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스케6 우승자 곽진언은 내지르는 고성과 화려한 퍼포먼스 없이도 충분히 대중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음을 증명했다. 지난 3일 곽진언씨가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사진 촬영에 응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
[토요판] 뉴스분석, 왜?
슈스케6 우승자 곽진언씨 인터뷰
슈스케6 우승자 곽진언씨 인터뷰
▶ 오디션 프로그램이 인기를 끈 지 6년째입니다. 처음엔 예술에 순위를 매기고 ‘합격 불합격’을 논하는 것에 불편한 시선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신인 음악인의 등용문으로 자리잡은 것도 사실입니다. ‘슈스케6’ 우승자 곽진언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그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안 어울릴 것 같은 음악을 들고나와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생명력은 어디서 비롯되는 걸까요. 그와 대화를 나누어봤습니다.
단정한 양복 차림의 곽진언(23)이 서울 경희대학교 평화의전당 <슈퍼스타케이(슈스케) 시즌6> 결승 무대에 섰다. 손에는 통기타 하나만 들렸다. 의자에 앉은 곽진언이 지그시 눈을 감았다. 기타 줄을 튕기면서 쓸쓸한 듯 혹은 무언가에 취한 듯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요즘 내가, 겁이 많아진 것도, 자꾸만 의기소침해지는 것도, 나보다 따뜻한 사람을 만나서 기대는 법을 알기 때문이야. (중략)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시를 읊조리는 듯한 목소리로 조용히 노래 부르던 그의 목소리가 멈추자 심사위원 윤종신은 “늘 고대하고 꿈꿔왔던 무대였다”며 극찬을 했고 99점을 주었다. 백지영과 이승철 심사위원도 99점을 주었다. 김범수 심사위원은 97점을 주었다. 곽씨는 394점을 받았다. 슈스케 역대 최고점이었다.
시청자 문자 투표를 합산한 점수에서 그는 경쟁자 김필을 제치고 지난달 21일 슈스케 시즌6 우승자가 되었다. 폭발적인 가창력과 화려한 퍼포먼스 없이 통기타와 그만의 음색으로 그는 우승을 거머쥐었다. 슈스케 시즌6은 곽진언 등 실력파 음악인의 출연 덕에 침체기를 벗어났다는 평가가 따랐다.
곽진언을 만났다. 궁금했다. 그는 어떤 사람인지, 경쟁이 치열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통기타 하나가 어떻게 그런 힘을 발휘한 것인지 궁금했다. 그리고 할 수 있다면, 오디션 프로그램의 현재를 그의 눈을 통해 살펴보고 싶었다.
지난달 말 인터뷰 요청을 했다. 만나고 싶다는 기자의 제안에 ‘매니저와 상의해주세요’라는 식의 상투적인 연예인 답변이 아니라 그는 “전화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예의 있게 답했다. 약속한 날짜인 지난 3일 곽진언은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를 직접 찾아왔다. 언론사 개별 인터뷰는 이번이 처음이다. 평범한 동네 청년처럼 수수한 옷차림이었다.
어떤 말 해도 교만스럽게 비칠까 조심
-개인적으로 연예인 인터뷰는 처음이다.
“내가 연예인 같나? (수줍게 미소) 연예인이 어떤 것인지 정의 내리기 어려운 것 같다. 내가 연예인이 아니라고 말하면 건방지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뭐가 연예인인지 모르겠다. 유명해지고 싶어 안달 난 사람은 아니다.”
-요즘 유명해졌다는 걸 실감하나?
“실감은 못 하고 있다. 나 자신은 슈스케에 나오기 전과 지금이 똑같다. 그냥 나를 둘러싼 상황들이 달라져 있을 뿐이다.”
-그 이전과 지금이 똑같다는 건 무슨 뜻인가?
“사람이 그렇게 쉽게 바뀌진 않으니까. 나는 유명해지고 싶었던 게 아니라 나의 음악을 알리고 싶은 욕구가 컸다. 그래서 슈스케에 도전했다. 앞으로도 홍대(음악 소극장)에서 나를 계속 보실 수 있을 거다.”
곽진언의 우승은 좀 예상외인 편이었다. 아날로그 감성을 담은 음악이 유행을 타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만을 무기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우승까지 하는 것은 어려울 거라는 예상이 많았다. 그에게는 청중의 귀를 꽉 붙잡는 고성도 없고, 눈을 매료시키는 퍼포먼스는 더더욱 없다. 그저 자신의 묵직한 감성을 담은 노래, 그리고 우직한 저음에만 의지해 그는 도전했다. 그는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당신의 음악은 차분하게 말하듯 들려주는 게 특징이다.
“어떻게 노래를 불러야 사람들이 공감을 하고 여운을 느낄까 그런 생각을 자주 해왔다. 말하는 것처럼 차분하게 해서 사람들을 집중시키면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왔다.”
-너무 기교가 없어서 우승까지 하기에는 어려울 거라 봤다. 본인은 어땠나?
“(한숨을 ‘하…’ 하고 낸 뒤) 나도 우승할 거라고 생각 안 했다. ‘톱 일레븐’(생방송 무대에 서는 최종 11명)에 들 거라고 생각도 못 했다. 내가 원래 슈퍼위크(최종 11명을 선발하기 직전의 경쟁무대) 때 ‘당신만이’ 노래를 부르고 떨어졌지 않나. (노래를 함께 부른 김필이 최종 11명에 붙고 곽진언은 떨어졌으나 심사위원이 곽진언을 구제했다.) 그때 전혀 아쉽지 않았다. 이 정도면 내 노래를 알린 거 같아 덤덤했다. 근데 톱 일레븐에 결국 붙었다.”(웃음)
-그때부터는 우승 욕심이 났을 거 같은데?
“우승을 위해 출연한 것이 아니었다. 우승을 안 할 거면 왜 나왔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내 목표는 곽진언이 이런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것을 한번쯤은 알리고 싶은 거였다. 우승이 목표였다면 출전하기 전에 장우람(보컬 트레이너 출신 도전자, 슈스케6 톱 일레븐 중 한명)형 같은 분에게 트레이닝을 받고 했겠지. 하지만 나는 보컬리스트로서의 재능이 부족하다는 걸 알기에 나만의 장점에 집중했다. 우승을 한 입장이라 내가 어떤 말을 해도 교만스럽게 비칠까 조심스럽다.”
-요즘 아날로그적 감성의 노래가 유행이다. 버스커버스커도 시대의 흐름을 잘 타서 잘 풀린 케이스 같다. 당신도 최근의 이런 대중의 취향을 인식하고 있나?
“그런 이유로 음악을 하는 게 아니다. 우리나라 국민이 5천만이면 5천가지의 좋아하는 음악이 있을 거다. 물론, 어떤 트렌드(흐름)라는 게 있기는 하겠지만. 나는 내 음악을 하는 것이다. 트렌드에 따라서 음악을 만들고 싶지 않다.”
-당신도 빠른 음악을 듣나?
“나도 듣는다. 신나는 음악은 인기가 좋을 수밖에 없다. 들으면 나도 좋다. 신나잖나.”
-신나지 않는 당신의 음악을 사람들이 왜 이렇게 좋아할까?
“모르겠다. 다들 최근에 이별하셨나?(웃음) 내 목소리와 음악에 공감을 하신 걸까. 나도 궁금하다. 이유가 뭔지. 그저 감사할 뿐이다. 인기에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고집 있게 내 음악을 하는 게 중요할 거 같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요즘 <미생>이라는 드라마가 인기인데, ‘요즘 우리 직장인들 이렇게 힘들게 살고 있다’고 누군가가 대신 말해주는 듯한 그런 위로를 사람들이 드라마를 보며 받는 거 같다. 당신의 음악도 듣고 있으면 뭔가 위로를 받는 느낌이었다.
“위로가 필요 없어질 정도로 다들 행복한 시대가 오더라도 내 음악이 꾸준히 인기 있었으면 좋겠다. 트렌드를 타는 것처럼 내 음악이 소비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폭발적 가창력은 없었지만
통기타와 중저음이 있었다
슈스케 역대 최고인 394점
“내 음악을 알리고 싶어 도전
존 박이 추천하고 축하문자도 줘” 초등학교 5학년 때 학교 포기하고
홈스쿨링 하며 음악에 집중
뷔페식당 초밥 만들기 알바도
선배 음악인 누구를 닮기보다는
진득하게 나만의 음악 하고파 학교 적응 못해 홈스쿨링 선택한 것 아냐 곽진언은 정규교육을 받지 않고 ‘홈스쿨링’으로 공부했다. 슈스케와 비슷한 오디션 프로그램 <케이팝스타>의 지난해 우승자 ‘악동뮤지션’도 홈스쿨링 출신으로 화제가 됐다. 음악 공부를 하는 데 홈스쿨링만의 장점이 있는 것일까. 곽진언에게는 한 우물을 파는 쪽으로 도움이 된 것 같다. 그는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홈스쿨링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전문성을 키우는 데에는 분명 도움을 주는 것 같긴 하다. 학교를 다니면 모든 과목을 다 이수해야 하는데 홈스쿨링은 내가 집중하고 싶은 분야에 더 집중할 수 있다.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애들이 하는 거라는 안 좋은 시선들만 없으면 좋은 공부 방식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언제부터 홈스쿨링을 시작했는지? “부모님이 내가 어렸을 때부터 홈스쿨링을 염두에 두셨던 것 같다. 학교 성적이 안 좋기는 했지만 내가 공부에 소질이 없어서 홈스쿨링을 시작한 건 아니다. 초등학교를 다니다 5학년 때쯤 그만뒀다.” -음악에는 언제부터 재능이 있었나? “어릴 때부터 음악이 주변에 늘 있었다. 부모님이 태교도 재즈로 했다고 들었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피아노 학원을 다녔다. 수학과 영어 학원은 안 다녀도 피아노 학원은 계속 다녔다. 그때 내가 뭘 알았겠나. 내가 보내달라고 한 건 아니고 그냥 부모님이 보내줘서 다녔다. 여느 아이들처럼 땡땡이치고 오락실도 많이 갔다. 그냥 음악에 미쳐 공부했다기보다는 어렸을 때부터 음악인이 되는 게 자연스럽게 꿈이 됐다.” -피아노 학원 말고 다른 레슨 받은 거 있나? “드럼은 돈을 주고 배웠다. 나머지는 그냥 어깨너머로 배웠다. 18살 때쯤 우연히 재즈 하는 사람들을 알게 됐는데 그분들 어깨너머로 배운 게 많았다. 인복이 참 많은 편 같다.” 인디(대자본에 의지하지 않는 독립적인 예술) 음악인들은 빛을 보기까지 경제적 형편이 어렵다. 꿈을 좇는 사람들은 물론 이를 기꺼이 감수하지만 세상도 으레 예술을 하려면 그런 고생쯤은 당연하다는 듯 무관심하다. 2010년 11월 인디 가수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이진원씨가 생활고를 겪다 뇌경색으로 숨지자 세상은 인디 음악인들에게 반짝 관심을 보였다. 인디 음악인들의 월평균 수입이 69만원 정도라는 보도들만 잠시 나온 뒤 곧 이들의 삶은 또 잊혔다. 다시 세상은 예술가의 삶이 궁핍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듯 눈감고 외면하고 있다. 곽진언도 자신만의 음악을 하기 위해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다. “이것저것 많이 했다. 뷔페 식당에서 초밥도 만들어봤다. 좀 ‘가라’로. 하하. 초밥 찍는 기계가 있는데 거기에 밥을 놓고 고추냉이와 생선만 올리면 자동으로 만들어진다. 그외에도 바에서 서빙도 하고 공연장에서 악기 세션으로 참여해 돈을 벌었다. 다만, 나는 휴대폰 요금, 술값, 교통비 등은 안 밀리고 쓸 만큼은 버는 수준이었다. 급하면 아버지께 돈을 빌리고 나중에 갚았다. 그렇게 열악하게 산 건 아니다.” -돈과 음악에 대한 당신의 생각이 듣고 싶다. “돈은 물론 많으면 풍요롭고 좋은 거다. 그러나 돈 때문에 내 음악이 좌지우지되고 싶진 않다. 다만 돈을 벌려고 음악을 하는 내가 되지 않으려고 매 순간 마음을 다져보려고 노력한다.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음악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냥 나의 음악을 하겠다는 말인 거다.”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여전히 불편한 시선들이 있다. 예술을 경연의 장으로 끌고 들어와 순위를 매기고 합격과 탈락을 논한다는 것에 대한 불편함이다. 결국은 방송이 원하는 스타일의 재능을 가진 사람들만 뽑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그러나 지금은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한 논란이 가라앉은 편이다. 아무런 뒷배경이 없는 가수 지망생이 오직 실력 하나만으로 우승을 차지하는 경우들이 왕왕 등장했다. 슈스케 시즌2에서의 우승자는 음악과 외모 모두 뛰어난 존 박이 아니라, 외모보다는 가창력이 더 두드러진 허각이었다. 이번 시즌6에서 우승한 곽진언도 계속 화제가 됐던 것은 그의 편곡 실력과 목소리였다. 기획사 사장님들만 들을 수 있었던 가수 지망생의 날것 그대로의 실력을 대중이 함께 듣고 평가한다는 것은 분명 오디션 프로그램의 장점이다. “조금은 딜레마가 있는 것 같긴 하다. 음악만 바라보고 나오는 친구들인데 방송을 위해서 해야 하는 어떤 요소들을 감당해야 하는 힘겨움이 있다. 하지만 제작진은 시청률을 올려야지. 그게 이해는 된다. 어떻게 그 사이에서 조화를 찾을 것인지가 관건인 거 같다.” -내부에서 좀 힘들어하는 사람들은 없었나? “톱 일레븐 사이에서 순위 같은 건 의미가 없었다. 내가 느끼기엔 남을 꺾으려는 의지 같은 건 없었다. 그냥 다들 좋은 무대를 하려고 노력했다. 서로 많이 도왔다. 슈스케 같은 프로그램이 앞으로도 좋은 음악인의 등용문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당신은 왜 슈스케에 나왔나. 그 이전에는 도전 안 하고? “3년 전까지 나는 드럼만 쳤다. 지금처럼 기타 치면서 노래를 하던 때가 아니었다. 지난해에는 학교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올해 슈스케 쪽에서 간접적으로 도전해보라는 제안이 왔다. 하지만 처음엔 거절했었다. 나는 뭐랄까.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필요한 ‘한 방’(강력한 무기)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생각이 바뀐 건 그래도 나는 자작곡을 할 수 있으니까, 나는 이런 음악을 할 수 있다는 걸 알릴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존 박 형의 기타 세션으로 일했는데 그때 슈스케 어떠냐고 물어봤더니 형이 긍정적으로 얘기해줬다. 잃을 건 없을 테니까 나가보라고. 그래서 내가 슈스케 쪽에 첫 오디션 시작되기 삼일 전에 연락해 오디션에 응했다. 우승하고 나서 존 박 형이 축하한다고 문자메시지를 줬다.”
첫 앨범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 낼 것
-우승 상금 5억원은 어떻게 쓸 계획인가?
“아직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 부모님과 상의할 예정이다. 지금까지 500만원도 손에 쥐어본 적 없이 살았다. 그렇게 큰 액수(5억원)는 처음 보는 거라 감이 안 온다.”
-앨범은 언제 들을 수 있을까?
“원래 슈스케 출연 전에 개인적으로 준비하던 앨범이 있었다. 기획사랑 같이 준비하던 건 아니다. 근데 갈아엎을 거 같다. 정말 신중하게 내려고 하고 있다.”
곽진언에게 홈스쿨링에 대한 철학과 가족 이야기 등 여러 질문을 했지만 그의 대답은 비교적 단조로웠다. 언뜻 불편해하는 기색도 비쳤다. 그는 사람들이 곽진언이라는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아니라, 그의 음악에 귀 기울여주길 바라는 듯했다. ‘윤상이나 김광석 혹은 윤종신 같은 자신의 색깔이 강한 음악인으로 성장할 거 같다’고 덕담을 건네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어떤 한 명을 닮고 싶진 않다. 앞서 음악을 해오신 분들이 그런 것처럼 그냥 진중하게 나만의 길을 걷고 싶다. 진득한 음악인이 되고 싶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통기타와 중저음이 있었다
슈스케 역대 최고인 394점
“내 음악을 알리고 싶어 도전
존 박이 추천하고 축하문자도 줘” 초등학교 5학년 때 학교 포기하고
홈스쿨링 하며 음악에 집중
뷔페식당 초밥 만들기 알바도
선배 음악인 누구를 닮기보다는
진득하게 나만의 음악 하고파 학교 적응 못해 홈스쿨링 선택한 것 아냐 곽진언은 정규교육을 받지 않고 ‘홈스쿨링’으로 공부했다. 슈스케와 비슷한 오디션 프로그램 <케이팝스타>의 지난해 우승자 ‘악동뮤지션’도 홈스쿨링 출신으로 화제가 됐다. 음악 공부를 하는 데 홈스쿨링만의 장점이 있는 것일까. 곽진언에게는 한 우물을 파는 쪽으로 도움이 된 것 같다. 그는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홈스쿨링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전문성을 키우는 데에는 분명 도움을 주는 것 같긴 하다. 학교를 다니면 모든 과목을 다 이수해야 하는데 홈스쿨링은 내가 집중하고 싶은 분야에 더 집중할 수 있다.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애들이 하는 거라는 안 좋은 시선들만 없으면 좋은 공부 방식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언제부터 홈스쿨링을 시작했는지? “부모님이 내가 어렸을 때부터 홈스쿨링을 염두에 두셨던 것 같다. 학교 성적이 안 좋기는 했지만 내가 공부에 소질이 없어서 홈스쿨링을 시작한 건 아니다. 초등학교를 다니다 5학년 때쯤 그만뒀다.” -음악에는 언제부터 재능이 있었나? “어릴 때부터 음악이 주변에 늘 있었다. 부모님이 태교도 재즈로 했다고 들었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피아노 학원을 다녔다. 수학과 영어 학원은 안 다녀도 피아노 학원은 계속 다녔다. 그때 내가 뭘 알았겠나. 내가 보내달라고 한 건 아니고 그냥 부모님이 보내줘서 다녔다. 여느 아이들처럼 땡땡이치고 오락실도 많이 갔다. 그냥 음악에 미쳐 공부했다기보다는 어렸을 때부터 음악인이 되는 게 자연스럽게 꿈이 됐다.” -피아노 학원 말고 다른 레슨 받은 거 있나? “드럼은 돈을 주고 배웠다. 나머지는 그냥 어깨너머로 배웠다. 18살 때쯤 우연히 재즈 하는 사람들을 알게 됐는데 그분들 어깨너머로 배운 게 많았다. 인복이 참 많은 편 같다.” 인디(대자본에 의지하지 않는 독립적인 예술) 음악인들은 빛을 보기까지 경제적 형편이 어렵다. 꿈을 좇는 사람들은 물론 이를 기꺼이 감수하지만 세상도 으레 예술을 하려면 그런 고생쯤은 당연하다는 듯 무관심하다. 2010년 11월 인디 가수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이진원씨가 생활고를 겪다 뇌경색으로 숨지자 세상은 인디 음악인들에게 반짝 관심을 보였다. 인디 음악인들의 월평균 수입이 69만원 정도라는 보도들만 잠시 나온 뒤 곧 이들의 삶은 또 잊혔다. 다시 세상은 예술가의 삶이 궁핍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듯 눈감고 외면하고 있다. 곽진언도 자신만의 음악을 하기 위해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다. “이것저것 많이 했다. 뷔페 식당에서 초밥도 만들어봤다. 좀 ‘가라’로. 하하. 초밥 찍는 기계가 있는데 거기에 밥을 놓고 고추냉이와 생선만 올리면 자동으로 만들어진다. 그외에도 바에서 서빙도 하고 공연장에서 악기 세션으로 참여해 돈을 벌었다. 다만, 나는 휴대폰 요금, 술값, 교통비 등은 안 밀리고 쓸 만큼은 버는 수준이었다. 급하면 아버지께 돈을 빌리고 나중에 갚았다. 그렇게 열악하게 산 건 아니다.” -돈과 음악에 대한 당신의 생각이 듣고 싶다. “돈은 물론 많으면 풍요롭고 좋은 거다. 그러나 돈 때문에 내 음악이 좌지우지되고 싶진 않다. 다만 돈을 벌려고 음악을 하는 내가 되지 않으려고 매 순간 마음을 다져보려고 노력한다.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음악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냥 나의 음악을 하겠다는 말인 거다.”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여전히 불편한 시선들이 있다. 예술을 경연의 장으로 끌고 들어와 순위를 매기고 합격과 탈락을 논한다는 것에 대한 불편함이다. 결국은 방송이 원하는 스타일의 재능을 가진 사람들만 뽑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그러나 지금은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한 논란이 가라앉은 편이다. 아무런 뒷배경이 없는 가수 지망생이 오직 실력 하나만으로 우승을 차지하는 경우들이 왕왕 등장했다. 슈스케 시즌2에서의 우승자는 음악과 외모 모두 뛰어난 존 박이 아니라, 외모보다는 가창력이 더 두드러진 허각이었다. 이번 시즌6에서 우승한 곽진언도 계속 화제가 됐던 것은 그의 편곡 실력과 목소리였다. 기획사 사장님들만 들을 수 있었던 가수 지망생의 날것 그대로의 실력을 대중이 함께 듣고 평가한다는 것은 분명 오디션 프로그램의 장점이다. “조금은 딜레마가 있는 것 같긴 하다. 음악만 바라보고 나오는 친구들인데 방송을 위해서 해야 하는 어떤 요소들을 감당해야 하는 힘겨움이 있다. 하지만 제작진은 시청률을 올려야지. 그게 이해는 된다. 어떻게 그 사이에서 조화를 찾을 것인지가 관건인 거 같다.” -내부에서 좀 힘들어하는 사람들은 없었나? “톱 일레븐 사이에서 순위 같은 건 의미가 없었다. 내가 느끼기엔 남을 꺾으려는 의지 같은 건 없었다. 그냥 다들 좋은 무대를 하려고 노력했다. 서로 많이 도왔다. 슈스케 같은 프로그램이 앞으로도 좋은 음악인의 등용문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당신은 왜 슈스케에 나왔나. 그 이전에는 도전 안 하고? “3년 전까지 나는 드럼만 쳤다. 지금처럼 기타 치면서 노래를 하던 때가 아니었다. 지난해에는 학교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올해 슈스케 쪽에서 간접적으로 도전해보라는 제안이 왔다. 하지만 처음엔 거절했었다. 나는 뭐랄까.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필요한 ‘한 방’(강력한 무기)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생각이 바뀐 건 그래도 나는 자작곡을 할 수 있으니까, 나는 이런 음악을 할 수 있다는 걸 알릴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존 박 형의 기타 세션으로 일했는데 그때 슈스케 어떠냐고 물어봤더니 형이 긍정적으로 얘기해줬다. 잃을 건 없을 테니까 나가보라고. 그래서 내가 슈스케 쪽에 첫 오디션 시작되기 삼일 전에 연락해 오디션에 응했다. 우승하고 나서 존 박 형이 축하한다고 문자메시지를 줬다.”
슈스케6 우승자 곽진언이 지난달 21일 서울 경희대 평화의전당에서 열린 마지막 생방송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엠넷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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