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러드 브라더스.
리뷰 l 블러드 브라더스
3년만에 무대 선 조정석 ‘이름값’
1막 몰입도 높지만 2막 개연성 뚝
3년만에 무대 선 조정석 ‘이름값’
1막 몰입도 높지만 2막 개연성 뚝
화려한 쇼 뮤지컬이 공연계의‘주류’로 자리 잡은 요즘, 다소 낯선 형식으로 무장한 묵직한 뮤지컬이 관객들을 찾아왔다. 지난달 27일 대학로 홍익대 아트센터에서 막을 올린 <블러드 브라더스>다. 뮤지컬 배우로 출발해 영화와 드라마를 종횡무진 하는 스타가 된 조정석의 3년만의 복귀작으로 개막 전부터 큰 관심을 모았다.
화려한 노래와 춤, 현란한 무대장치를 덜어낸 <블러드 브라더스>는 오직 배우들의 연기와 선 굵은 드라마만으로 승부하는 작품이다. 연극 <리타 길들이기>, <셜리 발렌타인> 등으로 유명한 영국 극작가 윌리 러셀의 대표작이다. 그래서일까? 무대에 오른 <블러드 브라더스>는 뮤지컬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연극에 가깝다는 느낌을 준다. 음악(넘버)보다는 대사에 더 많은 힘을 주고, 브레히트 서사극 양식인 ‘1인다역’의 내레이터까지 등장시킨다.
배경은 1960년대 경제불황에 시달리는 영국의 한 소도시. 하루하루 벌어먹고 살기도 힘든 존스턴 부인은 이미 7명의 아이가 있는 상태에서 쌍둥이 형제를 잉태한다. 존스턴 부인은 쌍둥이 중 한 명을 아이를 낳지 못하는 부유한 라이언스 부인에게 입양을 보내게 된다. 여기까지만 보면 한국 막장 드라마의 단골 소재인 ‘출생의 비밀’에 불과하다. 하지만 러셀은 여기에 경기 침체가 불러온 정리해고, 대량실직 등 격변기 사회상을 맞물리며 작품의 무게감을 끌어올리려 한다. 노동자 집안에서 자라 고교 졸업 뒤 취업전선에 뛰어든 미키와 부잣집에서 자라 대학에 진학하는 에디의 엇갈린 운명, 끊을 수 없는 핏줄의 정으로 의형제를 맺는 둘의 우정. 그러나 경제위기로 인한 계급적 갈등에다 린다를 두고 두 사람이 삼각관계에 빠지면서 형제의 관계는 파국으로 내몰린다.
<블러드 브라더스>는 미키와 에디 역을 맡은 두 배우가 7살 아이부터 청소년기를 거쳐 성년에 이르기까지 쌍둥이의 성장과정 모두를 연기해야 하는 작품이다. 그만큼 배우의 폭넓고 깊이 있는 연기가 관건인 셈. 다행이 3년 만에 무대에 선 조정석은 녹슬지 않은 기량을 뽐내며 ‘이름값’을 한다. 7살 아이를 연기를 하다 고등학생을 연기하는 장면 전환에서는 마치 키가 훌쩍 자란 듯 한 착각마저 일으킬 정도다. 해설자뿐 아니라 우유배달부, 산부인과 의사, 교사 등 1인다역을 능청스럽게 연기하는 문종원, 뛰어난 가창력과 연기력으로 무대를 압도하는 존스턴 부인 역의 구원영 역시 작품을 탄탄하게 뒷받침한다.
문제는 출생의 비밀과 어린 시절인 1막에 너무 힘을 주다보니 2막에서 에디와 미키의 관계가 왜 어긋나게 됐는지, 왜 파국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지를 설명하는 ‘개연성’이 부족하다는데 있다. 러셀이 원작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룬 ‘시대적 위기에서 발생하는 첨예한 계급갈등’을 너무 많이 생략한 탓이다. 이 때문에 긴장을 서서히 끌어올린 뒤 극적인 결말로 치닫게 하는 힘이 떨어진다. 너무 빨리, 갑자기 와버린 클라이맥스가 못내 아쉽다.
<블러드 브라더스>는 극단 학전의 김민기 대표가 우리 정서와 상황에 맞게 각색해 <의형제>(1998)라는 작품으로 먼저 소개한 바 있다. <의형제>를 본 관객은 두 작품의 서로 다른 맛을 비교하는 재미도 쏠쏠하겠다. 가벼움에 지친 관객들에게는 반가운 단비 같은 작품이 될 수도 있겠다. 9월14일까지. 02)749-9037.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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