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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윈터플레이, 타이를 ‘들었다놨다’

등록 2014-12-21 19:42

20일 오후 타이 방콕 벤짜끼띠 공원 수상무대에서 타이 왕실 주관으로 열린 재즈 페스티벌에서 윈터플레이의 이주한(오른쪽)과 혜원이 공연하고 있다. 이날 무대에는 카운트 베이시 오케스트라, 래리 칼턴, 존 피자렐리, 다이앤 슈어 등 세계적인 음악인들이 올랐다.  라우드픽스 제공
20일 오후 타이 방콕 벤짜끼띠 공원 수상무대에서 타이 왕실 주관으로 열린 재즈 페스티벌에서 윈터플레이의 이주한(오른쪽)과 혜원이 공연하고 있다. 이날 무대에는 카운트 베이시 오케스트라, 래리 칼턴, 존 피자렐리, 다이앤 슈어 등 세계적인 음악인들이 올랐다. 라우드픽스 제공
‘재즈광’ 푸미폰 국왕 위한 무대서
40분간 흥겨운 리듬으로 관객 홀려
혜원 “최고 연주자들과 함께해 행복”
이주한도 이날 생일…깜짝 파티 열어
지금으로부터 꼭 10년 전인 2004년, 타이 방콕으로 도망치듯 날아온 이주한은 온통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음악 활동도 결혼 생활도 모두 실패로 돌아간 터였다. 재미동포인 그는 1990년대 중반 트럼펫 하나 들고 혼자 모국으로 들어왔다. 10년 가까이 세션 연주자로 나름 활발하게 활동했지만, 독자적으로 생존하기에는 벽이 너무 높았다. 절망의 나락에서 그가 마주한 건 우울증이었다.

방콕 호텔 테라스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유혹에 시달렸다. 문득 ‘마지막으로 산에나 가보고 죽자’는 생각이 들었다. 산을 좋아하던 그는 네팔로 향했다. 거기서 트레킹을 했다. 걷고 또 걷다 보니 머리가 맑아지고 몸도 가벼워졌다. ‘살고 싶다’는 의지가 되살아났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트럼펫을 들었다. 본격적으로 작곡을 하면서 주도적으로 음악을 하기 시작했다.

혜원(보컬), 최우준(기타)과 팝재즈 밴드 윈터플레이를 결성하고 2008년 데뷔 앨범 <초코 스노 볼>을 발표했다. 윈터플레이가 이주한·혜원 듀오 체제로 재정비하고 지난해 발표한 3집 <투 패뷸러스 풀스>는 홍콩, 중국, 대만 등에서도 선풍적인 반응을 얻었다. 수록곡 ‘셰이크 잇 업 앤 다운’이 홍콩 라디오 인터내셔널 플레이 차트에서 브루노 마스, 비욘세, 소녀시대 등을 제치고 1위에 오르기도 했다.

타이의 유명 라디오 디제이 쁘라슷 티라마노가 윈터플레이의 음악을 처음 접한 건 2년 전이었다. “유튜브로 윈터플레이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 굉장히 ‘쿨’했다. 다른 아시아 뮤지션과는 달랐다”고 그는 떠올렸다.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에서 소개하니 청취자들도 무척 좋아했다. 음반도 잘 팔려나갔다. 타이 왕실이 주관하는 재즈 축제의 음악감독을 맡은 그는 윈터플레이에게 초청장을 보냈다.

타이 왕실은 푸미폰 아둔야뎃(87) 국왕 생일(12월5일) 즈음 그를 위한 축제를 매년 열어왔다. 미국에서 태어난 푸미폰 국왕은 젊은 시절부터 재즈에 심취해 색소폰, 트럼펫, 피아노, 기타 등 다양한 악기를 배웠다. 1946년 국왕 자리에 오른 뒤로 베니 굿맨, 라이어널 햄프턴, 잭 티가든, 베니 카터, 스탄 게츠 등 재즈 거장들을 왕실로 초대해 함께 연주했다. 왕이 직접 작곡한 곡을 레스 브라운, 래리 칼턴 등이 연주해 자신의 음반에 싣기도 했다.

20일 오후 타이 방콕 벤짜끼띠 공원 수상무대에서 타이 왕실 주관으로 열린 재즈 페스티벌에서 윈터플레이의 이주한(오른쪽)과 혜원이 공연하고 있다. 이날 무대에는 카운트 베이시 오케스트라, 래리 칼턴, 존 피자렐리, 다이앤 슈어 등 세계적인 음악인들이 올랐다.  라우드픽스 제공
20일 오후 타이 방콕 벤짜끼띠 공원 수상무대에서 타이 왕실 주관으로 열린 재즈 페스티벌에서 윈터플레이의 이주한(오른쪽)과 혜원이 공연하고 있다. 이날 무대에는 카운트 베이시 오케스트라, 래리 칼턴, 존 피자렐리, 다이앤 슈어 등 세계적인 음악인들이 올랐다. 라우드픽스 제공
20일 오후 방콕 벤짜끼띠 공원 호수에 마련된 수상무대에 윈터플레이가 섰다. 이주한은 이번엔 죽기 위해서가 아니라 최고의 연주를 들려주기 위해 꼭 10년 만에 방콕 땅을 다시 밟았다. 공연 직전 연주자들과 회의를 하는데, 누군가가 갑자기 케이크를 들고 나타났다. 마침 이날 생일을 맞은 이주한을 위한 ‘깜짝 파티’였다. 무대에 오른 이주한의 마음은 머리 위로 쏟아지는 환한 햇살과 발밑으로 흐르는 푸르른 물과 같았다.

첫 곡 ‘셰이크 잇 업 앤 다운’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이주한의 흥겨운 트럼펫과 혜원의 무심한 듯 경쾌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현용선(기타), 김성수(베이스), 신동진(드럼), 김진환(퍼커션), 김가혜(코러스) 등이 뒤를 탄탄하게 받쳤다. 관객들의 어깨도 따라 들썩이기 시작했다. 스팅의 ‘문 오버 버번 스트리트’, 마이클 잭슨의 ‘빌리 진’ 등 유명 곡을 윈터플레이만의 팝재즈로 재해석해 들려주자 관객들의 반응이 달아올랐다. 패티 김의 ‘못 잊어’를 재해석한 ‘캔낫 포겟’의 낯선 한국말 가사에 관객들은 호기심을 나타냈고, 마지막 곡 ‘집시 걸’의 신나는 리듬에 고개를 위아래로 까닥였다.

20일 오후 타이 방콕 벤짜끼띠 공원 수상무대에서 타이 왕실 주관으로 열린 재즈 페스티벌에서 윈터플레이의 이주한(오른쪽)과 혜원이 공연하고 있다. 이날 무대에는 카운트 베이시 오케스트라, 래리 칼턴, 존 피자렐리, 다이앤 슈어 등 세계적인 음악인들이 올랐다.  라우드픽스 제공
20일 오후 타이 방콕 벤짜끼띠 공원 수상무대에서 타이 왕실 주관으로 열린 재즈 페스티벌에서 윈터플레이의 이주한(오른쪽)과 혜원이 공연하고 있다. 이날 무대에는 카운트 베이시 오케스트라, 래리 칼턴, 존 피자렐리, 다이앤 슈어 등 세계적인 음악인들이 올랐다. 라우드픽스 제공
40분에 걸친 윈터플레이의 무대 뒤를 이은 연주자는 재즈 피아니스트 존 디 마티노였다. 푸미폰 국왕이 작곡했다는 ‘블루 데이’ 등을 연주했다. 이어 세계적인 기타리스트 래리 칼턴이 노란 티셔츠를 입고 등장했다. 노란색은 타이 왕실을 상징하는 색깔이다. 이날 대부분의 관객들도 노란 옷을 입고 왔다. 호수가 석양으로 물들어갈 즈음 ‘슬립 워크’의 감미로운 선율이 물 위로 느리게 흘렀다.

카운트 베이시 오케스트라의 빅밴드 사운드는 풍성하고 흥겨웠으며,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한 존 피자렐리의 무대는 부드럽고 달콤했다. 시각장애인 여성 보컬리스트 다이안 슈어는 현란한 스캣(의미 없는 노랫말로 흥얼거리며 목소리를 악기처럼 쓰는 창법)과 찌를 듯한 고음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꿰뚫어버렸다. 마지막 순간은 카운트 베이시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존 피자렐리, 다이앤 슈어의 듀엣이 어우러지는 꿈의 무대로 마무리됐다. 혜원은 “우리가 저런 세계 최고 연주자들과 한 무대에 섰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했다.

쁘라슷 티라마노 음악감독은 “한국에서 영화, 드라마, 케이팝 순서로 타이에 들어왔다. 한국음악을 듣다 보니 좋은 음악인들이 참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오늘 윈터플레이의 무대 이후 케이재즈(K-Jazz)의 새로운 문이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딸 분지라 티라마노는 에스엠엔터테인먼트와 현지 기획사의 합작회사인 에스엠-트루 직원이다. 에스엠 소속 아이돌 그룹 엑소가 그의 담당이다. 분지라 티라마노는 “윈터플레이가 케이팝 아이돌 가수와 컬래버레이션 작업을 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방콕/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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