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0년 한국 초연 이후 큰 사랑을 받아온 뮤지컬 <시카고>가 ‘투 톱’ 모두 ‘원 캐스팅’을 내세워 돌아온다. 다음달 2일 신도림 디큐브아트센터에서 개막하는 10번째 시즌에 ‘벨마 켈리’역의 최정원(45·위 사진)과 ‘록시 하트’역의 아이비(박은혜·32·아래)가 ‘원 캐스팅’(한 배역을 한 배우가 맡는 것)으로 나서는 것.
한 배역에 배우를 더블(2명), 트리플(3명), 쿼드러플(4명)까지 캐스팅해 마케팅에 열올리는 뮤지컬계의 현실에서 주역 배우가 모두 ‘원 캐스팅’으로 나서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지난 2012년 한국어 버전 첫 공연을 올렸던 <레 미제라블>의 정성화 이후 대작에서 주역배우가 ‘원 캐스팅’된 사례는 없었다. 대부분의 제작사들이 티켓 파워가 있는 아이돌을 끼워 넣는 ‘멀티 캐스팅’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시카고> 제작사 신시컴퍼니 박명성 대표는 “뮤지컬 본고장인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에서는 ‘원 캐스팅’이 당연한데 한국에선 오히려 ‘모험’이라는 평가를 받는다”며 “멀티 캐스팅은 국내 뮤지컬 시장이 몇 년 사이 급속도로 커지면서 만들어진 한국만의 문화”라고 말했다.
물론 ‘여러 명의 배우가 캐스팅 될 경우 관객들이 취향에 따라 골라보는 재미가 있지 않냐’는 반론도 있다. 실제 최근 공연 전문 포털사이트 ‘스테이지톡’이 회원 512명을 상대로 선호하는 캐스팅 시스템을 물은 결과, 압도적인 표를 얻은 것은 ‘더블 캐스팅’(72%)이었다. ‘트리플 캐스팅’(22%)이 뒤를 이었다. ‘원 캐스팅’은 5%에 불과했다. 멀티 캐스팅을 택한 응답자들은 ‘배우에 따라 다양한 캐릭터 해석을 볼 수 있다는 점’(45%)을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하지만 이 역시 제작사의 제작방식에 관객이 길들여졌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박 대표는 “한국 뮤지컬 초기 때는 ‘원 캐스팅’이 당연했고 배우들도 자긍심을 가졌다”며 “마케팅을 위해 멀티 캐스팅이 유행을 했고 관객들도 그에 익숙해진 것”이라고 말했다.
배우들 역시 멀티 캐스팅의 경우, 작품의 완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고백한다. 한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짧게는 한 달에서 길게는 세 달 동안 연습을 하는데, 주역 배우와 앙상블의 조화가 중요한 뮤지컬의 특성상 여러 명의 주역 배우와 연습을 하려면 공연의 질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배우 최정원씨는 “국가대표 축구팀과 비교하면 쉽다. 호흡을 오랫동안 맞춘 팀원들과 경기를 해야 팀워크가 살아난다”며 “<시카고>는 모든 앙상블이 1명의 주역 배우와 하루 10시간 이상 연습을 한다”고 말했다.
‘원 캐스팅’을 유지하려면 배우들의 역량강화도 필수다. 거의 단 하루의 휴식도 없이 장기 공연을 끌어가려면 기초체력과 컨디션 조절이 중요하다. 특히 <시카고>는 격렬한 춤과 난이도 높은 넘버를 소화해야 하기에 부담이 크다. 배우 아이비는 “다른 스케줄은 전혀 잡지 않고 주말에도 연습에 매진하고 있다. 체력관리를 위해 식단조절에 가장 신경을 쓴다”고 설명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사진 신시컴퍼니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