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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그 뮤지컬 17번 봤어” 회전문 관객 늘고 있다

등록 2014-10-26 19:54수정 2014-10-27 16:27

회전문 관객을 잡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면서 다양하고 세분화된 마케팅이 펼쳐지고 있다. <비스티보이즈> 빙고카드의 모습.
회전문 관객을 잡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면서 다양하고 세분화된 마케팅이 펼쳐지고 있다. <비스티보이즈> 빙고카드의 모습.
배우에게 대접받는 회전문 관객
뮤지컬 배우 팬덤 생기며
5~10번 본 사람 올해만 1만여명
제작사, 차별화된 팬서비스로 경쟁
콘서트 초대·‘역조공’ 이벤트
배우와 사진찍기 등 배타적 혜택
이달 중순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연지홀에서는 보기 드문 광경이 펼쳐졌다. 뮤지컬 <더 데빌> 배우들의 이른바 ‘역조공 이벤트’가 열린 것. 이날 주연 배우 차지연·윤형렬·이충주가 30명의 팬들에게 직접 식사를 대접하고 팬 사인회와 경품 추첨을 진행했다. 행사에 초대된 사람들은 ‘회전문 관객’으로, 매 공연 관람시 스탬프를 적립하는 <더 데빌> 빙고카드(재관람 카드)에서 3~5줄의 빙고를 완성한 다관람 관객들이다. 빙고를 완성하려면 최소 12~17번의 공연을 관람해야 한다. <더 데빌> 홍보 관계자는 “스타가 팬들에게 각종 선물을 받는 것을 이르는 ‘조공’의 역발상으로, 회전문 관객을 위한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한 것”이라며 “차별화된 이벤트가 아니면 회전문 관객을 모으기가 쉽지 않기에 요즘엔 톡톡 튀는 이벤트를 짜내는 것도 주요 홍보 업무”라고 말했다. <더 데빌>은 26일 한 차례 더 이런 이벤트를 진행했는데, 이날은 무려 100명이 참여했다.

뮤지컬이 점차 대중화되고 특정 배우에 대한 팬덤까지 형성되면서 한 작품을 여러번 보는 ‘회전문 관객’이 크게 늘고 있다. 인터파크가 예매자를 기준으로 집계한 결과만 봐도 이런 현상은 두드러진다. 올해 9월까지 한 작품을 5~10회 관람한 관객은 1만188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8177명에 견줘 크게 늘었다. 10회 이상 관람한 관객도 2273명이나 됐다. 수만원대에서 10만원을 넘기도 하는 티켓값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다.

이에 따라 회전문 관객을 잡기 위한 제작사들의 마케팅도 치열해지고 있다. 관람 횟수별 할인은 당연한 일이 됐고, 콘서트, 관객과의 대화, 역조공, 배우별 오에스티(OST) 증정 등 사활을 건 ‘이벤트 경쟁’을 벌이고 있다.

<더 데빌>의 이벤트인 배우들의 역조공.
<더 데빌>의 이벤트인 배우들의 역조공.
<더 데빌>은 역조공 이벤트 외에 빙고 1줄을 완성하면 50% 할인 쿠폰 2장, 2줄을 완성하면 티켓북 증정, 3줄을 완성하면 배우·연출진과 대화를 하는 ‘더 데빌 나잇’ 초청, 4줄을 완성하면 배우와의 사진 촬영권과 초대 교환권 제공 등을 내세워 관객을 불러모았다.

지난달 막을 내린 <비스티보이즈>는 공연 자체보다 이벤트로 더 많은 화제가 된 경우다. 출연 배우 15명의 사진이 새겨진 15칸짜리 ‘클럽 개츠비 카드’를 만들어 관람 횟수에 따라 더욱 세분화된 혜택을 제공한 것. <비스티보이즈>는 총 5개의 배역 중 한 배역에 캐스팅된 3명의 배우 칸에 모두 날인을 받을 경우, 배우 3명의 솔로곡이 담긴 캐릭터 싱글 오에스티를 증정했다. 이를 위해 제작사는 싱글 오에스티를 5종류나 만들었다. 10번 날인을 받으면 아르(R)석 초대권이나 공연 실황 오에스티를, 15번 모두 날인을 받으면 배우가 무대에서 사용한 선글라스를 증정했다. 매주 새로운 종류의 포스터(9종)를 만들어 관람객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비스티보이즈>를 11번 봤다는 송지연(32)씨는 “처음엔 순수한 팬심에 배우별 솔로곡 오에스티가 탐이 났지만, 솔직히 나중엔 ‘오기’와 ‘경쟁의식’도 발동했다”며 “직장인이라 시간이 없어 15번을 다 못 채운 것이 두고두고 아쉽다”고 말했다. <비스티보이즈> 홍보 담당자는 “15번 관람 관객에게 줄 선글라스를 150개 넘게 준비했는데 모두 동이 나 이후에 50개 정도는 우편으로 전달할 만큼 회전문 관객들이 많았다”고 전했다.

<위키드>의 이벤트인 사진찍기.
<위키드>의 이벤트인 사진찍기.
<위키드>는 작품을 2회 이상 유료 관람한 관객만 가입할 수 있는 비공개 인터넷 카페 ‘오지안’(오즈 에메랄드 시티에 사는 사람을 뜻함)을 개설했다. 유료 티켓 인증 사진을 제작사에 보내면 카페에서 해당 관객을 초대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회원에게는 위키드 티켓 오픈 시 선예매 및 20% 할인 혜택을 주고, 관람 횟수에 따라 배우들과 무대 위에서 기념사진 촬영을 할 수 있는 기회, 오지안만을 위한 배우 메시지 전달, 36인 배우 전체의 사인이 들어간 한정 포스터 증정 등의 혜택도 제공했다. 10월 현재 이 카페 회원은 747명이며, 이 가운데는 무려 52번을 관람한 회원도 있다. <위키드>를 15번 관람했다는 류호성(24)씨는 “위키드 자체를 좋아하는 마음이 가장 크지만, 각종 이벤트에 참여하기 위해 공연을 더 보게 되는 것은 사실”이라며 “특히 좋은 좌석을 선점할 수 있는 선예매나 배우와 사진 찍기 등 배타적 특혜는 놓칠 수 없는 매력”이라고 말했다.

회전문 관객들은 이런 이벤트에 빠지기 시작하면 일종의 ‘중독 현상’도 생긴다고 말한다. 송지연씨는 “한창 대극장 뮤지컬에 빠졌을 땐 공연비가 감당이 안 돼 명품가방이나 의류 등을 닥치는 대로 팔기도 했다”며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틈틈이 알바를 하거나 적금을 깨는 사람도 많다”고 전했다.

한편에선 경쟁이 과열되다 보니 각종 이벤트가 팬들에 대한 서비스 차원을 넘어 ‘회전문 관객 양산’을 위한 지나친 상술로 전락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달 평균 8~10번 뮤지컬을 보고, 뮤지컬 관람을 위해 브로드웨이까지 원정을 가기도 한다는 이하연(31)씨는 이런 현상에 부정적이다. 이씨는 “대부분의 공연을 캐스팅별로 챙겨 보긴 하지만, 이벤트에는 거의 참여하지 않는다”며 “아이들이 과자 속 스티커를 사 모으게 하는 상술처럼 팬들에게 도장 받기 경쟁을 시키는 것 같아 거부감이 든다”고 말했다.

뮤지컬 평론가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는 “이벤트 문화는 한국만의 독특한 현상으로, 회전문 관객은 2000년대 초반 뮤지컬 시장 형성과 안정화에 큰 역할을 했다”며 “제작사들은 이제 회전문 관객 양산 방식이 아니라 시장의 외연을 확대하기 위한 다양한 마케팅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지나친 상술에 휘둘리지 않는 현명한 공연 소비자가 되는 것도 팬들의 의무”라고 덧붙였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사진 각 회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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