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선희 기자
[울림과 스밈]
“작품이 늘어나니 캐스팅 경쟁이 불붙고, 세트도 더 화려하게 만들고 홍보도 해야 하니 결국 제작비가 올라가요. 그런데 생각보다 표는 잘 안 팔리니 각종 ‘할인’이 횡행하고…. 악순환이죠.”
얼마전 만난 한 뮤지컬 제작사 대표는 최근 심해진 뮤지컬계 불황이 ‘전형적인 공급과잉’으로 빚어진 문제라고 진단했다. 일부에서 ‘세월호 참사 여파가 공연계에 큰 타격이 됐다’는 분석도 나오지만, 그는 곪을대로 곪은 고질적 문제가 터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8월 개막 예정이었던 뮤지컬 <스위니 토드>와 <키다리 아저씨>의 공연 취소를 시작으로, <뮤즈>, <폭풍의 언덕>,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도리안그레이>, <아담스 패밀리>, <마마 돈크라이>, <양들의 침묵> 등 7~8편의 뮤지컬이 잠정 보류되거나 내년으로 공연이 미뤄졌다. <폭풍의 언덕> 등 일부 작품은 캐스팅을 마무리하고 예매까지 진행이 됐던 상황에서 공연을 취소했다. 각 제작사들은 누리집 등을 통해 공연 취소나 연기를 알리고 환불 조치 등을 안내하고 있지만 이미지 훼손에 대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연기나 취소를 결정하지 않았지만 일부 작품은 투자자들이 투자를 미루면서 눈 앞에 닥친 공연을 위한 세트 제작마저 어려움을 겪는다는 소식이다. 공연계 전체가 한마디로 ‘바람 앞의 등불’ 신세다.
공급과잉으로 인한 시장성 악화는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최근 몇 년 동안 공연 시장은 해마다 10% 이상 증가세를 보여왔다. 인터파크 집계를 보면, 지난 2011년 국내에서 공연되는 뮤지컬은 2000여편을 넘어섰고, 지난해에는 2500여편에 달했다. ‘뮤지컬이 돈이 된다’는 인식이 커지면서 작품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난 것이다. 배우에 따라 선호도가 극단적으로 갈리는 한국 시장의 특성상 ‘스타 캐스팅’은 작품의 성패를 가르는 주요 요인이 됐고, 스타급 배우들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당연히 제작비도 급상승했다.
작품이 늘고 제작비가 치솟은 만큼 관객 수도 늘었을까? 현재 뮤지컬 표 값은 아르(R)석을 기준으로 평균 10만원 남짓. 지난해 공연 관객이 천만명을 넘어섰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값비싼 뮤지컬 관람은 ‘연중행사’다. 제작사들은 팔리지 않는 표를 ‘1+1 할인’ 등으로 덤핑 판매한다. 자연히 제 값을 주고 공연을 보는 관객은 줄어든다. 수익이 나지 않으니 제작사들은 하반기 공연 예정작의 투자비를 미리 땡겨 상반기 공연을 제작하는 ‘돌려막기’에 급급하다. 뮤지컬계 큰 손인 씨제이이앤엠이 공연사업에서 막대한 손실을 입고 국내 투자를 줄이면서 결국 위기는 현실이 됐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않으면 뮤지컬계는 연쇄 몰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양질의 콘텐츠를 골라 적정한 수의 작품만 무대에 올려야 한다. 값비싼 라이선스 뮤지컬을 들여오는데만 골몰할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창작뮤지컬을 만들어 세계시장을 공략해야 한다. 공연계도 이미 정답을 알고 있다. 어려운 실천만 남았을 뿐이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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