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달 14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리는 음악축제 슈퍼소닉을 통해 첫 내한공연을 하는 록 밴드 퀸의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오른쪽)와 프레디 머큐리 대신 보컬을 맡는 애덤 램버트.
‘퀸’ 새달 14일 첫 내한공연
브라이언 메이 이메일 인터뷰
브라이언 메이 이메일 인터뷰
영국 록 밴드 퀸이 새달 14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리는 음악축제 슈퍼소닉을 통해 첫 내한공연을 한다. 1980년대 초 로저 테일러(드럼)와 존 디컨(베이스)이 음반 홍보를 위해 한국을 찾은 적은 있지만, 정식 공연을 하진 않았다. 1991년 세상을 떠난 프레디 머큐리(보컬)를 대신하는 건 미국 오디션 프로그램 <아메리칸 아이돌> 출신 스타 애덤 램버트다. 퀸과 애덤 램버트는 합동 투어를 하고 있다. 이번에 처음 한국을 찾는 브라이언 메이(기타)와 전자우편으로 인터뷰를 했다.
“아메리칸 아이돌 출신 애덤 램버트
완벽한 호흡으로 프레디 자리 채워
나보다 유명한 내 이름 붙은 기타
한국 가면 만들어지는 곳 가고파” -요즘 어떻게 지내나? “미국 투어 중이다. 관객 반응이 대단해 우리가 예전에 공연할 때와 비슷하거나 더 큰 감동을 느끼고 있다. 지금은 캐나다 몬트리올인데, 미국 필라델피아 공연을 위해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더이상 35살이 아니기에, 스케줄이 좀 힘들기도 하다. 건강에 유의하며 최선을 다하고 있다.” -퀸의 노래는 수십년이 지나도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처음 데뷔할 당시 이렇게 세계적인 록 밴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퀸은 누군가가 만든 밴드가 아니고, 멤버들이 본능적으로 서로에게 이끌려 결성된 그룹이다. 우리는 서로를 발견하고 문제를 같이 해결하는 시간을 갖게 된 것을 큰 행운으로 생각한다. 퀸 음악의 주제는 우리 자신이 아니라 사람들이 느끼고 생각하는 희망, 꿈, 아픔 등이었기 때문에 감명을 주지 않았나 싶다.” -애덤 램버트가 보컬을 대신한다. “우리는 직접 보컬을 찾은 적이 없다. 그가 출연한 프로그램을 보지 않았지만, ‘애덤을 꼭 봐야 한다. 같이 작업하면 완벽할 것이다’라는 연락을 많이 받았다. 애덤이 어느 한 순간 우리 시야에 발견됐고, 본능적으로 함께 작업하게 된 것이다. 우리와 애덤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호흡이 잘 맞는다. 그는 재능은 무궁무진하고,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그래도 프레디 머큐리의 빈자리는 아쉽다. “프레디와 나는 가족처럼 가까운 사이였기 때문에 마치 형제를 잃는 것과 같았다. 프레디와 함께했던 모든 순간에 자부심과 긍지를 느낀다. 이를 미래에도 계속 만들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화석이 아니라 살아서 계속 진화하는 존재다. 프레디는 나, 그리고 대중들과 늘 함께한다고 생각한다.” -많은 명곡이 있는데, 특히 아끼는 곡을 꼽는다면? “프레디와 마지막으로 작업한 ‘더 쇼 머스트 고 온’을 들고 싶다. 프레디의 도움을 받아 내가 주로 작사·작곡한 곡이다. 당시 우리 느낌을 잘 대변해 마술처럼 만들어진 곡이다. 그때는 인생에서 가장 즐거웠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 곡으로 공연할 때 즈음 프레디는 더는 퀸과 함께하지 못했다. 다행히 애덤이 이 곡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잘 소화해줬다. 특별한 영혼을 가진 이 곡을 다시 연주하는 건 내게 있어 최고의 순간이다.” -한국에 오면 특별히 하고 싶은 게 있나? “내 이름을 붙여 판매되는 기타가 한국에서 생산되는 걸로 안다. 아버지와 내가 손수 만든 기타를 토대로 디자인한 것인데, 나 또한 아버지와 함께 만든 그 기타를 여전히 공연 때 연주한다. 아버지와의 추억이 담긴 기타이기도 하고, 특별한 사운드와 느낌을 갖고 있기에 소중하게 다룬다. 가끔은 기타가 나보다 더 유명하다고 느껴질 때도 있다. 하하. 한국에 가면 그 기타를 만드는 곳에 가보고 싶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사진 슈퍼소닉 제공
완벽한 호흡으로 프레디 자리 채워
나보다 유명한 내 이름 붙은 기타
한국 가면 만들어지는 곳 가고파” -요즘 어떻게 지내나? “미국 투어 중이다. 관객 반응이 대단해 우리가 예전에 공연할 때와 비슷하거나 더 큰 감동을 느끼고 있다. 지금은 캐나다 몬트리올인데, 미국 필라델피아 공연을 위해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더이상 35살이 아니기에, 스케줄이 좀 힘들기도 하다. 건강에 유의하며 최선을 다하고 있다.” -퀸의 노래는 수십년이 지나도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처음 데뷔할 당시 이렇게 세계적인 록 밴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퀸은 누군가가 만든 밴드가 아니고, 멤버들이 본능적으로 서로에게 이끌려 결성된 그룹이다. 우리는 서로를 발견하고 문제를 같이 해결하는 시간을 갖게 된 것을 큰 행운으로 생각한다. 퀸 음악의 주제는 우리 자신이 아니라 사람들이 느끼고 생각하는 희망, 꿈, 아픔 등이었기 때문에 감명을 주지 않았나 싶다.” -애덤 램버트가 보컬을 대신한다. “우리는 직접 보컬을 찾은 적이 없다. 그가 출연한 프로그램을 보지 않았지만, ‘애덤을 꼭 봐야 한다. 같이 작업하면 완벽할 것이다’라는 연락을 많이 받았다. 애덤이 어느 한 순간 우리 시야에 발견됐고, 본능적으로 함께 작업하게 된 것이다. 우리와 애덤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호흡이 잘 맞는다. 그는 재능은 무궁무진하고,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그래도 프레디 머큐리의 빈자리는 아쉽다. “프레디와 나는 가족처럼 가까운 사이였기 때문에 마치 형제를 잃는 것과 같았다. 프레디와 함께했던 모든 순간에 자부심과 긍지를 느낀다. 이를 미래에도 계속 만들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화석이 아니라 살아서 계속 진화하는 존재다. 프레디는 나, 그리고 대중들과 늘 함께한다고 생각한다.” -많은 명곡이 있는데, 특히 아끼는 곡을 꼽는다면? “프레디와 마지막으로 작업한 ‘더 쇼 머스트 고 온’을 들고 싶다. 프레디의 도움을 받아 내가 주로 작사·작곡한 곡이다. 당시 우리 느낌을 잘 대변해 마술처럼 만들어진 곡이다. 그때는 인생에서 가장 즐거웠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 곡으로 공연할 때 즈음 프레디는 더는 퀸과 함께하지 못했다. 다행히 애덤이 이 곡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잘 소화해줬다. 특별한 영혼을 가진 이 곡을 다시 연주하는 건 내게 있어 최고의 순간이다.” -한국에 오면 특별히 하고 싶은 게 있나? “내 이름을 붙여 판매되는 기타가 한국에서 생산되는 걸로 안다. 아버지와 내가 손수 만든 기타를 토대로 디자인한 것인데, 나 또한 아버지와 함께 만든 그 기타를 여전히 공연 때 연주한다. 아버지와의 추억이 담긴 기타이기도 하고, 특별한 사운드와 느낌을 갖고 있기에 소중하게 다룬다. 가끔은 기타가 나보다 더 유명하다고 느껴질 때도 있다. 하하. 한국에 가면 그 기타를 만드는 곳에 가보고 싶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사진 슈퍼소닉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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