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음악·공연·전시

병든 사회 향한 ‘양아치’ 작가의 기괴한 고발

등록 2014-06-26 19:06

박제된 비둘기의 머리나 흡혈 요괴 가면을 쓴 얼굴을 클로즈업한 사진, 금발을 바닥까지 늘어뜨린 설치물까지 기괴한 작품들이 가득한 작가 양아치의 전시회 ‘뼈와 살이 타는 밤’. 그는 교묘한 시스템으로 국민에게 고통을 가하는 우울하고 불안한 현실을 표현했다. 학고재갤러리 제공
박제된 비둘기의 머리나 흡혈 요괴 가면을 쓴 얼굴을 클로즈업한 사진, 금발을 바닥까지 늘어뜨린 설치물까지 기괴한 작품들이 가득한 작가 양아치의 전시회 ‘뼈와 살이 타는 밤’. 그는 교묘한 시스템으로 국민에게 고통을 가하는 우울하고 불안한 현실을 표현했다. 학고재갤러리 제공
학고재갤러리 ‘뼈와 살이 타는 밤’
“내 우울감과 불안 전달됐으면”
개망초가 무성한 어둑한 숲 속에 머리를 치렁치렁 내려뜨린, 성별조차 정확히 구분되지 않는 흐릿한 인물, 덤불에 반쯤 파묻힌 듯한 긴 머리의 뒤통수, 꼭지에 머리카락이 달린 탐스런 복숭아를 호시탐탐 노려보는 까마귀….

서울 삼청로 50, 학고재갤러리 전시장엔 모호하고 괴기스런 분위기의 사진, 비디오, 설치물이 가득하다. 흡혈귀의 이빨을 드러낸 붉은 요괴 가면을 쓴 어슴푸레한 얼굴, 과도하게 클로즈업된 박제 비둘기의 머리까지. 설치미술가 양아치(44)의 작품전 ‘뼈와 살이 타는 밤’이다. ‘거지’ 또는 ‘품행이 천박하고 못된 짓을 일삼는 사람’을 의미하는 양아치로 작명한 작가의 작품에선 뭔가 불안하고 우울하며 모호한 기운이 느껴진다. 소재와 형식, 내용은 달라도 대다수 작품명은 <뼈와 살이 타는 밤>이다.

“내 작품을 보고 우울함을 느꼈다면, 좋다. 내 작품에는 제대로 된 형태나 실체가 없다. 다만 감각적으로 나의 불안한 감정이 전달되길 바랐다.” 6개월 동안 캄캄한 밤에 인왕산을 오르내리며 제작한 작품을 통해 우울과 불안을 표출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작가의 작품. 학고재갤러리 제공
작가의 작품. 학고재갤러리 제공
“지금 시대 상황이 만만치 않다. 죽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다시 살아오고, 살아 있다고 믿었던 것이 죽는 현실을 참을 수 없어 우울증에 걸렸다. 치료를 받던 중 대한민국의 우울하고 참담한 현실을 표현하기로 했다.” 뭐가 그리 우울하다는 것일까? 거듭 물었다. “꼭 말로 해야 하냐? 세월호 사고 등 최근 상황에서 그런 걸 많이 느끼지 않나? 끔찍하지 않나? 최루탄, 도망다니는 대학생을 쫓던 전경의 모습은 사라졌다. 그러나 시각적으로 존재하지 않을 뿐 더 교묘하게 시스템으로 자꾸 고통을 준다. 방법이 달라졌을 뿐이다.”

민주주의는 퇴행하고, 생명은 경시되고, 모호한 듯하지만 시스템으로 우리를 옥죄는 권력의 문제를 다뤘다는 뜻인 듯하다. 그가 전시회는 물론 대다수 작품의 이름까지 ‘뼈와 살이 타는 밤’으로 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1980년대 신군부가 추진한 3S(영화·섹스·스포츠) 정책의 일환으로 제작된 영화의 제목인데, 80년대 당시 사회와 약 30년이 지난 지금의 병든 사회가 비슷하다는 점에서 착안했다.”

박제된 비둘기나 까마귀가 빈번히 등장하고, 개망초가 흐드러진 야심한 시각 덤불숲이 작품의 주요 배경이 된 것도 의도된 것이란다. “박제는, 죽음의 냄새가 많이 난다. 개망초는 일본제국주의에 나라가 망할 때 알 수 없는 풀이 자라자 국민들이 그리 이름 지었다고 하더라.”

그는 이런 괴기스런 작품들 사이에 금박지로 뒤덮인 거대한 돌덩이 형상(<황금산>) 몇개와 머리카락이 달린 탐스런 복숭아를 배치했다. 복숭아는 언뜻 정자를 형상화한 듯 보인다. “복숭아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오브제다. 생명이 느껴진다. 거기에 머리카락을 붙여 살아 있는 듯한 이미지를 만들었다. <황금산> 역시 이상향이다. 사람은 암흑 속에 살면서도 신세계를 경험하고 싶어 한다. 이런 사람의 양면성을 황금산으로 풀어봤다.” 7월27일까지. (02)720-1524.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