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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미소 부른 무대, 실소 부른 스토리

등록 2014-11-06 19:05

사진 이엠케이뮤지컬 제공.
사진 이엠케이뮤지컬 제공.
[리뷰]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
오스트리아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의 막내딸로 프랑스 루이16세와 정략 결혼을 해 프랑스 왕비가 된 마리 앙투아네트. 굶주린 백성들이 “빵을 달라”고 아우성치자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라”고 말했다는 일화는 그녀가 역사 속에서 어떤 이미지로 기록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후대에 역사학자이자 전기작가인 안토이나 프레이저 등에 의해 이는 날조된 소문임이 드러난 바 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역사의 희생양인가, 아니면 사치를 일삼던 악녀에 불과한가’. 마리 앙투아네트를 다룬 모든 작품은 바로 이 물음에서 출발한다. 지난 1일 개막한 미하엘 쿤체와 실베스타 르베이 콤비의 신작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 역시 다르지 않다.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는 보기 드물게 여성 투톱을 내세운 작품이다. 20~30대 여성 관객층을 주 타깃으로 하는 장르인 뮤지컬에서 남성 투톱을 내세운 사례는 흔하지만, 여성 투톱은 거의 없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반갑다. 이야기는 프랑스 왕궁에서 현실에 눈감은 채 살아가는 ‘마리 앙투아네트’와 굶주림에 거리를 배회하다 혁명을 꿈꾸게 되는 ‘마그리드 아르노’의 상반된 삶을 통해 펼쳐진다. 마리와 그의 연인 악셀 페르센의 사랑얘기가 중간중간 끼어들지만 양념에 불과하다. 혁명의 기운이 고조되는 가운데 발생한 ‘목걸이 사건’등 역사적 사실에 가상의 인물 마그리드를 중심으로 한 시민들의 이야기, 정권을 잡으려는 오를레앙 공작의 음모가 씨줄과 날줄처럼 엮여든다.

수백벌 의상 등 잘 차린 꾸밈새
돈 주고 민중 동원하는 내용 등
혁명가치 흠집내기 대사 아쉬워

‘최고의 여자’, ‘더는 참지 않아’, ‘운명의 수레바퀴’등 40곡이 넘는 다채로운 넘버들, 당시 부르봉 왕가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살린 수백벌의 의상과 가발, 비스듬히 앞으로 기울어져 회전하는 무대장치 등은 유럽 뮤지컬 특유의 화려함을 강조하며 공연 내내 관객을 압도한다. 배우들의 화끈한 가창력은 몰입도를 끌어올린다. 옥주현, 윤공주, 윤형렬, 김영주 등 주·조연을 막론하고 어느 한 명도 실력이 처지지 않는다. 솔로곡, 듀엣, 합창까지 완벽한 하모니를 뽐낸다.

하지만 프랑스 혁명을 다룬 전작들과 앞서 공연된 다수의 유럽 뮤지컬의 영향 때문인지 <마리 앙투아네트>는 너무 많은 기시감을 준다. 특히 마리 역에 옥주현을 캐스팅한 것은 아쉽다. <엘리자벳>, <황태자 루돌프> 등 유럽 뮤지컬에서 비슷한 캐릭터로 계속 등장하다보니 기시감을 더욱 고조시킨다. 차라리 마그리드 역을 맡았으면 어땠을까.

아쉬운 점은 또 있다. 온실 속 화초로 자란 마리를 혁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희생자로 그리려다보니, 혁명의 가치에 흠집을 내는 듯한 대사와 장면이 연이어 등장한다. 혁명이 오를레앙의 음모에서 비롯된 것인냥 그린 부분이나 돈을 주고 민중을 동원해 베르사이유 궁전을 습격하게 하는 장면에 이르러는 실소가 나올 정도다. 맨 마지막 넘버 ‘우리가 원하는 정의는 무엇인가’가 전혀 설득력 있게 들리지 않는 이유다. ‘위정자에게는 무지도 죄가 된다. 그 무지조차 때론 의지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라는 격언이 떠오른다.

그럼에도 <마리 앙투아네트>는 ‘평작’ 정도는 될 작품이다. 배우들의 호연, 눈이 호사스러운 무대와 의상만으로도 본전 생각이 나진 않겠다. 잠실 샤롯데씨어터. 내년 2월1일까지. (02)6391-6333.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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