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캣츠’ 공연 장면. 사진 설앤컴퍼니 제공
리뷰 l 뮤지컬 ‘캣츠’
늙은 그리자벨라 ‘메모리’ 눈물나
‘한국어 대사·노래’로 팬서비스도
늙은 그리자벨라 ‘메모리’ 눈물나
‘한국어 대사·노래’로 팬서비스도
이 다음에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윤기 잘잘 흐르는 까망 얼룩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사뿐사뿐 뛸 때면 커다란 까치 같고/ 공처럼 둥굴릴 줄도 아는/ (중략)/ 나는 꿈을 꾸리라/ 놓친 참새를 쫓아/ 밝은 들판을 내닫는 꿈을.(황인숙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중)
먼 옛날 이집트 파라오가 스핑크스를 짓던 시절부터 고양이는 인간과 함께했다. 하지만 개와 달리 고양이는 결코 순종적이지 않다. 동거하는 인간을 ‘주인’이 아닌 ‘집사’로 부르고, 해가 지면 밤이슬을 맞으며 산책을 나설 만큼 자유롭고 독립적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은 시인들은 고양이를 찬양해왔다.
<오페라의 유령>, <레 미제라블>, <미스 사이공>과 함께 세계 4대 뮤지컬로 꼽히는 <캣츠>(사진)는 바로 이런 도도한 고양이들이 1년에 딱 한 번 만월의 밤에 여는 ‘젤리클 축제’를 다룬다. 지난 13일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무대에 오른 <캣츠> 오리지널 내한공연은 30여마리의 고양이가 펼치는 환상의 세계로 관객들을 안내한다.
젤리클 축제에 참가한 고양이들의 소원은 오직 한가지. ‘올해의 고양이’로 뽑혀 새 삶을 부여받는 것이다. <캣츠>는 축제에 참가한 고양이 한마리 한마리를 소개하는 일종의 ‘옴니버스식 공연’이다. 미국 태생 영국 시인 토머스 트턴스 엘리엇의 우화집 <지혜로운 고양이가 되기 위한 지침서>를 토대로 만들었다.
각각의 고양이가 들려주는 사연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남녀노소 모두 지루할 틈 없이 공연에 빠져든다. 반항적인 말썽꾸러기 ‘럼 텀 터거’, 능청스러운 도둑고양이 커플 ‘몽고제리’와 ‘럼플티저’, 마법사 고양이 ‘미스터 미스토펠리스’, 유명 배우였지만 지금은 중풍을 앓는 극장 고양이 ‘거스’, 천하무적 악당 고양이 ‘맥캐버티’, 그리고 선지자 고양이 ‘올드 듀터러노미’와 한때 가장 매력적이었지만 이제는 늙고 왕따를 당하는 ‘그리자벨라’까지….
이들의 사연은 인간의 희로애락을 쏙 빼닮았다. 그래서일까. 공연을 보는 동안 적어도 한마리 정도는 ‘내 모습’을 보는 듯 느껴져 가슴이 시리다. 특히 늙은 그리자벨라가 부르는 <캣츠>의 대표 넘버 ‘메모리’를 듣노라면 소매로 눈물을 훔칠 수밖에 없다. 이번 공연에서는 중간중간 고양이들이 ‘한국어 대사와 노래’를 선보이는 등 확실한 팬서비스까지 선사한다. 탭 댄스, 재즈 댄스, 고난도 발레, 텀블링 등 다양한 안무와 소름 끼칠 만큼 아름다운 합창은 ‘명불허전’이다.
공연 중간중간, 그리고 인터미션이 끝날 즈음 객석을 뛰어다니는 고양이들의 애교 섞인 몸짓에 놀라지 말자. 고양이가 내민 손에 미리 준비한 사탕을 쥐여줘도 좋겠다. 팔걸이에 걸터앉은 고양이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으면 ‘골골’ 소리를 낼지도 모른다. 공연 전 고양이 캐릭터들에 대한 설명을 한 번씩 읽어보는 부지런함은 필수다. 무대에 가까운 젤리클석 예매가 힘들다면 통로석을 추천한다.
<캣츠>를 보고 나면 알게 된다. 모든 고양이가 각자 이름을 가진 소중한 존재란 것을. 골목 어귀에서 마주치는 길고양이에게도 애정 어린 시선을 보내게 된다. 어느 틈엔가 신산한 그들의 삶에 우리 인생을 겹쳐 보는 지혜도 생길지 모른다. 8월24일까지. 1577-3363.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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