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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1년만에 피사체로 되살아온 열정

등록 2014-04-03 19:42수정 2014-04-03 20:29

지난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패션사진가 보리의 작품. 잡지 <누메로>(Numero) 2009년 11월호에 실린 배우 공효진.
지난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패션사진가 보리의 작품. 잡지 <누메로>(Numero) 2009년 11월호에 실린 배우 공효진.
패션사진작가 보리 추모전
가나아트센터에서 8일까지
“그의 사진은 수십장이 실린 패션잡지를 쭉 넘기다가 멈추고 다시 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선배 패션사진가 조남룡) “여성이 패션사진가로서 일하기는 쉽지 않다. 그는 노력파였고 매우 겸손했다.”(동료 사진가 강혜원)

지난해 뇌출혈로 고인이 된 패션사진가 보리(본명 이보경·1973~2013)를 그리워하는 이들이 많다. 1년 만에 그를 다시 만날 기회가 찾아왔다. 오는 8일까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그의 추모사진전 ‘라이트 앤 섀도’(LIGHT AND SHADOW)가 열린다. 생전에 전시도 “근사하게 하고 싶다”던 그의 말을 유언으로 생각한 가족들이 소속 에이전시였던 ‘아트 허브 테오’(ART HUB TEO)와 함께 기획해 첫 회고전을 연 것이다.

전시장에서는 그만의 감성으로 표현한 다채로운 피사체들을 만날 수 있다. 짙은 아이섀도에 갇힌 모델 송경아의 눈동자에서 무심한 욕망을, 새끼손가락을 살짝 깨문 배우 공효진의 얼굴과 흰색 셔츠 아래 드러나는 가녀린 다리에서 생경한 에로티시즘을 목격한다. 보는 이의 시선을 빨아들이는 그의 사진은 깊고 고요한 바다를 닮았다.

남성잡지 <지큐>(GQ) 2006년 8월호에 실린 모델 함재희.  스튜디오 보리 제공
남성잡지 <지큐>(GQ) 2006년 8월호에 실린 모델 함재희. 스튜디오 보리 제공

딸만 셋인 집안의 막내였던 그는 중학생 때 사진가 김중만이 찍은 가수 인순이의 앨범사진을 보고 처음 사진에 흥미를 가졌다. 사진과를 졸업하고 미국 파인아트뮤지엄에서 수학하기 전 사진가 안성진씨의 ‘잼 스튜디오’에서 어시스턴트로 일하면서 패션사진계에 첫발을 디뎠다. 사람 키의 몇 배가 되는 커다란 조명장비와 복잡한 테크닉을 구사해야 하는 패션사진계의 특성상 여성이 적은 게 현실이다. 보리는 10여년을 특유의 친화력과 성실성을 무기로 왕성한 활동을 했다. 피사체들은 그의 속 깊은 배려에 바로 무장해제됐다. 송경아씨는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라 친해져야 자연스러운 표정이 나오는데, (그 앞에서는) 그게 한번에 허물어졌다”고 경험을 털어놨다.

2003년 서울 강남구 가로수길에 자신의 스튜디오를 열면서 <보그>, <엘르> 등 유명 패션잡지의 크고 작은 화보를 맡았다. 이미 ‘업계’에서 이름난 그는 <무한도전>, <도전! 슈퍼모델 코리아> 등 방송 작업에 참여하면서 대중에게도 존재를 각인시켰다.

사회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사진에도 관심을 가졌던 그는 대학 시절 수원 일대 나이트클럽에서 일하는 댄서들의 삶을 카메라에 담았다. 청량리 집창촌에 사진기 하나 달랑 메고 가 가족들을 놀라게 했다. 그런 열정은 패션사진가로 성공한 뒤에도 이어졌다. 노숙자의 재활을 돕는 잡지 <빅이슈>에 직접 전화해 재능기부를 했다. 영화에도 애정이 많아 영화사 ‘찬란’과 손잡고 영화 수입, 독립영화 투자 등도 했다. <이브 생로랑의 라무르> 등 5편이 그가 투자한 영화다.

161㎝, 45kg에 깡마르고 까무잡잡했던 보리는 ‘흑꼬’(흑인꼬마)라 불렸다. 송경아씨는 “순수하고 자연스러운 모습” 때문에 생긴 별명이라고 한다. “언제나 무엇인가를 탐구하고 알아가고 싶어했다.” 각별했던 배우 공효진과 하정우는 한강 잠원지구에 ‘보리언니나무’, ‘보리누나나무’를 심었다. 가족들은 그가 그리울 때마다 나무를 찾는다. 스페셜 에디션 작품집 와 포토에세이 <패션사진가 보리, 나는 당신의 환상을 보았다>가 전시와 동시에 출간됐다. 전시와 책 수입금은 <빅이슈> 등에 기부할 예정이다. <무한도전>팀은 보리 1주기를 맞아 <빅이슈>에 그와 작업한 사진들을 게재하는 등 재능기부에 동참했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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