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홍대입구역 부근에 자리잡은 음반 가게 ‘김밥레코즈’는 젊은 LP 애호가들 사이에서 최근작 새 LP가 즐비한 ‘핫 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다. 김영혁(가운데) 김밥레코즈 대표는 13년째 일해온 음반 직배사를 그만두고 지난해 8월 이곳 문을 열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문화‘랑’
문화 공간, 그곳 ⑩ 서울 동교동 김밥레코즈
CD보다 LP가 훨씬 많은
김영혁씨의 작은 음반 가게
중고보다 신작 위주로 차별화
‘레코드 페어’ 장터도 매년 열어
문화 공간, 그곳 ⑩ 서울 동교동 김밥레코즈
CD보다 LP가 훨씬 많은
김영혁씨의 작은 음반 가게
중고보다 신작 위주로 차별화
‘레코드 페어’ 장터도 매년 열어
서울 지하철 홍대입구역 3번 출구로 나와 뒷골목으로 들어가면 귀여운 고양이가 그려진 작은 간판을 만나게 된다. 영어로 쓰인 문구는 ‘김밥레코즈’(GIMBAB RECORDS). 가끔 인근 김밥집으로 갈 우편물이 잘못 배달되기도 하지만, 이곳은 김밥과는 무관한 곳이다. 요즘 음악깨나 듣는다는 이들 사이에서 이른바 ‘핫 플레이스’로 뜨고 있는 음반가게다.
지난 5일 찾은 서울 마포구 동교동 155-36, 1층의 김밥레코즈는 10평이 채 안 돼 보였다. 그나마 창고처럼 쓰는 공간을 빼고 매장만 치면 5평 남짓. 손님 4명만 들어와도 꽉 찬다. 공간이 좁아 많은 음반을 가져다 놓지는 못하지만, 엘피(LP) 2500여장과 시디(CD) 1000여장을 가지런히 정리해 꽂아놓았다. 엘피가 훨씬 더 많은 게 눈에 띈다.
김영혁(41) 김밥레코즈 대표가 이곳 문을 연 건 지난해 8월. 처음부터 음반가게를 할 생각은 아니었다. 작업실을 찾다가 뜻밖에도 괜찮은 1층 공간을 만나 ‘작업실로 쓰면서 음반도 가져다 놓고 팔아볼까?’라는 가벼운 생각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김밥레코즈는 애초 김 대표가 운영해오던 1인 음반 레이블 이름이다. 주로 외국 음반을 수입하거나 국내 라이선스 발매를 하는 음반사다. 그는 지금도 음반사 운영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 음반가게는 일종의 부업인 셈이다.
김 대표는 음반직배사에서 잔뼈가 굵었다. 음악을 좋아해 대학교 4학년이던 1999년 독일계 음반직배사인 비엠지(BMG)에 입사했다. 이는 훗날 일본계 미국 음반사 소니뮤직과 합병해 ‘소니-비엠지’가 됐다가 지금은 ‘소니뮤직’이 됐다. 소니뮤직 마케팅본부장 자리까지 오른 그는 2012년 갑자기 퇴사했다. “음반직배사에서 해볼 만한 일을 다 해본데다, 몸과 마음이 너무 지쳐서 쉬고 싶었다”고 그는 말했다.
아무 일도 안 하고 쉬고 있는데, 영화 <원스> 주인공으로 잘 알려진 음악인 글렌 한사드의 매니저에게서 연락이 왔다. 글렌 한사드 음반을 한국에 발매해 달라는 것이었다. 한동안 음반 관련 일은 안 하려고 마음먹었던 김 대표이지만, 잘 알고 지내던 이의 부탁을 끝내 거절할 수 없었다.
결국 2012년 7월 글렌 한사드 음반을 발매하게 됐고, 그때 회사 이름이 필요해 갖다 붙인 게 김밥레코즈다. ‘김밥’은 지금도 집에서 키우고 있는 고양이 이름이다.
이후 힙합·일렉트로닉·재즈부터 브라질 등 월드뮤직까지 다양한 장르의 외국 음반과 일부 국내 재즈 음반을 수입·발매하면서 음반사업을 본격적으로 이어갔다. 다큐멘터리 영화 <서칭 포 슈가맨>의 실제 주인공 로드리게스의 음반을 수입한 것도 그다. 공연기획 일도 시작해 제인 버킨, 베이루트 등의 내한공연도 주최했다. 그러다 이제는 음반가게까지 차리게 된 것이다.
“음반직배사에서 일할 땐 실제 음악 애호가들을 만나지 못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직접 만나 얘기를 나눠요. 그들에게 음악을 추천해주기도 하고, 거꾸로 그들이 제게 추천해주기도 하죠. 그렇게 음악과 얘기를 나누는 게 재밌어서 생각보다 음반가게 일에 시간을 많이 쏟게 되네요.” 그는 매주 수~일요일 오후 2~9시 이곳을 지킨다. 월·화요일에는 다른 사람이 가게를 봐준다.
손님 한명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한달 전 친구 소개로 왔다가 이날 두번째로 왔다는 연다솔(23)씨는 영화 <어느 멋진 날> 사운드트랙 시디를 샀다. “요즘은 다들 시디를 인터넷으로 사지 않느냐”고 물으니 “음반은 직접 와서 살 때 기분이 더 좋아요. 여기 오면 예쁜 음반 같은 볼거리도 많고, 사장님이 소개해주는 음악도 좋거든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친구와 함께 온 홍은비(25)씨는 1시간 동안 엘피를 고르다가 둘이 합쳐 6장을 샀다. “제가 어릴 적에 아버지가 엘피를 들으시던 게 문득 생각나 1년 전부터 엘피를 듣기 시작했어요. 여기는 옛날 중고 엘피보다 요즘 나온 신작의 새 엘피들이 많아서 종종 와요. 엘피를 들으면, 시디나 엠피3에는 없는 따스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참 좋거든요.”
2000년대 중반부터 엘피를 듣기 시작해 집에 엘피 1000여장이 있다는 이재형(36)씨는 “엘피를 사러 여기저기 많이 다니는데, 이곳은 새 제품을 좋은 가격에 팔아서 내겐 특별한 곳”이라고 말했다. 멀리 경기도 하남에서 왔다는 정다울(23)씨는 “2주에 한번꼴로 오는데, 가까이 살았다면 매일 왔을 것”이라며 “굳이 음반을 안 사더라도 예쁜 표지를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고 했다.
김밥레코즈를 찾는 이들은 이처럼 대부분 젊은층이라고 김 대표는 전했다. “엘피를 추억의 매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는 경향이 있는데, 여기 오는 손님들은 좀 달라요. 엘피를 한번도 접해보지 못하다가 새로운 매체로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거죠. 10대 남학생이 와서 엊그제 새로 나온 일렉트로닉 엘피를 사는 식이에요. 음악산업 관계자들이 이런 새로운 흐름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어요.”
김 대표의 말에 따르면, 미국에서 엘피 시장은 매년 30% 이상 성장하고 있다. 2000년대 중반 100만장 규모에서 지난해 600만장이 팔리는 시장이 됐다. 상당수 음악인들은 새 앨범 낼 때 엘피를 함께 발매하거나 이전 앨범을 엘피로 재발매한다. 엘피 안에는 엠피3 파일을 내려받을 수 있는 쿠폰이 들어 있다. 김 대표는 이런 최근작들을 주로 들여온다. 중고 엘피 위주로 취급하는 다른 엘피 전문점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김 대표는 2011년부터 엘피를 사고파는 장터인 ‘레코드페어’도 매년 한 차례씩 열고 있다. 라운드앤라운드라는 협동조합 형태로 오는 6월 네번째 행사를 열려고 한다. 그는 “첫 행사 때는 ‘요즘도 엘피를 듣네’ 하며 신기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면, 이제는 엘피를 사는 게 익숙한 사람들이 많이 온다”며 “국내에서 엘피 시장이 폭발적으로 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꾸준히 성장할 것 같다”고 내다봤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LP 음반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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