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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텅 빈 청계천 골목은 상상의 놀이터”

등록 2014-03-23 18:50수정 2014-03-23 22:37

사진가 제이안(안정희)
사진가 제이안(안정희)
휴일풍경만 10년 찍은 작가 제이안

80년 언론통폐합때 아나운서 해직
뉴욕에 14년 머물며 혼자 사진공부
“세계 대도시보다 청계천 매력적
색 오묘…추억과 상상의 여백 있어”
“4년 전 어느 일요일 청계천 세운상가 옆 골목에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듯, 전혀 다른 세상을 발견했어요. 2004년 처음 사진을 찍으러 갔던 곳을 다시 찾아갔는데, 마침 휴일이라 텅 비어 있었죠. 하지만 수많은 표정과 이야기가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휴일마다 ‘상상의 놀이터’로 달려가기 시작했어요.”

25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다섯번째 개인전 ‘청계천-기억될 시간들’을 열고 있는 사진가 제이안(안정희·사진)은 하고 싶은 얘기가 많은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작품들은 10년 동안 같은 공간의 달라진 풍경을 기록한 일종의 다큐멘터리이기 때문이다.

평일에는 서울에서도 가장 북적거리는 곳이지만 휴일엔 적막한 폐허로 돌변하는 청계천 공구상가에서 그를 붙잡은 풍경들은 무엇이었을까. 닫힌 셔터마다 스프레이로 쓰인 ‘소변금지’ ‘남녀 종업원 모집’ ‘공장 급매물’ 같은 글씨, 담벼락에 걸어둔 때에 전 작업복, 기름에 찌든 목장갑과 버려진 듯 놓여 있는 작업도구들, 전신주에 붙은 전화대출 광고, 고장 난 채 걸려 있는 낡은 시계, 겹겹이 씌워놓은 천막 등등…. 무심한 눈으로 보면 지극히 평범한 대도시의 뒷골목일 뿐이다.

“제 눈에는 어디를 가나 세월의 흐름 속에 켜켜이 쌓인 색깔의 변화가 제일 먼저 들어와요. 사진 작업을 시작한 뉴욕을 비롯해 세계 여러 나라 대도시의 이미지를 색으로 포착하고 표현하는 작업들을 해왔죠. 그런데 청계천에는 다른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색의 오묘함, 그리고 추억과 상상의 여백이 있었어요. 그래서 일부러 사람들은 만나지 않았어요.”

그가 이처럼 다른 눈으로 청계천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자의 반 타의 반’ 서울을 떠나 있었던 14년의 공백이 있다. 숙명여대 재학 시절 연극반 활동을 한 그는 <동양방송>(TBC)에서 아나운서로 일하다 1980년 전두환 신군부의 언론 통폐합으로 그만둔 ‘해직 언론인’ 출신이다. 이후 82년 건너간 미국 뉴욕에서도 그는 <한미방송>에서 아나운서로 일했다.

“토박이라서 그런지 서울을 참 좋아했어요. 뉴욕에서도 도시 풍경들이 익숙하게 느껴졌고요. 그래서 취미로 사진을 찍기 시작해 독학으로 공부를 하다 보니 96년 귀국 때에는 사진가 이름을 갖게 됐어요.”

돌아온 그는 고향을 그리듯 어릴 적부터 살았던 집과 동네, 대학 시절을 보낸 효창동 등 서울의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는 버릇이 생겼다. 하나같이 상전벽해로 달라진 가운데 유일하게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곳이 바로 청계천 뒷골목이었다. “세계적으로 가장 개발되지 않은 도시로 꼽히는 쿠바의 아바나까지 손꼽히는 외국의 대도시들을 돌아본 뒤에야 서울 청계천의 아름다움과 매력을 제대로 알게 된 셈이죠.”

그의 작품은 ‘독특한 색감과 켜켜이 쌓인 때와 의미 없이 놓인 기구들이 만들어내는 부조화의 미가 단순한 기록을 넘어 포스트모던의 미학을 경험하게 만든다’는 평을 얻고 있다.

하지만 전공을 하거나 직업작가로 활동하지는 않은 까닭에 그는 2006년 단체전인 ‘창작사진전’에 참여하면서 정식 데뷔를 한 늦깎이다. 첫 개인전은 2007년 ‘인터-시티 서울 뉴욕’으로 일관된 도시 풍경 작품이었다. 그 무렵 한국여성사진가협회(KOWPA)와 인연을 맺으며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그는 지난 2월엔 5대 회장도 맡아 ‘여성주의적 시각’의 창작에도 애정을 쏟고 있다. 창립 16년째인 여성사진가협회엔 현재 7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애초 재개발로 헐릴 예정이던 세운상가는 최근 서울시에서 건축문화적 가치를 인정해 보존하기로 했지만, 주변 공구골목들은 조만간 사라질 운명이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 찾아가 기록할 작정”이다.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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