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전설의 록 밴드 노이즈가든이 해체 15년 만에 부활한다. 오는 24일 공연을 위해 캐나다에서 들어온 박건(보컬·왼쪽)과 지금은 ‘로다운30’로 활동하는 윤병주(기타)를 18일 밤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15년만에 부활 ‘노이즈가든’
90년대 ‘한국 록’에 획 그은 밴드
정규앨범 2장내고 99년 해체
음반도 절판…음원 접하기 어려워
열혈팬 덕에 리마스터 앨범 제작
90년대 ‘한국 록’에 획 그은 밴드
정규앨범 2장내고 99년 해체
음반도 절판…음원 접하기 어려워
열혈팬 덕에 리마스터 앨범 제작
한국 록 역사에 짧고 굵은 획을 남기고 사라진 밴드 노이즈가든이 부활한다. 오는 24일 저녁 7시 서울 홍대앞 브이홀에서 1990년대 활동 당시 멤버 윤병주(기타)와 박건(보컬)이 무대에 오르는 것. 이를 위해 캐나다로 이민 간 박건이 18일 한국에 들어왔다.
이번 공연은 리마스터 앨범 발매를 기념하기 위한 자리다. 오랜 팬인 강명수씨가 음반사를 직접 차려 리마스터 앨범을 기획·제작했다. 노이즈가든이 남긴 단 두장의 정규 앨범인 1집 <노이즈가든>(1996)과 2집 <…벗 낫 리스트>(1999)에다 1994년 낸 데모 테이프 등을 담은 보너스 시디까지 석장의 시디를 묶었다.
정통 하드록에다 1990년대 중반 발현한 그런지록을 이입한 노이즈가든 1집은 명반으로 평가받는다. 전문가들이 선정한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 27위에 올랐고, 그해 <한겨레>가 꼽은 ‘올해의 음반’ 2위에도 올랐다. 절판 뒤 희귀반이 돼 중고 가격이 5만원까지 치솟았고 음원도 서비스되지 않아 좀처럼 접하기 힘들었으나, 이번 리마스터 발매와 함께 온라인 음원으로도 출시돼 손쉽게 들을 수 있게 됐다.
밴드 결성은 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클럽 공연을 하다가 94년 데모 테이프 100~200개를 만들어 팔았다. 당시 피시통신 메탈 동호회에서 국내 메탈 밴드를 비판하는 독설가로 유명했던 윤병주는 “‘왜 우리는 이렇게 못할까’라고 비판만 하다가 아예 직접 보여주겠노라고 데모 테이프를 만들었다. 이후 밴드를 해산하려 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해체 직전까지 갔다가 “제대로 한번 해보자”는 얘기가 나오면서 박건이 새로 합류했다. 애초 베이스 연주자였던 박건은 보컬을 맡았다. 그해 톰보이 록 콘테스트에서 대상을 받으며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다. 당시 데모 테이프를 사고 공연장을 찾았던 강명수씨는 이렇게 회상했다. “장신의 멤버들이 맨발로 나와 우리나라에 없던 사운드를 들려주는데, 그렇게 강렬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 첫 느낌이 오늘날 앨범 제작으로까지 이어진 셈이다.
윤병주·박건, 앨범 발매 기념 공연
공연 뒤 해체…각자 음악에 전념
“90년대 분노 내질러…지금은 힘빼
팬요청때 어쩌다 한번 공연 좋아” 노이즈가든은 99년 2집을 마지막으로 해체했다. 윤병주가 다른 색깔의 음악을 하고자 먼저 떠났고, 나머지 멤버들은 “윤병주 빠진 노이즈가든은 의미 없다”며 활동을 접었다. 이후 윤병주는 블루스 록 밴드 ‘로다운 30’를 결성했고, 박건은 몇몇 밴드를 거쳐 2009년 캐나다로 이민 갔다. 드러머 박경원은 음악을 그만뒀고, 베이시스트 이상문은 10여년 전 세상을 떠났다. 노이즈가든은 해체한 지 10년 만인 2009년 딱 한번 공연을 했다. 박건이 캐나다로 떠나기 직전 고별 공연이었다. 당시 발디딜 틈 없이 꽉 찬 객석을 보고 박건이 말했다. “예전에 이렇게들 오시지 그랬어요.” 캐나다 밴쿠버로 간 박건은 그곳에서도 인디 밴드 ‘앰버 힐스’에서 활동하고 있다. “거기서는 보컬이 아니라 베이스를 쳐요. 노이즈가든에서 노래할 때는 부담이 적지않았는데, 지금이 더 행복한 것 같아요.” 다시 마이크를 잡게 된 박건은 “예전에는 시종일관 분노를 담아 소리질렀는데, 이제는 힘줄 땐 주고 뺄 땐 빼는 여유가 생긴 것 같다”고 했다. “그때는 (분노의) 에너지가 있었기에 그런 음악이 나올 수 있었죠. 이번 무대에서 90년대의 분노를 재현할 수는 없을 테고, 우리 하고 싶은 대로 해야죠.”(윤병주) 공연을 마치면 박건은 다시 캐나다로 간다. 윤병주는 “각자 자기 밴드에 전념하다 팬들의 요청이 있으면 프로젝트성으로 신곡 두어곡 해볼까 생각중”이라고 했다. “노이즈가든은 이렇게 어쩌다 한번씩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요즘 같은 환경에서 본격적으로 재결성했다가는 그냥 그런 밴드 중 하나가 될지도 모르잖아요. 하하.”(박건)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공연 뒤 해체…각자 음악에 전념
“90년대 분노 내질러…지금은 힘빼
팬요청때 어쩌다 한번 공연 좋아” 노이즈가든은 99년 2집을 마지막으로 해체했다. 윤병주가 다른 색깔의 음악을 하고자 먼저 떠났고, 나머지 멤버들은 “윤병주 빠진 노이즈가든은 의미 없다”며 활동을 접었다. 이후 윤병주는 블루스 록 밴드 ‘로다운 30’를 결성했고, 박건은 몇몇 밴드를 거쳐 2009년 캐나다로 이민 갔다. 드러머 박경원은 음악을 그만뒀고, 베이시스트 이상문은 10여년 전 세상을 떠났다. 노이즈가든은 해체한 지 10년 만인 2009년 딱 한번 공연을 했다. 박건이 캐나다로 떠나기 직전 고별 공연이었다. 당시 발디딜 틈 없이 꽉 찬 객석을 보고 박건이 말했다. “예전에 이렇게들 오시지 그랬어요.” 캐나다 밴쿠버로 간 박건은 그곳에서도 인디 밴드 ‘앰버 힐스’에서 활동하고 있다. “거기서는 보컬이 아니라 베이스를 쳐요. 노이즈가든에서 노래할 때는 부담이 적지않았는데, 지금이 더 행복한 것 같아요.” 다시 마이크를 잡게 된 박건은 “예전에는 시종일관 분노를 담아 소리질렀는데, 이제는 힘줄 땐 주고 뺄 땐 빼는 여유가 생긴 것 같다”고 했다. “그때는 (분노의) 에너지가 있었기에 그런 음악이 나올 수 있었죠. 이번 무대에서 90년대의 분노를 재현할 수는 없을 테고, 우리 하고 싶은 대로 해야죠.”(윤병주) 공연을 마치면 박건은 다시 캐나다로 간다. 윤병주는 “각자 자기 밴드에 전념하다 팬들의 요청이 있으면 프로젝트성으로 신곡 두어곡 해볼까 생각중”이라고 했다. “노이즈가든은 이렇게 어쩌다 한번씩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요즘 같은 환경에서 본격적으로 재결성했다가는 그냥 그런 밴드 중 하나가 될지도 모르잖아요. 하하.”(박건)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