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사이(왼쪽)와 김영찬씨가 11일 오후 서울 홍대입구 걷고 싶은 거리에서 세월호를 지켜보는 작은 음악가들의 선언을 한 뒤 거리공연을 하고 있다.김봉규 선임기자bong9@hani.co.kr
음악인들 서울 홍대앞 곳곳 추모공연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작곡가 김민경씨는 3시간 내내 목이 터져라 애국가를 불렀다. 지난 10일 낮 서울 홍대앞 주차장거리에서였다. 그는 ‘세월호를 지켜보는 작은 음악가들의 선언’에 참여하고자 이날 거리로 나섰다. 세월호 참사 이후 각종 공연이 취소되는 등 ‘가만히 있기’를 강요받아온 음악인들이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고, 무능한 정부에 항의하고, “절대 잊지 말자”고 다짐하자는 취지로 10~11일 오후 2~5시 홍대앞 일대에서 자발적인 거리공연에 나선 것이다.
김씨는 “거리공연은 처음”이라며 “진정한 의미의 ‘아름다운 나라’를 만들어보자는 뜻으로 애국가를 부르고 있다”고 했다. 프랑스인 영화감독 얀 켈로크는 이 광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는 “음악과 정치의 관계에 관심이 많다”며 “지금 이 노래에 대단한 힘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홍대앞 곳곳에서는 음악과 노란 리본, 세월호 참사 관련 손팻말로 물결쳤다. 부부 음악인인 인디 밴드 한음파의 이정훈과 눈뜨고코베인의 연리목이 몽골 전통악기 마두금과 아코디언을 연주하고 있는데, 갑자기 한 시민이 옆에 섰다. 보안업에 종사하며 ‘박정경’이라는 필명으로 시를 쓴다는 박선장(61)씨다. 이날 소식을 예고한 <한겨레> 기사(▷ 가야금으로…기타로…“가만히 있지 말자” )를 보고 나왔다는 박씨는 자작시 ‘옷을 벗게나’를 낭송했다. “약자를 짓밟고 한줌 강자들의 들러리가 되었던/ 누더기 옷을 이제는 치워버리게나/ 그대가 이겨내야 할 상대는/ 국민이 아니다(그대 자신이다)/ 그대 과거의 한풀이에/ 국민이 희생되고 볼모가 되어서는 아니 된다.”
민중가수 손병휘는 세월호 참사를 보고 만든 자작곡 ‘잊지 않을거야’를 선보였다. “너의 음성, 너의 웃음, 재잘거림 잊지 않을게/… 절대 잊지 않기를 바래. 용서하지 않기를 바래. 바보같은 무책임한 게걸스런 어른 따위들!” 싱어송라이터 조동희는 “아이들이 생각나서 곧 발표할 예정인 신곡의 가사를 바꿨다”며 ‘유리별’을 불렀다. 옆에서는 연극인 한은주가 독일 극작가 브레히트의 시집 <살아남은 자의 슬픔>의 일부 대목을 붓글씨로 쓰는 퍼포먼스를 했다.
이날 홍대입구역부터 걷고 싶은 거리, 주차장거리, 홍대 가로수길, 합정역까지 곳곳에서 사이, 정민아, 백자, 문진오, 이광석, 시와, 하이미스터메모리, 박혜리, 소리꾼 박인애 등 수십명의 음악인들이 거리공연을 했다. ‘세월호를 지켜보는 작은 음악가들의 선언’ 페이스북 페이지(www.facebook.com/musiciansmanifesto)를 통해 86팀의 음악인들이 참가 신청을 했다고 한다.
거리공연을 하는 음악인 앞에는 음료수, 빵, 꽃 등이 놓여 있었다. 길가던 시민들이 응원의 뜻으로 사다준 것이었다. 한 시민은 음악인들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며 “음악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굳게 믿는 저희가 여러분과 함께합니다. 홧팅!”이라는 글귀를 붙인 수제쿠키를 나눠주었다. 록 밴드 게이트 플라워즈의 보컬리스트 박근홍은 이정훈·연리목 부부에게 초밥을 사다주며 응원했다.
이날 거리공연을 처음 제안한 가야금 연주자이자 싱어송라이터인 정민아는 “세월호 참사 이후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무력해하다가 지난달 24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1인 시위를 했고, 이번 거리공연까지 제안하게 됐다”며 “제안한 지 며칠 만에 이렇게 많은 이들이 동참해서 놀랐다”고 말했다. 공동 제안자인 싱어송라이터 사이는 “거리공연을 제안한 것은 세월호 참사가 잊혀질까봐 두려워서였다”며 “또다시 요즘처럼 시들해지는 분위기가 느껴지면 언제라도 이런 자리를 또 마련하겠다”고 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인디 밴드 한음파의 이정훈과 눈뜨고코베인의 연리목.
싱어송라이터 조동희, 연극인 한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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