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스타 소유와 아르앤비(R&B) 싱어송라이터 정기고가 컬래버레이션으로 발표한 ‘썸’이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 올해의 노래 1위에 선정됐다.
올해의 음악·음악인
올 한 해도 많은 음악인과 노래가 우리를 울리고 웃겼다. 기쁠 땐 더 즐겁게 해주고, 슬플 땐 위로해주고, 외로울 땐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전문가들은 어떤 곡들을 높이 평가할까?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음악평론가, 음악 웹진 필진 등 17명의 의견을 들어 올해의 노래와 앨범, 과소 또는 과대평가된 앨범이나 뮤지션, 그리고 대중음악계의 사건과 현상 등을 정리했다. 설문 참가자는 강명석 김봉현 김영대 김윤하 김학선 박영웅 박준우 배순탁 서정민갑 성우진 유정훈 이경준 이대희 최규성 한동윤 한명륜 현지운 등 17명.
노래 소유·정기고의 ‘썸’
‘내거 아닌 내거 같은 너~’
음악계도 강타한 ‘썸’ 열풍 “내 거인 듯 내 거 아닌 내 거 같은 너~.”
‘썸’ 열풍이 뒤덮은 올 한 해였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다들 누군가와 열심히 ‘썸’을 탔다. 전문가들의 선택 또한 대중의 선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씨스타 소유와 아르앤비(R&B) 싱어송라이터 정기고가 컬래버레이션으로 발표한 ‘썸’(사진)이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 올해의 노래 1위에 선정됐다. 인기 걸그룹 가수와 언더그라운드 아르앤비 신에서 활동하던 정기고의 조합은 200% 시너지 효과를 냈다. 이들의 성공에 힘입어 비슷한 컬래버레이션 작업이 잇따르기도 했다. 노랫말은 그 자체로 유행어가 됐고, 나아가 사회 현상으로까지 번져나갔다.
2위는 태양의 ‘눈, 코, 입’이 차지했다. 아이돌 그룹 빅뱅의 멤버 태양이 솔로 1집 <솔라> 이후 4년 만에 발표한 2집 <라이즈> 타이틀곡이다. 이전보다 힘을 빼고 부드럽게 부른 발라드 곡으로, 더 깊어지고 성숙한 느낌을 준다. 개그맨 유재석이 <무한도전>의 방송사고를 사과하기 위해 ‘태음’이라는 예명으로 개사한 ‘눈, 코, 입’을 불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다음으로는 일리네어 레코즈의 ‘연결고리’가 3위에 올랐다. 더 콰이엇, 도끼, 빈지노 등이 자신들이 속한 힙합 레이블 일리네어 레코즈의 이름으로 발표한 앨범 <11:11> 타이틀곡이다. 한국 힙합 1세대 래퍼 엠시 메타가 피처링으로 참여했다. <엠넷>의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 <쇼미더머니3>에서 우승한 바비가 ‘연결고리#힙합’이라는 곡으로 변주하기도 했다. 방송의 인기에 힘입어 거리 여기저기서 “너와 나의 연결고리”라는 랩이 울려퍼졌다.
4위는 자이언티의 ‘양화대교’다. 다이나믹 듀오가 운영하는 레이블 아메바컬쳐에 영입돼 힙합과 아르앤비·솔을 넘나드는 음악을 해왔다. 지난 9월 발표한 디지털 싱글 ‘양화대교’는 택시 기사였던 아버지가 지나온 길을 ‘양화대교’에 빗대어 표현하며 자신의 가족 얘기를 담은 노래다. “행복하자, 우리, 아프지 말고”라는 노랫말은 힘겨운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해주는 말 같다.
5위에는 권나무의 ‘어릴 때’가 올랐다. 어쿠스틱 기타 한 대 메고 나무처럼 소박하게 노래하는 포크 싱어송라이터 권나무의 첫 앨범 <그림>의 타이틀곡이다. 대번에 귀를 잡아채는 ‘훅’도 없고 내지르는 고음도 없지만, 정갈한 멜로디에 진심을 담아낸 듯한 노랫말은 들을수록 더 깊이 빠져들게 만든다. <슈퍼스타케이6> 우승자 곽진언의 자작곡을 좋아한다면, 이 노래도 분명 마음에 들 것이다.
1위부터 4위까지 모두 아르앤비, 힙합 등 흑인음악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그만큼 올 한 해 흑인음악이 약진했음을 알 수 있다. 이밖에 싱어송라이터 김사월과 김해원이 결성한 듀오 ‘김사월X김해원’의 경우 ‘비밀’, ‘안아줘’, ‘사막 파트2’ 등 세 곡이 동시에 지지를 받기도 했다.
앨범 로로스의 ‘W.A.N.D.Y’
6년만에 2집도 옛명성 그대로
몽환·서정적 음악 평단이 주목
전문가들이 꼽은 올해의 앨범 1위의 영예는 로로스의 ‘W.A.N.D.Y’가 차지했다. 로로스는 2005년 결성한 6인조 포스트록 밴드다. 도재명·제인의 남녀 트윈 보컬 체제에 첼로까지 들어간 독특한 편성을 갖추고, 꿈속을 걷는 것처럼 몽환적이고 서정적인 음악을 들려준다. 한국대중음악상 신인상을 안겨준 데뷔작 <팍스>(2008) 이후 6년 만에 정규 2집을 발표했다. 6년이란 세월이 헛되지 않게 그들의 음악 속 공간은 더 깊어지고 넓어졌다. 올해 열풍을 일으킨 영화 <인터스텔라>와 잘 어울릴 것 같다.
2위는 모던록 밴드 ‘9와 숫자들’의 <보물섬>이 차지했다. 9와 숫자들은 1집 <9와 숫자들>로 2010년 <한겨레> 대중음악 연말결산에서 올해의 앨범 1위에 선정된 바 있다. 2집 <보물섬>은 여전히 아름다운 멜로디와 노랫말로 듣는 이들을 격려하고 위로한다. 첫 곡 ‘보물섬’부터 타이틀곡 ’숨바꼭질’, 흥겨운 복고풍 가요 느낌의 ‘커튼콜’ 등 거의 모든 수록곡이 귀를 잡아끈다.
다음으로는 ‘단편선과 선원들’의 첫 앨범 <동물>이 3위에 올랐다. “인디 중의 인디”라 불리는 자립음악생산조합 활동을 주도하는 싱어송라이터 회기동 단편선이 결성한 4인조 밴드다. 뚜렷한 색깔의 파격적인 사운드, 국악까지 아우르는 다채로운 음악의 절묘한 어울림이 우리 대중음악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듣고 있으면 동물의 본능적인 몸짓처럼 날것 그대로의 느낌이 전해져 온다. 음악깨나 듣는다는 이들 사이에서 단연 화제가 된 앨범이다.
4위는 힙합 그룹 에픽하이의 <신발장>이다. 2012년 발표한 7집 <99>가 시원치 않은 반응을 얻고 나서 “이제는 아무도 기대하지 않을 테니 우리가 처음 시작했을 때처럼 즐겁게 좋아하는 음악을 해보자”며 오히려 편안한 마음으로 만든 8집이다. 타이틀곡 ‘헤픈엔딩’을 비롯해 ‘스포일러’, ‘본 헤이터’ 등 여러 곡이 동시에 음원차트를 휩쓸었다. 김봉현 음악평론가는 “죽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성공적인 컴백”이라고 평했다.
5위는 악동뮤지션의 <플레이>다. 몽골에서 온 이찬혁·이수현 남매가 <에스비에스> 오디션 프로그램 <케이팝스타2>에서 우승한 뒤 와이지엔터테인먼트로 들어가 발표한 첫 앨범이다. 10대의 눈으로 바라본 순수한 노랫말과 10대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원숙하게 만든 멜로디가 황금의 배합을 이룬다. ‘기브 러브’, ‘200%’, ‘얼음들’, ‘인공잔디’ 등 여러 곡이 동시에 음원차트를 장기집권했다.
이밖에 엄청난 바람을 일으킨 1집 이후 4년 만에 돌아온 록 밴드 국카스텐의 2집 <프레임>, 하드코어 밴드 할로우 잰의 2집 <데이 오프>, 아르앤비(R&B) 힙합계의 신성 크러쉬의 데뷔작 <크러시 온 유> 등도 많은 지지를 얻었다.
사건 고 신해철
올해 대중음악계에서 인상적인 사건이나 현상을 꼽아달라는 주문에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신해철의 죽음을 들었다. 유정훈 음악평론가는 “그의 죽음은 독립투사의 죽음과도 같다. 비록 짧았지만 반평생 자신의 생각을 누구에게도 굴하지 않고 용감하게 음악으로 내뱉을 수 있었던 사람이 또 있을까”라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이경준 음악평론가는 “동시대 그와 함께 세월을 보낸 수많은 사람들에게 지금까지 그 어느 예술가의 죽음보다 충격으로 다가온 사건이었다”고 애통해했다.
힙합의 부상을 주요한 현상으로 일컬은 이도 있다. 웹 매거진 <아이즈>의 강명석 편집장은 “<쇼미더머니>를 비롯해 메이저 음악 시장에 힙합 또는 힙합적 요소가 부상한 현상이 눈에 띈다”고 밝혔다. 반면 김봉현 음악평론가는 “힙합이 올해 많은 인기를 끈 건 맞지만, 힙합 장르 고유의 멋과 매력이 대중화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거품은 꺼질 것”이라고 비판적으로 바라봤다.
김윤하 음악평론가는 “개인적으로는 완만한 하강곡선을 그리기 시작한 케이팝(아이돌 팝)에 대한 가요계의 대안은 과연 무엇일까 하는 고민이 많았던 한 해였다. 결과만 놓고 보자면 가요계의 황금기를 지나왔다는 90년대 형님들도, 인디 신도 적당한 해답을 내지 못했다. 2015년이 무언가 힌트를 제시하는 해가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고 밝혔다.
과대평가 김동률
올해 과대평가, 과소평가된 앨범이나 노래 등을 꼽아달라고 요청했다. 과대평가로는 김동률 6집 <동행>을 꼽은 이들이 6명으로 가장 많았다. 김윤하 음악평론가는 “1990년대 뮤지션들의 대거 컴백이 눈에 띈 2014년, 그 가운데서도 유독 뜨거운 반응을 얻었던 김동률 6집이 요란했지만 실속은 없었던 그 ‘붐’을 대표하는 앨범”이라고 평했다. 90년대 음악인들의 귀환을 상징하는 또 다른 가수인 토이(유희열)와 서태지의 새 앨범을 과대평가로 꼽은 이도 각각 3명씩이었다.
“<케이팝스타4> 참가자 이진아에 대한 박진영, 양현석, 유희열 심사위원의 평가만한 과대평가가 또 있을까”(서정민갑 대중음악 의견가)라는 의견도 있었다.
과소평가로는 뮤지컬 배우 박준면이 발표한 앨범 <아무도 없는 방>을 꼽은 이가 3명이었다. 한동윤 음악평론가는 “섬세한 표현력과 깊은 울림의 보컬, 배우임을 잊게 하는 싱어송라이터로의 멋진 변신”이라고 평했다.
올해 과소평가된 음악인으로 윤상을 꼽은 이도 2명이었다. 웹 매거진 <아이즈>의 강명석 편집장은 “윤상의 ‘날 위로하려거든’이 다른 90년대 뮤지션들의 시끌벅적한 귀환과 비교해 너무 가려진 감이 있지만, 음악적 완성도는 그의 디스코그래피에서 손꼽힐 만큼 윤상 음악의 정수를 보여줬다”고 극찬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음악계도 강타한 ‘썸’ 열풍 “내 거인 듯 내 거 아닌 내 거 같은 너~.”
소유&정기고 <썸> 앨범 커버.
몽환·서정적 음악 평단이 주목
6인조 포스트록 밴드 로로스.
올해 대중음악계에서 인상적인 사건이나 현상을 꼽아달라는 주문에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신해철의 죽음을 들었다.
김동률 6집 앨범 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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