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의 홍길동전 뒷얘기를 발랄하게 상상한 뮤지컬 <균>. 최근 역사를 소재로 한 창작 뮤지컬들은 과거의 무겁고 장중한 정통 역사극에서 벗어나 재기발랄한 상상력으로 무장한 팩션형 사극 형식으로 전환하고 있다.
정통사극 벗어나 ‘퓨전’ 바람
홍길동전 뒷얘기 풀어낸 ‘균’
허균의 꿈·사랑 발랄하게 포장
고종 소재 ‘라스트 로얄 패밀리’
현대 가족의 모습 투영 호평
‘영웅을…’ 코믹 이순신 인기 모아
홍길동전 뒷얘기 풀어낸 ‘균’
허균의 꿈·사랑 발랄하게 포장
고종 소재 ‘라스트 로얄 패밀리’
현대 가족의 모습 투영 호평
‘영웅을…’ 코믹 이순신 인기 모아
“이 서책은 저자가 단지 즐기기 위해 상상으로 만들어 낸 것으로 등장인물의 이름과 삶이 사실과 다를 수 있으니 특정가문에서 문제 삼지 않길 바라며, 혹시 이 문제적 서책의 소지와 읽기에 두려움이 앞서는 자가 있다면 과감히 덮기를 충고한다.”
최근 세종문화회관 엠(M)씨어터에서 막을 올린 창작뮤지컬 <균>은 이런 문구가 쓰여진 영상으로 시작된다. <균>은 조선시대 허균이 어떻게 당대 최고의 금서인 <홍길동전>을 쓰게 됐는지 그 뒷 얘기를 풀어낸 작품이다. 하경진 작가는 “만일 <홍길동전>에 서문이 있었다면 이런 글이 들어있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했다”며 “또 <균> 역시 정통 역사극이 아닌 ‘팩션’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중의적 의미’로 첫머리에 그런 문구를 넣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금부터 하는 얘기는 사실이 아니다’라는 전제를 깐 뒤 도발적이고 발칙한 상상력으로 역사를 재구성해 나가는 것이다.
<균>은 ‘<홍길동전> 유포 프로젝트’라는 뼈대에, 조선 최고 문장가 허균과 유희경, 기생 이매창이 만든 베스트셀러 작가 모임 ‘풍월향도’를 중심으로 세 천재의 삼각관계와 새로운 세상을 향한 꿈을 녹여낸다.
사실 그동안 창작뮤지컬에서 ‘역사’는 단골 소재였다. 동학농민운동 우금치 전투를 다룬 <들풀>(1994), 일본의 국권침탈과 명성황후의 삶을 그린 <명성황후>(1995), 월남전을 다룬 <블루사이공>(1996), 안중근 의사의 의거를 그린 <영웅>(2009), 병자호란을 다룬 <남한산성>(2009) 등 1990대~2000년대의 주요 창작뮤지컬들은 대부분 역사물이었다.
하지만 초기 작품들이 장중함과 진지함을 바탕으로 ‘정통 역사 뮤지컬’을 지향했던 것에 견줘 최근 창작 뮤지컬들은 <균>의 사례처럼 역사를 다루는 방식에서 큰 변화를 보이고 있다. 재기발랄한 상상력으로 역사의 틈새를 메우거나, 뒤집어보기와 비틀어보기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올 초 개막해 호평을 받았던 <라스트 로얄 패밀리>도 비슷한 사례다. 조선 마지막 왕족인 고종 일가를 소재로 한 이 작품은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재미있는 설정으로 관객들의 폭소를 자아냈다. 명성황후는 아들 순종의 교육에 모든 것을 거는 ‘극성엄마’, 고종은 아내의 바가지에 기를 펴지 못하는 ‘고개 숙인 아버지’, 순종은 궁궐 생활의 답답함과 엄마의 등쌀에 괴로워하며 음악에 푹 빠진 청소년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균>과 마찬가지로 “얼렁뚱땅 뒤죽박죽인 이야기, 픽션의 픽션”이라며 시종일관 이 작품이 ‘퓨전사극’임을 강조한다.
<영웅을 기다리며>는 <난중일기>에 빠져있는 3일 동안의 이순신 장군의 행적을 코믹하게 담아낸다. 관객들의 뇌리에 근엄하고 영웅적인 인물로 각인된 이순신이 구수한 사투리와 욕설을 내뱉고 본능에 충실한 옆집 아저씨 같은 모습으로 등장해 큰 화제를 모았다. 극본·연출을 맡은 이현규씨는 “브로드웨이에서 아더왕에 얽힌 역사 이야기를 코믹하게 각색한 <스팸어랏>을 보고 이 뮤지컬을 기획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이밖에 무휼왕의 이야기를 판타지로 만든 뮤지컬 <바람의 나라> 등도 정통 역사극의 무게감을 지우고 자유로운 상상력을 발휘한 사례로 볼 수 있다.
<균>을 연출한 문삼화 연출은 “역사왜곡이라는 비판적 시각이 아니라 우리 역사를 조금 더 재미있고 흥미롭게 풀어낼 수 있는 대중적 포장방식으로 봐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문 연출은 “다른 팩션형 역사 뮤지컬들처럼 <균> 역시 역사를 통해 현재를 반추하는 의미를 충분히 담아낸 만큼 ‘발랄하되 가볍지 않은’ 작품”이라고 덧붙였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사진 각 회사 제공
<라스트 로얄 패밀리>
<영웅을 기다리며>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