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러브레터’의 한 장면.
[리뷰] 뮤지컬 ‘러브레터’
첫사랑 아련함보다 ‘성장’에 무게
4중주 실내악 관객 가슴 파고들어
1인2역 맡은 곽선영 연기 훌륭
첫사랑 아련함보다 ‘성장’에 무게
4중주 실내악 관객 가슴 파고들어
1인2역 맡은 곽선영 연기 훌륭
“오겐키데스카~?”
이 한마디로 현해탄 건너 한국에서도 140만 관객의 마음을 울린 영화 <러브레터>(1999년·이와이 순지)가 무대 위에서 새롭게 탄생했다. 이달 초 대학로 동숭아트센터에서 막을 올린 <러브레터>는 일본의 흥행 영화를 바탕으로 한국 제작진이 음악을 덧입혀 만들어낸 창작뮤지컬이다. 영화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이 겨울 추억을 그리는 사람들의 가슴을 촉촉히 적신다.
불의의 사고로 죽은 연인 ‘남자 후지이 이츠키’를 잊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히로코가 같은 이름을 가진 남자에 대한 첫사랑의 기억을 잊고 살아가는 ‘여자 후지이 이츠키’에게 우연히 편지를 쓴다. 답장을 주고 받으며 둘의 기억이 서로 엉키고 재생되는 과정을 통해 아름답고 슬픈 사랑 이야기가 조금씩 조금씩 베일을 벗는다.
기본 줄거리는 영화와 같다. 하지만 첫사랑의 아련함에 초점을 맞췄던 원작 영화와 달리, 뮤지컬은 ‘기억’이라는 매개를 통한 성장에 무게중심을 둔다. 히로코가 과거의 아픈 기억 때문에 온전히 현재를 살아내지 못하는 인간이라면, 이츠키는 아픈 과거의 충격으로 기억을 상실해 현재의 한 구석이 비어버린 인간이다. 둘은 편지를 통해 기억을 떨치거나 일깨우며 한층 성숙해진다.
원작의 틀을 지키면서도 ‘한 끝이 다른 각색’을 시도한 뮤지컬은 한정된 무대 공간의 특성을 잘 극복하며 원작의 감성을 되살린다. 사랑하는 이가 죽은 설산에 오른 히로코가 “오겐키데스카”를 외치는 순간, 눈 대신 벚꽃이 흩날리며 남녀 이츠키가 만났던 교정의 풍경이 재현되는 장면에선 감탄이 터질 수밖에 없다. 무대를 세 부분으로 나눠 가운데는 여자 이츠키의 집으로, 왼쪽은 벚꽃나무 아래 교정으로, 오른쪽은 남녀 이츠키가 일했던 도서관으로 활용하는 영리한 공간 연출도 눈이 띈다. 때로는 흩날리는 눈발처럼 날카롭고, 때로는 분분한 벚꽃저럼 따스한 음악은 클라리넷·첼로·바이올린·피아노로 이뤄진 4중주 실내악에 실려 가슴을 파고든다.
히로코와 여자 이츠키, 1인2역을 소화해 낸 배우 곽선영의 노래와 연기는 칭찬할 만 하다. 차분하고 우아한 히로코와 발랄하고 엉뚱한 이츠키를 감정선의 흔들림 없이 완벽히 연기한다. 고음의 넘버까지도 맑고 고혹적인 목소리로 소화해낸다.
누구에게나 첫사랑이 있다. 그리고 사랑은 추억함으로써 비로소 아름답다. 이 겨울, “잘 지내고 있느냐”고 따뜻하게 안부를 묻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후회하지 않을 선택이 될 듯 하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사진 로네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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