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음악·공연·전시

내 젊은 날의 분노, 녹슨 칼집 속에 있을까

등록 2014-09-30 19:27

사진 네이버온스테이지 제공
사진 네이버온스테이지 제공
6년 만에 새 앨범 ‘볼륨3’ 낸 이장혁

40대의 씁쓸함·이별의 상처
강렬하고 서정적인 곡에 섞어
영감 늘 메모해 노래가 된다
“날 위해 노래…좋아해줘 행운”
둥둥거리는 저음의 베이스 소리, 이어 찌르는 듯한 고음의 전기기타 소리, 그리고 이펙터로 찌그러뜨려 그르렁대는 전기기타 스트로크. 그 위로 부르는 노래는 이렇다. “녹슨 칼집 걸어간다/ 당신들은 비웃는다/ …빠지지도 않는 칼은/ 칼집을 숨 조인다/ …칼이 속에 있는지도/ 이제는 알 수 없다.”

이토록 강렬하면서도 당황스러운 시작이라니. 그것도 무려 6년 만의 신작에서. 그에게 무슨 일이? 싱어송라이터 이장혁(사진)이 최근 발표한 3집 <볼륨 3>의 첫 곡 ‘칼집’을 듣자마자 든 생각이다. 당장 전화기를 들어 약속을 잡았고, 무척 오랜만에 그를 마주했다.

“‘칼집’이요? 나이 들면서 젊은 날의 분노, 화, 날카로움을 속으로 삭이며 꾹꾹 누르는 나 자신을 보고 씁쓸한 기분이 들어 만든 곡이에요. 칼이 녹슬어서 칼집에서 안 빠지니까 이제는 칼이 있는지 없는지 스스로도 의심이 가는 그런 상황인 거죠.”

어느덧 40대 초반을 넘어 중반을 향해 가고 있는 그다. 하지만 그에게도 아프고 방황하고 고민으로 밤새우던 스무살 시절이 있었다. 1집 <볼륨 1>(2004)에 수록된 명곡 ‘스무살’은 그 시절을 노래한 것이다. 이 앨범은 전문가들이 선정한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87위에 올랐다.

“40대가 되니 아무래도 예전만큼 영감이 떠오르지 않는 걸 저도 느껴요. 그걸 극복하려고 더 많은 음악을 듣고, 더 많은 곡을 만들고 있어요.”

말은 이렇게 해도 3집의 완성도는 상당하다. 적어도 전작인 2집 <볼륨 2>(2008)를 가뿐히 뛰어넘는다. 밴드 사운드 위주의 1집에 대한 평단의 환호를 뒤로 하고, 그는 2집에서 어쿠스틱 기타 위주의 잔잔한 포크 사운드를 들려주었다. 그는 3집에 대해 “1집과 2집의 중간이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그의 설명대로 ‘칼집’ 같은 강렬한 곡과 ‘빈집’ 같은 서정적인 곡이 적절히 섞여있다.

몇해 전 그는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피해 어느 건물에 들어갔다. 그곳에는 비를 맞고 으스스 떨며 거리를 바라보던 노인이 있었다. 노인의 눈동자는 많은 말을 하는 듯했다. 이를 메모해두고 며칠 뒤 노래로 만들었다. 그 곡이 이번 앨범의 백미 ‘노인’이다. “날아오는 총탄들을 뚫고/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여기까지 용케 잘도 살아남았는데/ 고작 저 소낙비가 나는 너무너무도 두렵구나.”

그는 일상에서 영감이 떠오르면 메모를 한다고 했다. 메모는 노랫말이 되고, 노래가 된다. ‘칼집’이나 ‘노인’처럼 예외적인 경우도 있지만, 그의 노래는 대부분 옛사랑의 기억과 이별의 아픔에 관한 것이다. 타이틀곡 ‘불면’을 비롯해 ‘에스키모’, ‘레테’ 등 3집 수록곡 대다수 또한 그렇다. “이별 직후엔 너무 힘들어서 노래로 만들 수 없어요. 시간이 흐르고 한발짝 뒤로 물러서서 바라볼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노래로 만드는 거죠.”

영감은 불쑥 찾아온다. 어느 장소에 갔다가 옛 연인과 자주 오던 곳임을 깨닫고 밀려드는 소회를 메모해 노래로 만드는 식이다. 이렇게 만든 노래들을 모아두었다가 앨범으로 낸다.

“저는 저의 만족을 위해 노래를 만들어요. 떠오르는 영감을 노래로 만들면서 즐거움과 위안을 얻거든요. 사람들 듣기 좋으라고 만드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좋아할지 같은 건 신경쓰지도 않죠. 그래도 제 음악을 좋아해주는 분들이 있다는 건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자신의 칼집 안에 칼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의심하게 됐다고 그는 노래하지만, 그의 칼은 여전히 번뜩이며 날을 잔뜩 벼리고 있음이 틀림없다. 다만 그 결기를 젊은 시절의 불 같은 분노가 아니라 이제는 정제된 노래로 분출하고 있는 게 아닐까. 이번 3집 앨범이 그 증거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사진 네이버온스테이지 제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