티베트: 눈물의 춤>을 만들었다. 이번 영화는 사 감독의 세 번째 프로젝트다. 1·2편에 출연했던 최 대표가 공동제작자로 나섰고, 재미 무용가 이도희씨, 김미숙 제주춤예술원 대표 등도 힘을 보탰다. 사 감독은 “희생자 중 더 철저히 유린당한 여성들, 하지만 강인한 생명력과 저항정신을 가진 여성들에게 주목했다”며 “촬영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오늘 춤은 그 자체가 독립적인 추모행사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4·3 여성 희생자 춤으로 넋 기리는
사유진 감독의 세번째 추모 영화
월령 앞바다·터진목·다랑쉬오름…
유린당한 아픔의 현장 곳곳 담아

영화 촬영 자체가 추모의식 행사
4·3 유족도 참여…“큰 위안 받아”
내년 추모제 때 시사회 뒤 공개

이날 촬영에 임한 사람들은 모두 행사의 뜻에 공감한 자발적 참여자들이다. 서울에서만 40여명이 자비를 들여 내려왔고, 제주에서도 ‘4·3 희생자 유족회 어머니회’ 회원 20여명 등 모두 40여명이 모였다. 서울에서 온 홍성애(63)씨는 “최근 4·3항쟁의 명칭에조차 딴죽을 거는 사람들이 생기는 등 역사적 의미가 폄훼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여성 희생자의 넋을 위로한다는 뜻은 물론, 그 뜻을 평화로운 몸의 언어인 춤으로 표현한다는 것이 좋아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렇게 모인 80여명은 오전 10시부터 해가 질 무렵까지 촬영에 참여했다. 단순한 동작이라 긴 연습은 필요 없었다. 리허설도 딱 한 번으로 족했다. 이날 춤은 일명 ‘4·3 평화의 서클 춤’으로, 최 대표가 포크댄스의 일종인 ‘서클댄스’를 응용해 창작했다. 그는 “땅을 짚는 동작은 희생자와 황폐화된 제주의 땅을 위로하는 뜻이고, 가슴에 손을 얹는 동작은 그에 대한 미안함을 표현하는 것”이라며 “마지막으로 하늘 높이 팔을 드는 행위는 우리의 마음을 하늘로 보내 축복을 기원하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영화는 월령 앞바다, 성산일출봉 근처 터진목, 다랑쉬오름 등 4·3의 아픔이 서린 공간에서 두루 담았고, 이미 90% 이상 촬영을 마친 상태다. 내년 4·3항쟁 추모제에서 시사회를 연 뒤 일반에도 공개할 예정이다.

올해는 4·3사건 66주기다. 최근 ‘4·3 국가 추념일 지정 입법예고’를 둘러싸고 보수단체의 반대시위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60년이 넘게 지나도 진정한 화해와 위무를 주고받지 못하는 인간들의 편협함에 가슴 아프지만, 오늘 이 춤으로 큰 위안을 받고 간다”는 박수자(61) 유족회 어머니회장의 말에 가슴이 시린 이유다.

제주/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