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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편곡 거친 ‘유작’이 마이클 잭슨 앨범일까

등록 2014-05-15 19:06

마이클 잭슨(1958~2009)의 새 앨범 <엑스케이프>.  사진 소니뮤직 제공
마이클 잭슨(1958~2009)의 새 앨범 <엑스케이프>. 사진 소니뮤직 제공
서정민의 음악다방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1958~2009)의 새 앨범 <엑스케이프>(사진)가 지난 13일 발매됐다. 사후 앨범으로는 숨진 지 1년 만에 나온 <마이클>(2010) 이후 두번째다. 잭슨이 생전에 남긴 미공개 녹음에다 새로운 편곡을 덧입혀 완성했다.

새 앨범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발매 첫날 49개국 아이튠스 앨범 차트 1위에 올랐다. 급조한 탓인지 빈틈이 적지 않았던 전작 <마이클>에 실망했던 팬들은 이번 앨범을 두고 “전성기 때 앨범 같다. 이제야 제대로 된 사후 앨범을 만났다”며 반기고 있다. 하지만 이 앨범을 듣는 나의 속내는 좀 복잡하다.

에픽레코드 대표인 엘 에이 리드는 잭슨이 1983~1999년 녹음한 미공개 음원을 팀버랜드, 로드니 저킨스 등 유명 프로듀서들에게 맡겨 새롭게 다듬었다. 에픽레코드는 잭슨의 유족으로부터 앨범 5장 분량의 미공개 음원을 사들였다고 한다. 벌써 2장이 나왔으니 앞으로 3장 더 나올 것 같다.

<엑스케이프>에는 뛰어난 곡도 있고, 더러 기대에 못미치는 곡도 있다. 하지만 이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고민하는 지점은 이걸 과연 잭슨의 앨범으로 볼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물론 잭슨이 작곡했고, 그의 목소리로 부른 곡은 맞다. 하지만 다른 프로듀서들의 편곡을 거치면서 노래는 새로운 결과물로 재탄생한다. 잘된 편곡이든 아쉬운 편곡이든, 잭슨의 의도가 온전히 반영되지 못했음은 자명하다.

잭슨이 한참 전에 녹음했는데도 미발표로 남겨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터다. 만족 못했을 수도 있고, 보완을 거쳐 선보이려 했을 수도 있다. 만약 잭슨이 하늘에서 이 앨범을 들어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미완성 노래를 완성해줘서 고마워”라고 할까, 아니면 “그냥 덮어두지 그랬어”라고 할까? 망자는 말이 없고, 산 자들은 비즈니스를 한다.

지난해 김현식(1958~1990)의 미공개 유작이 23년 만에 앨범으로 발매됐다. 김현식이 간경화로 투병하던 중 병실과 집에서 통기타 반주에 노래한 걸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했는데, 이를 제작자가 다듬어 앨범으로 냈다. 정식 앨범으로 보기에는 완성도가 턱없이 못미치는 게 사실이다. 이를 두고 “당사자 허락을 받을 수 없는 노래들을 제작자가 일방적으로 발표할 수 있는가” 하는 논란이 일었다.

오는 28일 첫 내한공연을 하는 폴 매카트니가 비틀스 시절 겪은 일화는 시사점을 던진다. 비틀스 마지막 앨범이 된 <렛 잇 비>(1970)에서 폴 매카트니는 라이브 활동 위주의 초심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애초 단순한 편곡을 한 건 그래서다. 하지만 프로듀서 필 스펙터는 수록곡 ‘더 롱 앤드 와인딩 로드’에 웅장한 오케스트라 사운드를 덧입혀 자신의 전매특허인 ‘소리의 벽’을 쌓았다. 매카트니는 불같이 화를 냈고, 얼마 뒤 밴드는 해체했다. 매카트니는 2003년 오케스트라 사운드를 걷어내고 <렛 잇 비… 네이키드>라는 제목의 앨범을 다시 발매했다.

독자들에겐 별게 아닐 수 있지만, 글을 쓰면서 단어 하나, 조사 하나를 놓고 고심할 때가 많다. 누군가가 그걸 고친다면 기분이 좋을 리 없다. 음악도 다르지 않을 터다. 고인의 유작 앨범을 제작하는 건 의미있는 일이다. 하지만 고인의 뜻에 맞는 것인지, 꼭 필요한 작업인지를 곱씹어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 잭슨의 유작이 마냥 달갑지만은 않은 이유다.

서정민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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