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락. 사진 겨레의 소리 축제 조직위 제공
[짬] 재일동포 뮤지컬 배우 겸 가수 김승락
“조국에서 공연하니 감격스러워”
14살부터 예술단원으로 평양 공연
북에선 ‘까투리 타령’으로 유명인사
아내와 남북 무대 같이 서는 꿈 꿔 평양은 그에게 ‘민성’ 창법뿐만 아니라 부인 렴민화씨와 인연을 맺어주기도 했다. 렴씨를 85년 평양 음악강습을 위해 만경봉호를 타러 니가타로 가던 도중에 처음 만난 것이다. 둘은 금강산가극단에서 함께 활동하다 95년 결혼했다. 그는 96년 금강산가극단을 그만두었다. 무언가 정해진 것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새로운 만남을 위한 도전을 위해서였다. 그리고 6개월 만에 우연한 오디션 기회를 거쳐 새롭게 터를 잡은 곳이 일본 최대 극단인 ‘시키’(四季)였다. 그곳에서 김씨는 그야말로 도전하는 자세로 새로운 기록들을 만들어갔다. 그는 ‘김승락’이라는 조선 이름으로 뮤지컬 <미녀와 야수>에서 주연 야수 역을 따냈다. 극단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2006년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 도전의 해였다. 그는 이때 조선적에서 한국 국적으로 바꾸고, 처음으로 남한 땅을 밟는다. 당시 국내 최초의 뮤지컬 전용극장으로 개관한 서울 잠실 샤롯데극장에서 뮤지컬 <라이온 킹>을 장기 공연하게 됐던 것이다. 그는 아버지의 고향 땅에서 뮤지컬 배우로 당당히 설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통일이 될 때까지 조선적을 유지하겠다는 부인 렴씨는 그런 남편의 결심을 “부정도 못하고 인정도 못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부부는 국적을 달리한 채 함께 살아오고 있다. 2013년 그는 극단 시키를 떠났다. ‘1인 노래극’ 형태로 자신만의 노래를 좀더 실험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뒤 지금까지 4번의 공연을 했고, 모두 1천여명 이상이 그의 새로운 실험을 객석에서 지켜봐줬다. 김씨는 그의 이런 다양한 음악 경험이 남북이 화해하고 교류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사실 겨레의 소리 축제에 참여함으로써 그런 바람의 일부가 실현된 것이지만, 여전히 반쪽짜리 꿈일 뿐이다. 겨레의 소리 쪽에서는 애초 김씨와 함께 부인 렴씨도 초청했지만, 조선적에 대한 남한 정부의 입국거부 방침 때문에 부부는 끝내 무대에 같이 서지 못했다. 하지만 언젠가는 국적이 다른 부부가 남녘과 북녘 어디서든지 함께 노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꿈은 접지 않았다. 그렇게 꿈꾸는 것이 많은 차별을 받으면서도 조국통일을 기대하며 조선적을 고수한 채 세상을 떠난 선친과 장인 어른의 뜻을 조금이나마 받드는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김씨 부부의 노래의 힘이 남북을 조금은 더 가깝게 만드는 날이 어서 오기를 기대한다.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tree21@hani.co.kr
연재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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